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오프라인 모임 후기를 적는다. 또 한 번의 분기와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있다. 늘상 시작을 계절 이야기로 하는 것 같은데, 실지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에 느끼는 가장 큰 것, 가장 커다란 변화는 아무래도 계절인 까닭이다. 이 구절을 적는 동안 바람이 불어주고, 앞머리가 엉망진창으로 헤짚인다. 봄이다. 나는 특별히 날이 좋고 볕이 화창하되 하릴없는 오늘이 너무 아쉬워서, 어디를 가볼까 궁리를 하다간 결국 옥상에 와 앉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무료한 날이면 언제나 글을 쓴다. 그건 5년째 변함이 없다.
7번째 모임 후기를 담는 백지 앞에 서 있다. 머릿속에 어휘는 텅 비어 있고, 지나간 7번의 인연들이 떠오른다. 바야흐로 이 시간이 올 때마다 지나간 모든 얼굴들은 망각을 헤집고 기억 속에 부활한다. 조용하고도 격렬한 순간이다. 적당한 계기를 맞은 기억은 7번의 소모임을 지나 보다 먼 과거로 날아가, 지내온 5년의 시간을 모조리 거스르며 이곳에서 알게 된 모든 사람의 얼굴마저 기억 속에 불러일으킨다.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본 지 오래되어 기억은 흐리고, 개중 몇은 아주 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간의 아련함.
하지만 미련하지 않을 만큼 풍화되고, 이내 멀리서 다정할 수 있게 된 나의 마음은 거기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잠깐 뒤돌곤 싱겁게 웃어버리고 마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오래잖아 기억으로부터 뒤돌고 시간의 순서대로 얼굴들을 되짚어 지금을 향해 기억을 거꾸른다. 그렇게 오늘 글의 주인공일 여러분은 기억의 마지막에 서 있다. 다른 모든 얼굴들이 그러했고 지금에 또한 그러하듯, 여러분도 이 편지를 기점으로 점차 풍화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아쉬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열락과 애증이 사라져 말갛게 풍화된 얼굴에 이르러, 드디어 진심으로 애정(혹은 친밀)할 수 있고, 오로지 애정하기만 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기억은 며칠 내로, 단숨에 망각 속으로 잠겨 들어가 조각조각 풍화된다. 물론 우연한 기회로 상념 속에 부활키도 하나, 마치 오늘 내가 여기 모든 얼굴들을 기억해내듯, 허나 달리 말하자면 특정한 우연 없이는 영영 망각 속에 잠기어 있는 것, 기억이란 영영 아쉬움이다. 기억을 위하여, 정확히는 꺼내어보기 위해, 기나긴 시간의 먼지에 덮여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선 써야만 한다. 겨우 네 번의 만남인 경우엔 더욱 그렇고, 그래서 언제나 마지막이면 이런 편지를 쓴다. 모임 저마다의 색깔과 성격을 글에 아로새기려 또 긴 시간을 백지 앞에 궁근다. 함께 보내며 맡아낸 어떤 향취, 사람마다, 그 사람들의 구성마다 생겨나는 분위기와 향기 같은 것, 후일 다시 종이를 펼치었을 때 온전히 쏟아지기를 바란다. 긴 시간 후에 펼쳐보았을 때, 내가 새긴 색깔대로 기억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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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에서 처음 만난다. 흐린 날이었다. 몽골 거리에 있는 러시아 전통 케익 집에 가려 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재밌는 조합이다, 몽골 거리에 있는 러시아 케익집이라. 거리에는 과연 이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어딘가 전 시대적인 디자인에 여러 나라의 언어가 한데 섞인 간판들 사이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러시아 케익집 대기줄에 앉아 여러분을 기다리며, 사람과 간판 구경, 그리고 이전 모임 생각을 조금 했다.
