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에세이] 청년 기획자의 전시기획 도전기 - 속, 보이다 ①' 에서 이어집니다.
<속, 보이다>
“모든 작가들은 그들만의 수장고를 가지고 있다”
후즈아트 첫 기획 전시 <속, 보이다>에서 신진 작가들의 ‘수장고’를 소개합니다.
수장고는 귀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로, 모든 작가들은 그들만의 수장고를 갖고 있습니다.
아직 대중에게 선보이지 못했던 수장고 속 원석들을 처음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속, 보이다>에서는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엿보며 작가 그 자체를 조명합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업 과정을 바라보며 작가의 내면과 철학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기획존과 기획 영상을 통해 다각적으로 작가의 수장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들의 고민을 활자로 직접 만나보는 작가노트와 그들의 삶의 일부인 소장품을 통해 작품의 창작 과정을 이해하는 <소장품> 존,
작가의 작업 과정의 수고스러움과 닮아있는 필름 카메라 인화과정이 담긴 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획 전시 <속, 보이다>에서 청년 작가 7인의 작품과 작업과정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7인의 신진 작가의 열정과 가능성이 만들어 낸 감동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 <속, 보이다> 전시 서문
3. 세부 기획
<속, 보이다>에는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기획존이 있다. 청년 기획자들이 만든 기획전시인만큼, 또 '속을 보이는' 전시인만큼 단순한 작품의 나열이 아닌 기획자의 특별한 시선을 담고 싶었다.
본래는 작가 7인의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여 '인터뷰 영상 상영'이란 첫 번째 계획이, 또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이자 작가의 철학이 담긴 '작가 노트'를 전시할 두 번째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촬영이 가능한 작가님이 두 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종이 작가노트가 예상보다 적었다. 작가노트가 부재한 점부터 작가노트가 디지털 파일인 점 등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렇게 팀원들은 또 한 번 논의를 거쳐 새로운 대안을 만들었다.
Focus on Process : FOP
작가들의 관점, 그리고 작업과정을 강조하기 위해 "필름 카메라"를 활용하기로 했다.
작업 과정과 필름카메라는 닮아있다.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과 필름이 인화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인고의 시간을 견딘 후 완성된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결과를 알 수 없고, 필름도 마찬가지로 인화되기까지 촬영본을 볼 수 없다. 두 과정의 유사점을 통해 과정 자체를 조명하는 것은 <속 보이다>의 주제에도 적합했다.
FOP 과정은 7인의 작가가 필름카메라로 작업 과정, 작품 그리고 일상 등을 촬영하하여 진행한다. 그렇게 인화된 사진과 7롤의 실물 필름은 기획존 벽면에 설치되고, 인화 사진을 활용한 영상이 영상실에서 재생된다.
작가 소장품
작가 삶에 영향을 준 물건, 작품활동을 할 때 필요한 물건 등을 기획존에 함께 전시했다. 사물에 깃든 추억은 작가에게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 영향은 작품 속에 녹아들기도 한다.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내밀하고 치열한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손가락을 붓 삼아 작업하는 천지용 작가는 물감이 담긴 종이컵에 반쯤 잠겨있는 장갑을, 비틀벅 컴프레셔에 먹물을 담아 작업하는 임하연 작가는 컴프레셔 헤드를, 빨강에 영감을 받은 최한결 작가는 독일에서 산 '빨강, 사랑의 색' 시집을 전시했다. 각자의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는 소장품은 작가와 작품을 자연스레 연결해, 더욱 깊이 있는 이해와 몰입을 이끌어냈다.
소장품을 리스트 파일로 받고, 실물 소장품과 필름은 전시 기간 직전 택배로 받았다. 많은 요청사항과 제각각인 마감기한에 작가님들에게 마감 기한을 리마인드 해야 했고, 택배의 분실 위험과 기간 내 택배가 도착하지 않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일정관리와 빠른 상황파악으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영상 인터뷰 그리고 작업실 촬영
인터뷰 촬영에 얼굴과 목소리 활용에 동의해 주신 작가님은 소수였다. 그럼에도 작업실 촬영과 서면 인터뷰는 진행됐다. 팀원들이 각자 스케줄을 조정하여 작가 작업실에 찾아가 제작 과정을 엿보았으며, 인터뷰 영상 촬영을 했다. 본인은 공학도였기에 미대 건물에 들어가 보는 게 처음이었고, 특히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작업실에 들어가 생생한 현장을 관찰할 수 있다는 건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작가의 창작 공간이자 아이디어가 형상화되는 장소인 작업실엔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고, 작가만의 작업도구가 놓여있었다. 작가의 작품을 오래된 작업 도구들에서 예술가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보았다. 책상엔 책, 스케치, 메모나 수집품 등이 있었고 작가가 어느 곳에서 영감을 받는지 볼 수 있었다. 작업실 내 쌓인 캔버스엔 창작의 흔적과 역사가 있었다.
