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검은 선에 자연의 형태를 담는 일러스트레이터, 포소의 세계

고요한 작가 포소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글 입력 2025.01.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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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4.png


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검은 선에 자연의 형태를 담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포소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연을 기반으로 펜화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 포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크기변환]대표 이미지.jpg

 

 

- 예전 자기소개에서는 ‘자연과 여러 물성들의 만남을 그린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을 보았어요. 이번 자기소개에서는 ‘물성’이 빠지게 되었네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맞아요, 예전에는 ‘자연과 물성을 뒤섞는다’는 표현으로 저를 소개하고는 했어요. 초반에는 자연과는 동떨어진, 유리 같은 인공적인 사물을 자연에 뒤섞는 작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포토 배싱 기법을 통해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그려내기도 했어요.


소개가 바뀌게 된 이유는 역시 저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전의 저는 자연의 영역을 식물과 곤충 등으로 국한 지어 생각했어요. 그런데 [본태니컬]이라는, 뼈와 식물을 뒤섞는  작업을 바탕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뼈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덕분에 그때의 작업을 바탕으로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자연을 기반으로 한 일러스트를 그린다’고 전반적으로 소개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탐사하며 발견한 '뼈식물 도해도' ㅡ [본태니컬]


 

- 작가님의 아트북 [본태니컬]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 아트북 [본태니컬]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회전][크기변환]본태니컬 표지.jpeg

 

 

‘나만의 뼈 식물 도해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게 되었던 책이에요. 세상에는 없는 '뼈 식물'을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아트북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씩 발견하고 기록한 것처럼 만든 도서입니다.

 

저의 첫 아트북이자 현재의 저를 대표하는 작업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아트북 [본태니컬]을 바탕으로 지금의 작업 방식을 확립하게 되었다고 해주셨어요. ‘인간이 자연의 일부다’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뼈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무척 인상 깊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본태니컬]이라는 작업은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들었던 수업에서 파생된 작업이에요. 당시 저는 두 개의 과제를 받았는데 하나는 편집 디자인 책을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자기만의 표현 방식을 찾는 것이었어요. 저는 평소 오컬트 등에 굉장히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마녀를 테마로 삼아서 마녀의 역사 등을 담은 책을 제작하게 되었어요.

 

마녀를 테마로 삼다 보니 역사, 페미니즘 등 자연스럽게 과거 마녀들과 연결이 되어있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유독 약초학이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마녀들이 과거 사용했다는 식물, 마녀들의 약물 레시피 등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독특한 형태의 식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식물 도해도를 살펴보게 되었죠. 인체에는 아나토미가 있듯이 식물의 형태와 내부 구조를 그려서 기록한 것을 식물 도해도라고 부르는데, 그것을 보면서 세밀하게 정리된 식물의 형태가 인체의 내부 형태, 특히 뼈의 형태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식물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기하학적 모습 혹은 유기적인 곡선을 갖고 있는 ‘뼈’를 식물과 함께 조합하여 작업을 이어나가게 되었어요. 

 

 

[크기변환]Amanita muscaria.jpg

 

- 마녀에서 [본태니컬]이 시작되었다니 무척 의외네요. 원래 오컬트적인 것을 좋아했었나요?

 

많은 분들이 [본태니컬]의 시작이 마녀라는 사실을 알면 무척 놀라세요. 하하.

 

사실 옛날에는 오컬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동화적인 것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동화에서도 마녀, 요정 등의 존재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항상 그런 존재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좋아했던 동화 중 [12월의 요정 이야기]라는 계절별 요정이 나오는 동화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3월의 요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꽃과 식물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있죠.

 

또, 제가 종교인인데, 그렇다고 하나의 종교에만 국한되어 선호하기보다는 다양하게 종교적인 요소들을 좋아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다른 존재에게 소원을 빈다는 그 행위 자체가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거든요. 개신교에게는 그것이 기도가 될 수 있겠고, 불교에게는 수행 혹은 부적이 될 수도 있겠죠. 이러한 저의 취향이 '오컬트'라는 요소와 결합해서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이 된 것 같아요.

 


- [본태니컬]을 제작하며 작가님께서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핵심 방향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사실성에 무척이나 집중했어요. 

