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정말 가슴 절절하고 뜨거운 사랑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를 미디어로 대리만족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어느 평범한 직장인이 평일 낮에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뛰쳐나가 떠나가려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단 말인가? 또, 재벌가의 막내딸로 태어나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북한에 불시착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현 21세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슴 뜨거운 사랑은 아마 불가능의 영역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오는 과도기 시점에서는 아마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러한 가슴 절절한 사실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베르테르는 자석산에 대한 인형극을 하며 신비한 모험에 들뜬 롯데의 싱그러움에 단숨에 매료되고 롯데는 시에 공감하는 베르테르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베르테르는 롯데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지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진다.
알베르트는 롯데와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려 하고 베르테르는 차마 그들의 행복을 지켜볼 수 없어 떠난다.
그러나 긴 여행 끝에도 롯데를 잊지 못해 발하임으로 돌아오는데…
뮤지컬 <베르테르>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독일의 대표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이긴 하지만, 일부 설정만 조금 다를 뿐 스토리 맥락은 거의 동일하다. 뮤지컬의 원제목도 소설과 동일했는데, 2013년도부터 지금과 같은 <베르테르>로 바뀌었다고 한다.
베르테르는 이곳저곳을 떠도는 나그네다. 그러던 어느날 ‘발하임’이라는 곳에 잠시 머무르게 되고, 그 곳에서 ‘자석산’에 대한 인형극을 펼치는 롯데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모난 곳 없이 발랄한 성격에, 자신과 문학적인 소양까지 잘 맞았으니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게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롯데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는 순간, 그녀에게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나쁜 여자 처참하게 무너진 마음과 함께 베르테르는 결국 발하임을 떠나게 되지만, 롯데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어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사랑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하필 베르테르가 돌아온 날은 롯데의 결혼식 날이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듣고선 2차 충격을 받게 된다. ‘약혼’이라 함은 말 그대로 조만간 곧 결혼을 한다는 사이인데, 당연히 결혼을 했을 거란 생각을 못 하고서 다시 되돌아오고 또 다시 상처를 받다니. 이 얼마나 사랑에 눈이 먼 자가 할 만한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지만 우리는 베르테르가 마냥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솔직히, 사랑이란 감정이 어디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머리가, 이성이 억누르고 있을 뿐, 그 감정의 변화는 내 스스로가 컨트롤 할 수 없다. 아니면 꽤나 오랜 시간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
또한 베르테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롯데의 모습은 분명 행복에 충만해 보였다. 그 안에서 롯데 역시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베르테르가 자신을 영영 떠나려 할 때, 그의 죽음을 직감했을 때 그렇게 오열하지도 않았으리라. 나쁜 여자
이미 결혼을 한 롯데. 여기서 더 사랑을 갈구해봤자 이 삼각관계의 끝은 파멸 밖에 없기에 결국 베르테르는 롯데의 집에 있는 권총 한 자루를 빌려 또다시 발하임을 떠나게 된다. ‘총’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의 무게를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롯데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이후 여러 해바라기를 세워 놓고 마지막 한 송이만 남겨둔 다음, 그 마지막 한 송이가 쓰러지면서 나는 큰 소리에 베르테르의 모습이 함께 사라지는 장면은 명장면이었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작품이었다. 감성적인 음악과 서정적인 플롯은 직접 관람함 나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꽃에서 꽃으로 끝나는 뮤지컬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같았다. 이에 더해 본 작품은 뮤지컬 매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우리나라 뮤지컬 최초로 작품 동호회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탄생시키며 공연 문화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고도 한다.
뮤지컬의 원작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심정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실제로 작가 괴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던 '샤를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한 적이 있었고, 자신의 오랜 친구 '예루살렘'이 상관의 부인을 연모하다 끝에는 자살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접한 바 있다. 이러한 실제 경험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자살이 가장 큰 죄악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적 생활방식이 지배적이던 이 시기에, '자살'이라는 결말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지니는 가치가 그만큼이나 크고, 이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이 팍팍하다보니, 요즘에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작품들을 주로 선호했었는데, 오래간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작품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