결국 자리가 나지 않아 인근의 지하 카페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현대식 카페였다. 처음이라 쉽사리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각자 방식대로 상냥하게 돌려대던 우리가 기억난다. 무언가 말은 많이 했지만, 그건 어색함에 대항하는 내 방식인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허둥대느라 아이스브레이킹이 좀 길었다. 그리곤 각자 글에 대한 피드백. 그때 S와 J의 얼굴만큼은 잘 기억난다. 큰 수줍음과 호기로움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땐 모임이 조금 어려울 것 같았다.
나를 퍽 가까이서 본 친구들이라면, 내 일상 자아와 글 자아가 다르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의 말과 글은 결코 섞일 수 없는 기름과 같고 그 둘은 동시에 진실이기에, 모순되다. 하여 나는 말의 자아, 즉 일상과 글의 자아를 분리하여 서로 같은 시공간대에 존재하지 않게 한다. 페르소나 충돌, 사람은 언제나 한 가지의 일관된 테마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곤란해 하곤 하기에. 해석에의 일관성에 대한 무언의 욕구, 그건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며, 어찌할 수 없이 드러난 것들을 바탕으로 해석하기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안다. 서로 조금도 섞이지 않는 것을 각각의 시공간으로 분리하여, 비로소 글에서만 살아 숨 쉴 수 있는 나의 자아와 내 일상은 성공적으로 작별했다. 허나 곤란함이 줄어든 만큼 외로움이 커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야.
모임이 어려울 것 같단 일전의 말은, 순전히 나의 문제에 대함이다. 내 일상 자아를 틀어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음이다. 내겐 사랑과 경멸, 지성과 야성이 동시 동률, 같은 크기와 비중으로 늘 존재하고,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를 드러낼 때에 다른 한 가지는 조금 감추어져야만 한다. 사랑을 말할 땐 경멸을, 지성을 말할 땐 야성을 일부 감추어야 하며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허나 그녀의 호기로움과 거침없음, 주춤거리거나 멈칫거리는 기색 없이 호방히 드러나는 기호와 불호, 사랑과 경멸, 그 기세에 이끌려 나의 그것이 드러나려 반응할 때 나는 곤란함을 느낀 것이다. 나는 경멸과 야성을 결코 불길히도 불안히도 여기지 않는다, 되려 친숙함을 느낀다, 그것이 통제 하에 있는 한. 다만 일관되기를, 한 번에 한 가지로 기억되기를 오래도록 바라고 있었을 뿐.
우리는 피드백을 위해 모였지만, 정작 피드백보다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 단언에 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들여낸 시간의 길이로 바라볼 때에 그건 자명해진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고 그건 내 바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 바람이 그렇게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사이기에 여기에 담아낼 수 없지만, 그러므로 후기에 담아낼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기꺼운 일이다. 왕십리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2번째 모임을 가졌고, 우리는 짧은 분량의 책을 읽고 와 대화를 나누기로 했으며, 책 이야기와 일상사를 나누느라 피드백을 걸러버리기도 했다. 덕분에 읽은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는 이전 모임 후기에 요긴하게 활용했다.