 

사실 ‘뼈 식물’이라는 것이 정말 현실에는 없는 굉장히 판타지컬한 요소잖아요. 그것을 현실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여 ‘뼈 식물 도해도’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다’고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료 조사도 정말 많이 하고, 묘사도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했었죠. 자연스럽게 그림 스타일 자체도 해칭을 넣어 세밀하게 명암을 표현하고, 실제 과거 역사책에서 발견되었던 느낌을 추구했었습니다.

 

 

- 그렇다면 아트북에 담긴 수많은 '뼈 식물' 중 [본태니컬]을 대표할 수 있는 작업은 무엇이 있을까요?

 

[네펜데스]와 [까마중]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네펜데스]는 제가 작업을 진행할 때 형태적인 면에서 굉장히 재미를 느끼며 그렸던 작품이에요 [네펜데스]는 식물의 동그란 형태와 인간의 갈비뼈를 뒤섞어 그린 그림인데,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본태니컬] 작업을 진행하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너무도 섬세하게 표현되어서 진짜 존재하는 것만 같은 뼈 식물을 그리는 것이 목표였거든요. 그런데 [네펜데스]에 그게 가장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어요.


[크기변환]Nepenthes.jpg

 

[까마중]은 개인적으로 애착이 정말 많이 가는 작품이에요. 제가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갈 때면 길가에 있는 까마중을 보며 ‘이게 까마중이라는 식물이야’라고 아버지께서 저에게 소개해 주셨던 기억이 있거든요. 저의 유년 시절 추억이 담겨 저에게 정이 가는 식물이죠.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과거 마녀들이 약초학을 공부하며 실제로 굉장히 많이 사용했던 식물이더라고요. [본태니컬]이라는 책의 시작과 가장 연관성이 깊은 식물이라는 생각을 해요.

[크기변환]Solanum nigrum.jpg

 

- 기존에 있던 식물의 형태와 뼈의 형태를 뒤섞어 사실성을 추구하면서도 그 원형은 유지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다 보면 식물의 원형이 사라지기가 굉장히 쉽거든요.

 

사실 처음 [본태니컬] 작업을 할 때는 오직 인간의 뼈만 사용했어요. 자료조사도 인간의 아나토미 쪽으로만 찾아보고 공부했죠.

 

그런데 뼈에 대해 조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동물들의 뼈도 함께 접하게 되었어요. 그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도 굉장히 매력적인 뼈 모양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함께 작업에 녹여내게 되었죠. 그래서 제 작업을 살펴보면 기린의 목뼈, 거북이의 등껍질, 뱀의 갈비뼈까지 인간이라면 갖기 어려운 형태의 뼈들을 활용해서 뼈 식물의 범위가 확장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만드라고라]라는 뼈 식물은 제가 거북이의 두개골을 합친 작업에요.

 

이와 같이 식물의 실루엣과 최대한 닮은 뼈를 찾기 위해 다양한 형태를 시도하여 식물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매력적인 뼈 식물을 구상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아요.

  

 

[크기변환](만드라고라)Atropa mandragora.jpg

 

 

- 처음 자신만의 책을 만든 것이니 분명 만족스러운 점도, 아쉬운 점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본태니컬]을 완성하고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었을까요?

 

 

[크기변환]내지 (1).jpg

 

 

책의 형태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책의 콘셉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이었다 보니, 실제로 이 책의 구매자가 책을 읽는 과정이 마치 탐사자가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식물을 기록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록 1, 기록 2’ 등 레코드 형식으로 되어있고, 식물 옆에는 구매자, 즉 탐사자가 식물을 발견하고 느낀 감정과 생각, 연구 결과 등을 적을 수 있도록 일부러 칸을 비워뒀어요. 제가 생각했던 ‘연구 일지’ 내지 ‘탐사 일지’의 형태를 잘 구현해낸 것 같아서 참 마음에 듭니다.

