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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조가람, OP.23.jpg

 

 

클래식 에세이라 해서, 처음엔 책과 거리를 두고 조심스레 첫 장을 펼쳤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클래식은 여전히 내게 '듣는 것' 이상으로는 다가오지 못했던 장르였다. 몇몇 좋아하는 곡들을 반복 청취하는 것이 전부였던지라 그 이상을 이해하거나 알고 싶다는 마음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 조가람의 『Op.23』은 그런 얕은 관심마저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이 책은 클래식을 잘 아는 이들을 위한 지식서가 아니라, 클래식을 잘 몰라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책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Part.1과 2에서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리스트 등 고전음악계의 작곡자와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순히 인물의 일대기를 나열하거나 음악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조가람은 음악과 삶에 자신을 투영하고 깊이를 성찰한다. 그리고 Part 3, 이 책의 중심이자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대목에 이른다. 이 곳에서 조가람은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것도 매우 솔직하고 담담하게.

 

어린 시절부터 연주자로서 살아온 조가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습의 고단함, 콩쿨이 주는 압박 그리고 재능이라는 이름 아래 내려졌던 무자비한 평가들을 털어놓는다. "넌 재능이 없다"는 말. 누군가에겐 무심한 한 마디였을 그 말이, 어린 시절 나에게는 모든 가능성을 꺼버리는 마침표처럼 들렸던 기억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 시절의 나를 자꾸 떠올렸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나도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 연습실의 먼지 냄새조차 좋았던 순간들. 좋아했던 그 감정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현실 앞에서 결국 피아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조가람의 고백은 단순히 개인적인 회고를 넘어서,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 음악은 존재의 방식이며, 살아가는 언어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음악을 잘 몰라도 이해할 수 더 나아가 공감할 수 있다. 그녀가 느낀 감정의 진동은 음악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 책은 결국 음악에 대핸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Op.23』이 특별한 이유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 자신의 삶을 투사한다는 점이다.

 

쇼팽의 서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포고렐리치의 괴팍한 연주 안에서 '정답 없는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코르토의 노년 연주에서는 흠결이 주는 울림을 이해하고, 라흐마니노프의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조율해 나간다. 이는 단순한 음악사의 해설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을 고백하며 그 안에서 독자의 마음과 맞닿는 방식이다. 그래서 클래식을 잘 몰라도 괜찮았다. "나는 왜 이것을 좋아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그런 질문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감응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모든 생은 예술이니까요"라는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그 문장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어떤 감정이 다시 내 손을 잡아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피아노를 떠났다고 해서 음악이 나를 떠난 것은 아니었고, 내가 무대에 서지 않는다고 해서 예술이 내 삶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툴고 투박할지라도, 삶을 살아내는 그 모든 순간이 예술일 수 있다는 생각. 그 문장은 내가 견뎌온 시간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Op.23』은 한 권의 클래식 에세이이자, 동시에 '삶의 에세이'다.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통로 삼아 삶과 사랑, 감정과 기억에 다가간다. 책을 덮고 나면 클래식이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내 삶이 조금 더 따뜻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졌다. 예전처럼 치지 않아도 괜찮다.

 

다시금 건반 위에 손을 얹고 싶어졌다.

 

 

 

오금미_컬처리스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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