3번째 만남도 왕십리에서 이뤄진다. 개러지 카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아예 일찍 와 공부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 전후로 S가 먼저 도착한다. 우리는 한 달간의 일상을 나눈다. J는 뒤늦게 도착한다. 일전 나온 이야기를 갈무리해 공유해주고, 그녀의 일상을 전해 듣는다. 우린 모두 그 즈음에 있었던 창극 ‘적벽’ 문화초대에 다녀왔고, 그날은 창극과 뮤지컬 이야기를 서두로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조용한 성격인 줄로만 알았던 S의 동공이 커지고 입 주변의 긴장이 풀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야 워낙 말이 많은 사람이다만 우리의 J도 그에 못지않은 대항마였기 때문에, S는 주로 듣는 포지션에 있었다. 말이 많은 사람들은 이따금씩 말이 적은 사람에게 일종의 양해 같은 것을 구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에 S도 듣는 게 편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둘이서 대화의 분량을 전부 씹어 삼키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와중이었으나 뮤지컬에 대한 주제 앞에서 S는 겪은바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기 기호와 의견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시종 조용하고, 더구나 그 조용함을 스스로 즐기는 듯한 사람의 입에서 말이 풀리어나오는 순간은 귀하고, 그것을 목격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 귀한 일이다. 극적인 대비를 통해 그녀의 소망과 사랑이 올올이 드러났고, 옴죽하게 느껴졌다, 집중했고, 우린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느닷없이 친한 친구의 말이 기억났다. 사람에게 반하는 순간은 여럿이지만, 개중 그 사람의 기세에 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그 자신이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매료된 사람의 상태, 열린 눈동자와 기쁘게 그어진 입가, 무언의 반대에도 주춤거리며 거두어질 것 같지 않은 올곧은 자신감, 대충 이런 것들이 버무려진 것 같은, 그런 분위기라고 그는 덧붙였다. 소망과 사랑에 취한 사람의 입으로 그저 비집고 흘러나오는 노래이자, 무아에 취한 칼춤이나 승무 같은 것. 기세가 좋으면 내용에 조금도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이끌리고 따르게 된다는 그의 말이 기억났다. 그 순간 이 말이 연상되었다는 것은, 내가 S에게서 느낀 것이 기세의 묘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기세, 뮤지컬이란 흐름 위에서 추는 춤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라며, 의견이나 주장이 아닌 질문을 던진다. J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세 번째 만남은 평소보다 길었다. 뮤지컬 이야기로 시작해서, 역시나 일상 이야기를 한다. 모임이 평소보다 길었다는 건, 일상 이야기도 따라서 길었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화맥이 항상 각자의 일상으로 수렴하는 이것은 나의 소망과 바람, 기세가 그렇게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3번째 오프라인 모임이었나, 한 친구는 마지막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항상 아니라고, 감추었다고 말하지만, 실은 전부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는 사람을 궁금해하고, 그것을 전부 드러낸다.” 그 뒤에 괄호 표시로 감추어진 말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일상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을 분명히 하였으며, 그만큼 타인의 그것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결국 다른 좌중들의 화맥과 관심사는 일상 이야기에 맞추어지고 만다. 그건 내 소망이 항시 드러나기를 원하고 있었고, 내가 감시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순간마다 쏘아나가 펼치어진 것이었으며, 그것이 연속적인 흐름을 이루며 기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이번 모임도 과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여러분도 타인의 일상을 궁금해했기 때문인지를 지금 궁금해한다. 기억을 되짚으며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J의 눈동자와 입꼬리가 나와 같이 열려 있었음을 기억하며 조금 안도하기로 한다.
우리는 피드백을 위해 모였지만, 정작 피드백보다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좋은 수단이다. 우리는 실지 서로의 글을 읽고서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그건 모조리 수단이자 과정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나 글, 그것 자체보다도 글 너머에 있는 여러분이 궁금했거든. 대화가 글 너머, 그 이상으로 가지 않는 모임도 더러 있었고, 그럴 때 사람들은 담백하게 말하고 깔끔하게 이별한다. 그렇게 될 마련이다, 대화의 연료가 다하기 때문에, 또는 대화의 강물이 명분의 벽을 넘지 못하기에. 허나 글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내밀한 수단이라면, 글이란 각자가 표지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이고, 나는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에 있어, 내가 고수면 J는 소리꾼 같았다. 북 테를 딱하고 치면, J는 옴팡지고 줄기찬 기세로 소리를 뽑아내고, S는 깊고 지긋한 눈으로 오래 바라본다. S는 정말이지 좋은 관객이었다. 4시간 동안 같은 얼굴과 포즈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또 그럴 줄을 아는. 그 정도의 인내심을 가진 청중을 마주하는 것은 무척이나 귀한 일이라. 고수와 소리꾼의 이야기는 기쁘게 풀어헤쳐, 서로에게 그저 흘러지는 것이다.