 

또, 사실 책은 일방향 소통 매체잖아요.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분들에게 그림을 많이 노출하지 않고 혼자 그림을 그려왔던 제가 처음 다른 분들의 앞에 선보이는 책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니 어떤 방식으로든 양방향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뼈 식물에 대한 저의 의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구매자(탐사자)의 의견을 많이 적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도 있어요. '양방향 소통'이라는 것을 100% 이룰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형식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 아쉬웠던 점도 하나 꼽아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본태니컬]의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아쉬움이 없지만, 편집자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고전 기록 일지처럼 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책등이 노출되어 드러나는 ‘노출 제본’ 형태를 생각했거든요. 책의 뼈대를 드러낸다는 것이 뼈 식물과도 긴밀하게 연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학생 때 이 책을 만들었다 보니 금전적인 한계가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무선 제본으로 책을 제작하게 되었어요. 대신 표지를 단단한 하드커버 양장으로 넣고, 제목 부분에는 투명 박 후가공을 넣으며 ‘뼈 식물’의 정체성을 표지 및 책의 형태에도 담아낼 수 있도록 했어요.

 

결론적으로 노출 제본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대신 다른 방향으로 뼈 식물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또한 나름대로의 만족감이 있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해당 도서로 [서울 북 페어]에도 참가하셨어요. 처음 작가님의 아트북, 작가님의 작품을 사람들 앞에 선보인다는 것은 굉장해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서울 북 페어]는 처음부터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사실 서울 북 페어는 너무나도 유명한, 많은 디자이너들의 독립 출판들의 축제잖아요. 항상 관람객으로 찾아뵈었다가 [본태니컬]을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하여 신청했는데 감사히 선정되었어요.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세상에 책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림을 자기만족으로 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많이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행사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관람객분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블로그 등에서 후기도 볼 수 있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정말 인상 깊은 피드백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피드백이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얇고 섬세한 선이 모여 파워와 강인함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였어요. 저는 특히 이 후기를 보고 정말 크게 놀랐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라는 사람의 성격 자체를 묘사해 줄 때 ‘처음 보았을 때는 내면이 약해 보이고, 타격을 많이 받을 것 같지만 오래 함께 하다 보면 회복 탄력성이 굉장히 좋으며 심지가 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해주시거든요. 그러한 저에 대한 이야기가 해당 [본태니컬]의 후기와 일맥상통한 느낌이 들어서 ‘그림에는 그린 이의 성격이 담기는구나’를 저 스스로도 많이 와닿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어요.


또, 다른 한 분은 저의 [본태니컬]을 봐주시고 ‘식물의 정적인 느낌과 동물의 동적인 파워가 느껴지는 화집이다’라고 표현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본태니컬] 작업을 진행하던 당시 저의 목표는 '자연'과 '뼈'의 물성을 융합하는 것이었잖아요. 지금까지 저의 그림을 본 주변인들은 ‘무서운 그림이다.’ 말을 많이 해주었거든요. 그분께서 저의 의도와 목표를 그대로 받아들여 주신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뼈'는 곧 '자연', 자연의 형태 그 자체를 바라봅니다



- 인간의 뼈 중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뼈를 하나 골라주시겠어요?

 

좋아하는 뼈는 항상 바뀌지만 최근에는 인간의 골반뼈를 가장 좋아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사물의 물성을 바꿔서 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히 인간의 골반뼈는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나비와도 같은 형태를 갖고 있더라고요. 인간의 뼈가 곤충, 그중에서도 나비를 닮았다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그렇게 작업한 것이 바로 [투라오스]였을까요? 저 또한 해당 작품을 보면서 기존 [본태니컬]의 작업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기변환]θυρεος.jpg

 

 

맞아요. 저는 이 작품이 저의 작업 방향성이 바뀌는 변환점이 되는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물성과 뒤섞지 않고, 형태적으로 유기적인 연결성을 보게 되었던 작품이죠.

 

예전에는 ‘물성을 뒤섞는다’고 하면 식물과 뼈의 자리를 바꾸는 형식만을 떠올렸어요. 거기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 사실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죠.

 

하지만 [투라오스]를 통해서 잘린 골반뼈의 형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형태적으로 나비와의 접합점을 찾는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자리를 바꾸지 않아도 인간의 뼈의 형상과 나비의 형태를 함께 표현하면서 말이에요.

