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 작가의 『가족이 있습니다』는 개와 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은 개가 사라진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기차에 오르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족’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개의 첫 번째 가족은 할아버지였다. 개는 할아버지와 함께 계절을 지내고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기억을 잃는 병에 걸린 할아버지는 더 이상 개의 곁에 있을 수도, 개와 함께한 추억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아마 영영 잊어버린 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는 할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개와 할아버지는 함께였고 서로를 가족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개는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서러움을 느끼기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개가 마주한 인물들은 개에게 쉽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아주머니, 버거머거 사장, 두 볼이 토실토실한 아저씨 모두 가족이 있다는 개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쫓거나 개를 이용하려 들 뿐이었다.
작품에서 개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짧은 문장으로, 또 그림으로 드러난다. 점점 어두워지는 그림의 배경과 바닥을 향하는 개의 목덜미가 개가 처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줘 개의 고난과 역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며 결국에는 할아버지를 미워한다고 말하는 개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 후 개는 경찰의 도움으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온 길을 후회하고 할아버지를 미워한다고 말했지만 개는 여전히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가족’이라는 단어 안에 ‘사랑’의 의미가 깃들어있음을 개의 행동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개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기까지 너무나도 힘든 시간과 길을 버텨왔다. 그러나 그 책임을 할아버지에게 묻지도, 미워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오랜만에 본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는 개의 행동에서 개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가족으로 따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는 병’에 걸려 한순간에 개를 잊어버린다. 여기서 ‘기억을 잃는 병’에 관한 서술이 흥미로웠다. 작품에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치매’를 ‘기억을 잃는 병’으로 풀어 설명한다.
“머릿속에 환하게 별이 들면 파란 하늘처럼 말갛게 지워지고, 머릿속에 뭉게구름이 드리우면 행복이 몽실몽실 피어났습니다.”
- 김유, 2020, 『가족이 있습니다』, 뜨인돌, 96쪽.
머릿속에서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을 ‘번개’나 ‘별’, ‘하늘’ 같은 자연으로 비유하고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치매’를 마냥 암울한 병으로만 해석하고 있지 않아 인상 깊었다.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는 병’으로 아픈 상황이지만 행복이 몽실몽실 피어나기도 할 것이라고 귀띔하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개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긴다. 할아버지와 개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기차 안에서, 개는 과거를 회상하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마 개에게는 ‘할아버지’라는 가족이 존재했기 때문에 개는 홀로 기차에 오를 수도, 그러한 용기를 가질 수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우연히, 개는 새로운 가족을 만난다. 아픈 할아버지를 두고 있는, 개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였다. 혼자가 된 개에게 아이는 먼저 손을 내민다.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던 날처럼 아이와 처음 만났던 날, 개는 아이의 손에 제 손을 올려놓는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개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 같아 안심되었다.
『가족이 있습니다』를 읽으며 작품에서 보여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만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그려진 가족은 혈연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생각하는 관계, 떨어져 있다가도 다시 만나는 관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관계였다. 동화를 읽은 모든 사람들에게 과연 ‘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