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Monet, < The needle, Étretat >
“모든 것은 변한다, 심지어 돌 마저도. Everything changes, even stone.”
‘빛의 화가’, ‘인상파의 거장’이라 불리는 모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돌이라도 빛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는 평생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의 핵심을 관통하는 말처럼,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빛을 붓에 담아 그만의 ‘느낌 impression’을 오롯이 표현하고자 했다.
인상파의 그림, 특히 모네의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진으로는 미처 표현될 수 없는 ‘감흥’, 즉 부유하는 안개와 불어오는 바람, 일렁이는 파도와 넘실대는 들판이 느껴지는 듯한 인상파의 작품은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당대의 가장 뛰어난 화가들이었던 이들은 어떤 생각과 삶, 관계 맺음으로 이러한 새로운 ‘인상의 길’을 개척하게 된 것일까? 인상주의의 시조는 누구일까? 인상파라는 공통점 속에서 화가 개개인의 작품의 특성은 무엇일까? 여기,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명쾌하게 풀고 인상파를 200% 알고 즐길 수 있게 하는 필수 입문서가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저자 야마다 고로가 일전에 자신의 유튜브 채널 ‘야마다 고로의 어른을 위한 교양 강좌’에 업로드한 인상주의 계보에 대한 동영상을 어시스턴트와의 대화 형식으로 동일하게 구성하여 집필한 도서이다. 책은 터너, 쿠르베, 마네 등을 인상파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실주의와 바르비종파 계보로 짚고, 환하게 꽃 피웠던 인상주의의 절정기 작가 10인을 집중 조명한 뒤 인상파의 뒤를 따랐던 신인상주의(쇠라)와 포스트 인상주의(세잔, 고갱, 고흐) 계보까지 총 18인의 미술가를 다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 뿐만 아니라, 인상파의 어원이 그들을 향한 비평가들의 비아냥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 마네와 드가의 숨겨진 사연과 사생활 등 흥미로운 뒷배경과 작품에 대한 새로운 추측 등을 짚고 있어 그림을 비교하고 인물 관계를 살펴보는 재미에 꽤나 두꺼운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완독할 수 있었다.
Gustave Courbet, < The Cliff at Étretat after a Storm >
나는 지난해 12월 24일, 제4회 제주 비엔날레를 맞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협력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2024.11.26. – 2025. 03.30.)를 감상한 바 있다. 국립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에서 최다 규모로 해외 출품한 전시였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해당 전시를 통해 이 책에서 다뤄지는/언급되는 작가 대부분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쿠르베, 모네, 모리조, 시냐크의 작품을 실제로 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위의 쿠르베가 그린 <폭풍우가 지나간 에트르타 절벽> 역시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렇듯 인상파의 작품들을 직접 눈에 담았던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책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Claude Monet, < The Cliff, Étretat, Sunset >
한편 쿠르베의 작품, 위의 모네의 <에트르타의 석양>과 같은 장소를 다른 방향에서 화폭에 담은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실제로 에트르타 절벽은 ‘인상파 영감의 원천’이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많은 당대 전후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특히 모네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곳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수차례 화폭 남길 정도로 에트르타를 사랑했다.
쿠르베의 에트르타는 사실주의의 대가답게 절벽과 바위의 섬세한 묘사에 가장 눈길이 간다면, 모네의 에트르타는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석양이 바다의 잔물결에 반사되는 빛을 표현한 다채로운 색상이 가장 눈에 띈다. 나는 인상파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예술가마다 각양각색의 붓질로 다른 느낌을 주는, ‘물이 있는 풍경’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에트르타 절벽과 바다를 화폭에 담았던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 p. 122)
책에 소개된 물의 풍경을 담아낸 다른 작품들을 더 살펴보자. 모네는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서 40년 이상을 거주하며 정원을 가꾸고 <수련> 연작을 비롯한 대표작들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이 남긴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 그의 정원이라고 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연꽃이 옹기종기 무리 지어 떠있는 연못의 맑은 물은 울창한 그의 정원을 반사하는 듯 푸르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한편, 저자 고로는 그가 수련만을 주제로 200장 이상의 그림을 남긴 것이 그의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Berthe Morisot, < The Port of Nice >
베르트 모리조는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 책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공감하며 보았던 화가였다. 다만 <치유의 미술관>에서는 당대의 여성미술가로서, 화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책의 경우 모리조와 마네의 관계, 그의 가족과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을 차지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부르주아 사교계 그룹의 드가파에서 마네를 단념하면서 인상파 전시에 꾸준히 출품하고 화풍과 기법을 꾸준히 탐구해나간 그의 화가로서의 면모가 더 궁금해졌다. 위 모리조의 <니스의 항구>는 잔잔한 물에 흔들거리는 배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하다.
푸르고 차가운 물의 색감과 형태가 불명확한 늘어선 배는 꼭 인상주의 음악가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의 거울 Miroirs 3악장, “바다 위의 조각배 Une Barque sur L’Ocean을 연상시킨다. 라벨,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을 들으며 모네, 모리조와 같은 인상파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Claude Monet, < Cliffs and Sailboats at Pourville >
빛은 곧 색채, 색채는 곧 빛.
절벽이 있는 바다와 수련 연못, 항구의 풍경은 인상파 화가들이 가장 사랑한 소재들이었다. 야마다 고로의 책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는 이처럼 다양한 인상파 작품의 특성과 숨겨진 이야기는 물론 작품 너머에 가려진 화가들의 관계성도 조명한다.
인상파에 관심이 많은 미술 애호가라면 꼭 추천하는 책이다. 앞서 소개했던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읽고 읽는다면 더욱 작가에 초점을 맞추어 읽기 유용할 것이다. 그리고 꼭 라벨과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길 권한다. 이제, 눈과 귀가 즐겁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 책을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