 

 

- 현재 작가님의 작업은 말씀해 주신 것처럼 식물과의 연결성보다는 뼈 그 자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최근에 나왔던 굿즈도 모두 '뼈'의 형태에 집중하고 있는데. 작가님에게 ‘뼈’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보기만 해도 신기한 감정이 드는 물질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뼈’라는 단어 하면 무섭고, 으스스한 감정이 들잖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감정보다는 신비로움이 더욱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모두가 갖고 있지만, 모두가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료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매력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 '뼈'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갈 것 같아요.

[크기변환]summer of ruach.jpg

 

 

포소의 시선을 담아낸 어른 동화, [작은 불씨]


 

- [본태니컬]의 차기작이 기대가 되는데, 혹시 지금 구상중인 것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뼈의 형태와 닮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 목표로 해서 [작은 불씨(가제)]라는 작은 동화책을 구상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다툼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죠. 서로가 갖고 있던 불씨가 점점 튀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다가, 나중에는 모두 소진이 되는 거예요.

 

저에게 '불씨'라는 것은 결국 저 스스로가 다루지 못하는 감정을 의미해요. 그런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계속 작게 가지고 나아가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나의 불씨를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동화에 담고 싶었어요. 결론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크기변환]작은불씨_마을.jpg

 

 

- 포소 작가님의 동화라니 무척 기대되네요. 스토리도 무척 흥미로운데, 해당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아동 미술에도 관심이 있어서 잠깐 관련해서 일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계속 아이들을 마주치고, 동화를 접하다 보니 동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갈망을 갖게 되었어요. 특히 앞서 제가 만들었던 도서 [본태니컬]은 내러티브가 없는 책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꾸려서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만 지금 성인이 된 제가 동화를 계속 좋아하고 있다 보니, 아동만을 위한 게 아닌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어요.


 

- 아동 미술에 관심이 있다고 해주셨는데, [작은 불씨]의 타겟층은 어른이네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어른 동화'가 굉장히 어려운 분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화의 타겟층은 어린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동 미술 일을 할 때, 아이들이 어른 동화를 읽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제가 그 아이들에게 ‘혹시 동화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니?’ 물어보니, 이야기는 조금 어렵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통해 동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어른에게도 깊은 의미를 주고, 아이들에게도 그 각자 나름의 의미를 담아줄 수 있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동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 그렇다면 현재 [작은 불씨]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점이 있다면.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보니, 그 인물들을 기존의 화풍과 어떻게 어우러지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사람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정말 사실적이게 그릴 수도 있고, 완전히 캐릭터화해서 그릴 수도 있으며, 디자인적으로 표현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동화’라는 장르 속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이끌려면 어떠한 방식으로 균형을 찾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콘티를 짜고 있는 단계인데, 그 안에서 이야기의 강약을 주는 것에서도 계속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일러스트를 그린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낸다는 것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너무나도 다른 영역이잖아요. 이야기가 담긴 그림은 어떻게 강약 조절을 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흐름이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저의 동화책에서 강약 조절로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비워내는 것'을 위한 선을 긋는 수행, 만다라


 

- 작가님께서 그림을 그리며 주로 영감을 얻는 곳이 있다면?

 

저는 단어의 울림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히 히브리어와 같은, 저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언어들이 저에게 전달해 주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숲’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그 어감에서 자연물을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어감이 전달해 주는 느낌이 저에게는 새로운 그림으로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 앞으로의 그림 작업은 어떠한 방향을 향할까요?

 

뼈와 식물을 섞는 작업 외에도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를 시도해 나가고 그리고 싶어요. 특히 제가 최근에는 [만다라] 작업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일러스트 부적과도 같고, 수행과도 같은 작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단어를 듣고 어감을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서 이를 책으로 엮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만다라]를 그릴 때도 저에게 생소한 독일어 노래를 들으며 작업을 했거든요.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을 듣고, 그 언어의 어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크기변환]mandala sphere.jpg

 

 

- 생소한 노래를 듣고 그림으로 표현한다니 놀랍네요. 그렇다면 [만다라]를 그릴 당시, 그 노래의 가사에 대해 전혀 몰랐던 상태였을까요?

 

네, 전혀 몰랐어요. 사실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그림을 그린 후 제가 노래의 내용을 찾아보고 나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노래를 들으며 그렸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그 노래의 내용을 알고 들을 때의 감정이 비슷한 결을 갖고 있더라고요.

