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기는 차갑다. 아직 봄이 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지만 영화 <써니데이>를 본다면 봄처럼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마음의 상처, 그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정답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향 사람들의 따스한 손길이 마음속 먹구름을 걷히게 하여 맑은 날이 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몸이 다쳤을 때는 적절한 치료와 함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회복된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혼자서 극복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 영화는 상처받은 마음을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 걸 보여준다. 극중 ‘오선희’는 연예계에서 톱스타로 성공하며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한다. 누가 봐도 화려하고 성공한 삶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남편과 심한 갈등을 겪는다. 결국 이혼 소송까지 진행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선희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겹겹이 쌓인 괴로움은 공황 장애를 앓게 하여 삶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진정한 삶을 찾고 싶었던 선희는 자신의 고향인 완도로 향한다. 그곳에서 첫사랑 '조동필', 고향 친구들 '하석진과 차영숙', 이 외 여러 고향 주민분들을 만난다. 이 만남은 갖은 고난과 역경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선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은 선희는 배우로서 재기하는 데 성공한다.
선희의 상처를 보듬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동필’이었다. 불안정한 선희에게 천천히 다가가 함께 발맞춰 걸으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과정에서 동필도 함께 치유를 받는다.
동필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로스쿨에 진학한 수재였다. 앞으로 어느 정도 장래가 보장된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면서 삶이 바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완도에 돌아와 고요하게 살아간다. 부모님의 사고는 동필을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여전히 그때 그 시간, 그 자리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를 벗어난 계기는 선희를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선희와 가까워지면서 삶의 생기가 되살아난다. 그리고 선희의 남편 ‘강성기’가 고향 완도에 무리한 리조트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걸 막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 고향 사람들이 평생을 함께 한 삶의 터전을 지켜낸 것이다. 이후 동필은 마을을 대표하여 변호하는 일을 맡게 된다. 한 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렇게 선희와 동필이 자신만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함께였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였다면 여전히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했을 지도 모른다. 선희에게는 동필이, 동필에게는 선희가 있었고, 그들 주변에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해주는 고향 친구들과 주민분들이 있었다. 이렇게 힘든 순간 단 한 명이라도 손을 잡아준다면 그 순간을 벗어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잠시 잊고 있던 정을 느끼다.
'정'은 사람 간의 온화한 기류를 흐르게 하여 돈독함을 만든다. 지금은 예전보다 정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차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함께보다는 혼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망설여지곤 한다. 또한 어떠한 대가 없이 선뜻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고, 도와주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씩 차가워지는 듯한 사회 속에서 이 영화는 따뜻함을 선사하였다. 그 따뜻함은 ‘고향과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고향’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 힘든 현실에서 잠시 도망쳐 올 수 있는 곳, 그래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곳이었다. 선희와 동필에게 고향은 도피처이자 안식처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힘들 때 자연으로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대도시보다 잔잔히 흘러가는 완도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일상에 쉼을 불어넣었다. 특히 선희에게 고향 친구들과 주민분들은 조건 없는 사랑과 배려를 베풀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커 온 가족 같은 존재로 그녀를 바라보고 품어주었다. 그런 고향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선희는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잠시 잊고 있던 사람의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정이 넘치고 인간미가 흐르는 고향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선희와 동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지만 그 이야기가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선희의 남편과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어 더욱 몰입감을 높여준 '성기'. 사랑하고 사랑을 주는 법에 서투른 어찌 보면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잔잔한 영화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석진과 영숙'. 이들 덕분에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된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영화 <써니데이>는 한 마디로 다정한 영화였다. 다정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릴 수 있다는 걸 보았다. 고향 친구들과 주민분들의 다정함으로 선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다가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동안 이 영화를 통해 아픔을 씻고 리스타트 하여 맑은 날을 맞이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