한편 J는 정말이지 박식한 달변가이다. 그녀는 자신의 방대한 지혜를 뽐내며, 지치지 않고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소싯적에 PT깨나 했을 법한 그녀는 파죽지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그 과정에서 결코 위축되거나 멈칫거리지 않는다. 그녀의 이글거리는 자신감이 보기에 좋았다. 신념을 지닌 사람 특유의, 실컷 흔들리되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반면 나는 신바람으로 추임을 넣고 맞장구를 쳐대는 사람. 기호지세라는 말이 걸맞을 걸출한 소리꾼 하나와 신중한 관객을 앞에 둔 나는 신명이 나 자꾸만 북을 타고, 이 모든 것들은 4시간 동안 반복된다. 이제 와 돌아볼 제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각자의 소망과 사랑이 기세를 타고 흘러넘칠 수 있었으며, 마음껏 분출되고 있었다는 그 사실이다.
우리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에디터로서 만났지만, 각자의 일상은 조금도 겹치지 않는 반경에서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자아의 분리를, 누군가는 꿈의 불안을, 또 다른 누군가는 일상의 고단함을, 마치 들어둔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또는 다 지나가 버린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풀어볼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이게 어떻게 즐겁지가, 흥미롭지가 않을 수 있지? 나는 소설을 좋아하고, 내겐 소설이나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일상 이야기나, 매한가지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모임은 이태원에서 모인다. 내가 사는 보광동에서 이태원으로 나가는 길목엔 비건 식당이 즐비한데, S와 J는 비건식을 즐기는 편이라 마침 잘 되었다. 편한 옷을 입고서 ‘플랜트’로 쭐래쭐래 걸어갔다. 밥을 먹고선 마찬가지 비건 카페인 ‘노노샵’으로 이동했다. 동네의 리사이클링 커뮤니티를 겸하는 이곳은 독특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 작업 차 자주 들리는 동네 카페이다. 좌중은 내게 비건 문화를 즐기느냐고 물었고, 나는 헤비 육식파지만 맛있고 분위기 좋으면 그만이라 답했다. 이태원에서 겪은 비건식은 고기를 쓰지 않고도 맛을 내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그저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나는 비건식을 대하는 내 태도와 일전 글과 피드백에 대한 내 태도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과정과 수단이었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불쾌하겠지만 말야.
카페 ‘노노샵’은 고즈넉한 분위기로는 으뜸가는 곳이다. 재활용 제품과 비건 식품들을 진열해둔 매장은 깜찍했고, 해는 길어졌고, 창문은 모조리 열려 있었으며, 산들바람이 저녁과 함께 불어 들었다. 출근을 하루 앞둔 일요일의 오후는 아쉽다, 그것이 아름답다면 특히 더. 그리고 그 아쉬움이 시간을 더욱 각별하게 만들어주곤 한다. 모임은 끝을 향해 다가갔고, 각자 내일 있을 일상을 그릴 때 나는 찻잔에 희미하게 남은 얼음 잔해를 빙글빙글 굴렸다. 두 사람은 치열하게 불안과 고단함을 견디며 내일로 나아갈 것이고, 나는 글의 자아, 이해받을 수 없었던 내 다른 반쪽을 감춘 채 회색빛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게 괜히 좋았다. 말했듯, 그건 내게 소설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내 일상의 범주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일, 각자의 길과 저마다 견뎌내야 할 삶의 무게가 있었다는 것이 나는 좋다, 외롭지 않다. 삶의 무게로부터 아주 자유로울 수 없다면, 차라리 감내할 만큼은 힘겨운 짐이 우리의 등에 얹혔으면 한다. 그리고 그 무게는 우리의 다리를 지상에 단단히 붙여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혹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하여 매일을 살아갈 수는 없기에. 우리의 눈동자가 열리고 입꼬리에 지워지지 않는 미소가 걸리는 일이 잦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나는 우리가 또 다른 적당한 기회를 맞아,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되풀이할 것임을 안다. 적어도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럴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을 간직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글 씀이란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인가? 우리가 기억하려 하는 것은 그 많겠지만, 그중 우리의 소망과 사랑의 춤, 기세에 찬 노래가 어느 한 구석쯤 새겨져 오래 간직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반드시 그렇게 될 마련이기에. 그때 또 바람이 불고, 해는 조금씩 어두워지고, 우리는 충분하였다는 듯이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서로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