 

제가 이번 [만다라]를 그리며 들었던 노래는 ‘동료들이 다 떠나도 계속 건배를 하며 그들을 기억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노래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그리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그린 [만다라]도 기존의 [본태니컬]이 갖고 있는 육중한 무게감에서 벗어나 가냘픔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래의 애절함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나중에 또 다른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작업이 진행될지 모르겠어요. 하하. 분명 노래 내용과 그림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작업도 있겠죠. 그렇다면 그때 마주치는 아이러니도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 [본태니컬]은 무겁고 [만다라]는 가볍다고 해주셨어요. 그 무게감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가장 먼저 형태적으로 본다면 해칭의 차이일 것 같아요. [본태니컬]은 해칭이 많이 들어갔고, [만다라]는 해칭이 전혀 없으니까요.

 

 

[크기변환]KakaoTalk_20250122_163730099_01.jpg

 

 

하지만 의미적으로 조금 더 그 무게감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본태니컬]은 그 시작점 자체가 마녀라는 옛날 여성의 의학적 지식이다 보니, 그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다라는 제가 어떠한 배경지식을 자세히 찾아보고 그 의미를 따지며 제작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국의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를 저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 것일 뿐이에요.

 

저 스스로의 마음가짐의 무게에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본태니컬]의 추구 방향은 '완벽한 사실성'이었잖아요. 이 세상 ‘뼈 식물’이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이어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저 스스로가 ‘완벽’이라는 단어에 갇혀 경직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손이 가는 대로, 더욱 가벼운 마음대로 즐기며 그렸던 것이 [만다라]였습니다.

 

 

- 특정 종교의 종교인임에도 굉장히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갖고 계시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워요.

 

아하하, 사실 제가 그렇게 신앙심이 깊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종교가 갖고 있는 형태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신의 형상이 존재하고, 그를 믿는 신도들이 있고, 신의 가르침을 따라 교리를 실천한다는 그 과정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것 같아요. 또 종교마다 미적으로 특징이 뚜렷한 것도 흥미롭고요.

 

그래서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 특히 [만다라]를 그리는 것이 저에게는 일종의 수행 같은 종교 행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수행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기도하고, 불교에서는 절을 하듯 어떠한 행위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잖아요. 저에게는 그것이 선을 긋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선을 그리는 게 저에게는 마음을 다잡는 수행인 것이죠.

 

 

- 모든 종교의 수행에는 그 목표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 선을 그리는 것이 수행의 일종이라면,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의 수행 목표는 생각을 비우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정말 많거든요.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죠. 그런데 무언가에 몰입하게 되면 생각을 덜어낼 수가 있잖아요. ‘비워내는 것’, 그것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하하.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앞서 말씀 드렸듯 저는 저의 자아를 작가로서도, 작품으로서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에요. 작가의 의도를 파헤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작품을 바라봐 주었으면 해요.



- 작가님께서 작가님 스스로를 정의 내린다면, '어떤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으세요?

 

‘고요한 작가’ 아닐까요? 단편적으로 봤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 정적 속에서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적으로도 타인에게 저의 그림을 일부러 노출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렇게 고요 속에서 차분하게 그림을 그려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요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 작가님께서는 펜화 작업과 동시에 디자인도 하고 계시잖아요. 펜화와 디자인이 작가님께는 각각 어떤 의미인지, 어떤 방향성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펜 일러스트는 표현적이라 좋고 디자인은 되게 함축적이라 좋아요. 글을 쓸 때도 직접적으로 '인물이 화가 났다'고 적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간접적으로 '인물의 얼굴이 붉어졌다'고 적은 방법도 있잖아요. 저는 전자가 펜화, 후자가 디자인의 특징 같아요. 저는 그 두 개를 융합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투라오스] 같은 작업도 그림 자체는 굉장히 묘사가 상세한, 설명적인 그림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투라오스]의 배치 자체는 무척 디자인적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게 표현적인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그 중간 지점을 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고요.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저의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방향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인터뷰를 읽어주실 분들께, 그리고 작가님의 작품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는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작업의 시작부터 세부적인 부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좋은 작업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큰 감동을 받곤 합니다. 제 그림과 이야기가 여러분께도 그런 울림을 전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검은 선들로 그려나갈 제 여정을 함께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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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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