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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발터 벤야민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철학자이자 문예비평가로, 현대 예술과 매체 이론, 역사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상가다. 그의 사유는 마르크스주의, 유대 신비주의, 초현실주의를 아우른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고독의 이야기들>을 펼치는 순간, 어딘가로 미끄러지듯 벤야민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그의 이름을 며칠 전 처음 들어본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책은 무리 없이 읽힌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그를 더 알고 싶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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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꿈, 공상, 감각들의 단상들이 모인 조각글 모음집 같은 <고독의 이야기들>은, 노벨레 형식을 띠며 한 편의 꿈처럼 흐른다.
 
노벨레는 독일 문학에서 유래된 장르로,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일컫는다. '소설'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복합적인데, 주로 평범한 일상 속에 불쑥 등장하는 기이하고 예외적인 사건이 중심을 이룬다.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 운명, 사회 질서가 아이러니하게 드러난다.

이 노벨레는 그래서 알쏭달쏭하면서도 우화적인 '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좋은 형식이다. <고독의 이야기들>이 잘 읽히는 이유다. 누군가의 꿈 메모, 꿈 노트를 보는 느낌이다. 벤야민의 꿈, 공상, 쓸쓸하면서도 낭만적인 도시,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땅과 바다의 풍경 같은 감각들이 펼쳐진다.
 
파울 클레의 그림을 곁들이면 그 감각은 더욱 짙어진다. 클레는 벤야민이 사랑한 모더니즘 화가로, 그의 그림은 벤야민의 글과 묘하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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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비평가이자 언어철학자, 매체 이론가로 알려진 벤야민은 사실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를 엄격히 나누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고독의 이야기들>도 그의 픽션과 산문이 함께 실려 있지만,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두 장르에 모두 다채롭게 등장한다.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을 붙들려는 흔적이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

다만 그는 ‘스토리텔링 이론’ 자체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의 핵심은 바로 사유의 스타일이었다. 벤야민은 단편과 인용을 모아 ‘몽타주’처럼 사유를 재조립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그의 미완성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이렇게 쓰인 작업으로,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도시 문화와 소비 풍경을 해체하고 엮어내어 현대 도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뉴스, SNS, 콘텐츠가 파편화된 시대에는 오히려 이처럼 ‘연결하고 다시 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벤야민의 몽타주적 사고는 오늘날 정보 소비 방식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고독의 이야기들>에 실린 글들은 벤야민의 다른 작품 속에서 반복되며 하나의 세계관을 이룬다.
 
 

2025년, 왜 다시 벤야민인가

    

<고독의 이야기들>의 아름다운 글과 달리, 벤야민의 생의 마지막은 안타깝다.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으나,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망명이 좌절되자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생전에는 학계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의 사상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등에 의해 재조명되었고, 지금까지도 매체 이론, 예술, 문학, 역사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벤야민에 대해 찾아볼수록 2025년에 주목할 만한 사상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술과 인간성, 예술의 관계를 섬세하게 분석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은 예술의 고유성과 '아우라'가 기술적 복제를 통해 소멸된다고 말했다. 아우라란 예술작품이 지닌 독특한 현존감과 거리감을 뜻하는데, 사진과 영화 같은 복제 매체의 등장으로 그것이 무너지고, 예술은 민주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의 전통적 권위와 독창성이 해체되고, 대중과 정치의 영역으로 예술이 옮겨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최근 챗GPT로 생성한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들을 떠올리면 벤야민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들린다. 그렇다. 이미 지금 우리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만들고,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감동을 어디서 느껴야 하는가?

<고독의 이야기>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는 않으나, 소중한 영감을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파편화된 언어로 세계를 조각조각 써내려가며 하나씩 연결해 보는 작업을 해보는 것이다.
 
<고독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벤야민의 아름답고, 기이하고, 조금은 알 수 없는 글들을 따라가보자. 어느새 우리 안에도 파편 같은 기억들이 불쑥 떠오르며 어떠한 영감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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