책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각자만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세상을 경험하면서 터득한 철학, 떠오른 생각과 감정 등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을 더욱 심오하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아직 예술이 어려운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분야를 탐구할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작품이 어떠한지 서술하고 나열했다면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이 곧 자신인 그들의 인생을 글로 나마 읽을 수 있다는 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창작을 평생의 벗으로 삼으며 죽을 때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그들의 자세를 배우고 싶었다.
짧은 글 한편을 쓰는 것도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데, 그들은 어떻게 창작이라는 고통을 이겨내며 이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창작을 자신의 일부처럼 곁에 두며 살 수 있었을까. 참으로 경이롭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 표출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여전히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인 미술평론계 최고 권위자 마이클 페피엇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들을 모아 놓은 신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의 신전에 모셔진 예술가 27인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있다. 나는 그중 3명의 예술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빈센트 반 고흐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그 이름 ‘빈센트 반 고흐’. 그를 생각하면 스스로 귀를 자르고 붕대를 감은 자화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인 이 사건만 봐도 그가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예술을 사랑하는 열정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술이 있었기에, 예술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기에 짧은 인생이지만 살아갈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스스로 고통과 싸우며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하였다. 정신이 피폐해지고 아득해져 갈 동안 그림을 놓지 않은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는 결국 미칠 수밖에 없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우리도 극도의 힘든 상태에 직면하면 무언가에 미치게 몰두하는 경우가 있다. 고흐에게는 그림이 그런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동생 테오도 빼놓을 수 없다. 고흐를 믿고 기다려주는 테오가 있었기에 그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그림보다 더 그를 버티게 해 준 존재는 테오이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 계획은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를 하는 거야. 최대한 많이, 최대한 잘 그리고 싶어. 그렇게 살다가 생이 다하면,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애정과 동경을 담아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못다 그린 그림들을 아쉬워하며 떠나고 싶어!
(편지 405, 1883년 11월 11일 일요일에 니우암스테르담에서 테오 반 고흐에게 보낸 편지) (p.31)
피에르 보나르
나는 이 예술가를 소개하는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저자가 이야기한 그의 어두운 면은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는 그의 그림 철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스쳐 지나갈 의미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포착한 순간과 장면들을 예술로 승화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점이 좋았다. ‘어떤 것이든 아름다움을 끌어낼 수 있다.’는 그의 신조가 그가 세상을 세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무조건 특별함을 추구하기보단 평범함에 변화를 주는 모습이 그림에 대한 겸손한 자세로 다가왔다.
또한 그림을 그릴 때 그가 세운 목표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예술이 결코 엄청난 지적 수준을 갖고 남다른 식견을 지닌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군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의 목표는 자기 작품에 담긴 의미를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것이었고, 배관공을 감상자로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린다는 말까지 직접 했었다. (p.77)
니콜라 드 스탈
니콜라 드 스탈은 어린 나이에 고달픈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살아가는 동안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삶만큼 내면 또한 극과 극을 넘나들며 요동치는 감정을 겪어왔다. 이토록 불안정한 마음을 품고 살아온 그의 삶이 예술가로서는 명성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내적인 갈등이 곧 예술적 영감이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고통과 불안,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도구로 그림을 택하였다. 이리저리 위태롭게 널뛰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그에게 그림은 안정제 같은 존재였다.
또한 그는 어떠한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기질적으로 모험심이 강한 그였다. 나는 그가 고단한 삶을 살아오고 여기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서 더욱 자유를 갈망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지닌 독창성과 표현력은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 같은 우연의 요소들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다만 그의 마지막은 안타깝게 끝이 났지만, 나는 그의 예술혼이 얼마나 진심이고 대단했는지 글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살아오는 내내 나는 그림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그려야만 살 수 있었다. 그것만이 온갖 인상과 감각, 불안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오직 그림을 통해서만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278)
스탈이 무엇보다 원하지 않았던 것은 동일한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학파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특정한 미학적 이론이 아니라 정반대의 것, 즉 자유였다. (p.281)
나는 명성 높은 예술가들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생각의 깊이가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초록색을 보이는 그대로 초록색이라고 정의를 내리지 않고, 그 초록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노력이 그들을 드높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생각을 확장한 결과는 높은 창의력을 만든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