작업실 촬영은 관객에게 작업 이면의 과정까지도 전달해, 예술가와 연결감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현재 후즈아트 전시 인스타계정에서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과 작업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식은땀 흘렀던 순간은 출품작 확정 과정에서였다. 전시 오픈 몇 주 전, 갑자기 타 전시에 작품을 제출해 작품을 바꿔야겠다는 건의가 들어왔다. 이미 출력이 시작된 전시 도록과 작품 굿즈로 인해 작품 변경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작품 수정이 불가능할 경우 전시 참여가 곤란하다는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기존 작품과 같은 크기와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 변경이라는 대안으로 조정했다. 인쇄물에 수록된 작품이 실제 전시작과 상이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으나, 역량 있는 작가의 참여 철회는 <속, 보이다> 전시의 본질적 가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따라서 전시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작가는 작품 보관 중에 작품이 심하게 훼손되어 출품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해당 작품은 기존의 일부만 칠하는 작품과 달리 캔버스 전체를 채워야 했다. 거기다가 투명한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겹의 채색 과정이 요구되는 작가 고유의 기법이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상당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앞서 언급된 사례와 마찬가지로 작품 변경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신속하게 완성하여 예정대로 전시 참여를 했다.
이를 통해 문제 상황에서 유연한 사고와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작가와 기획자와의 명확하고 투명한 의사소통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와 많은 소통과 협력이 필요한 기획이었기에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이었다. 계약서, 서면 인터뷰와 소장품 등 문서 메일 회신, 카톡방 운영 및 공지, 필름 카메라와 소장품 발송, 인터뷰 시간/장소 조율, 작품 운반 상황 체크 등등.. 특히나 작가 뮤니케이션 담당이었던 나에겐 공지를 드리고 7분의 확답을 받고, 의견이 다르면 조율하고 설득하고, 또 새로운 건의가 들어오면 거기에 맞게 상황을 결정과 조절해야 했다.
작가와의 소통 업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방대한 공지사항과 전달사항을 효율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었으며, 의견 충돌 발생 시 신속하고 유연한 조율을 통해 원활한 협업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4. 전시 설치 및 <속, 보이다> 전시 진행
예산상의 제약으로 인해 하루의 대관료를 절약하고자 밤샘 설치 작업을 감행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원 과반수가 자발적으로 설치 작업에 동참했으며, 이들의 모습에서 전시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풋풋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으나, 아이고야 실제 전시장 현장에 도착해서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러나 팀원들은 매 순간 신속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며,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팀원들의 헌신적인 태도와 문제해결 능력은 전시의 준비 과정에서 큰 빛을 발했다.
캔버스 작품을 디피하기 위해서는 갤러리에서 제공하는 케이블에 작품을 걸어야 했다. 따라서 캔버스 뒤 케이블에 걸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공지를 드렸지만, 미처 작업이 되지 않은 캔버스 3대가 퀵으로 배달 왔다. 문제가 들어오면 해결을 하면 된다. 급히 다이소에서 못과 낚싯줄을 사 와 캔버스 뒤판에 못을 박고 줄을 연결했다. 또 층고가 높아 작품을 케이블에 걸기 위해 사다리가 필수였는데, 사다리가 하나뿐이라 한 사람이 쓰는 걸 기다리며 시간이 딜레이 되었다. 또 다른 일로는 영상실에서 상영할 목적으로 준비한 빔 프로젝터가 연결이 되지 않아 영상 재생이 어려워 노트북, 아이패드로 재생하기도 했다.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서로의 지혜를 모아가며 차근차근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때로는 완벽한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며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전시 서문 스티커 부착부터 작품 설치 및 기획존 구성 등 설치 작업은 새벽 4시까지 진행되었다. 이때까지 남아 힘써준 단원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다음날 아침 오프닝 운영 및 참석의 일이 있어 행사 1시간 전 갤러리에 도착해 마지막 준비를 했다. 조명이 밝다는 건의가 있어서 모든 조명을 끄고 어두운 지하 1층 갤러리에서 핸드폰 랜턴에 의지한 채 사다리를 오르고 등을 제거했다.
전시 오픈 당일 오프닝 행사가 진행됐다. 작가 5분의 참여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작가 세 분의 갑작스러 개인 일정으로 두 분의 작가와 오프닝파티는 소소하게 치졌다. 처음 <속, 보이다> 아이디어를 제시한 기획팀원이 전시 공간 해설을 맡았고, 작가와 기획자들이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작품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작가의 예술 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와 AI와 함께 작업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분에게 영감을 얻는 시간이었다.
<속 보이다> 전시가 5일간 진행되며, 예산 절감과 실무 경험을 위해 기획자들이 직접 전시 상주를 맡게 되었다. 5일간 두 명씩 교대로 갤러리를 지키며 운영을 도맡았는데, 상주 중이던 어느 날 특별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이 전시장을 찾아와 축하의 마음을 전해주었고, 그들과 함께 전시장을 천천히 돌며 작품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직접 전시를 소개하는 그 순간은, 기획자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기쁨이었다.
또래의 기획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뚝딱뚝딱 정성스럽게 전시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작가와 관람객, 갤러기 관계자분까지 깊은 관심과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셨다. 청년 작가들을 위한 <속, 보이다> 전시가 가진 의미를 되새겨보니, 우리의 열정과 노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이 되어, 앞으로도 예술을 향한 청년들의 창의적인 도전과 순수한 열정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