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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도 못하게 자주, 그리고 은밀하게 혐오를 주고 받습니다. 여행 중 만난 한 친구는 한 살 때 중국에서 입양되어 카탈로니아에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뿌리를 찾아 사람들에게 해명해야 했습니다. 시카고에서 만난 한 남성은 가족에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들켜 망명 오듯 일본에서 이곳으로 도망쳐 와야 했죠.

 

인종, 성적 정체성, 그 어느 것도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지만 누군가는 이 잣대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맙니다. 이렇듯 차가운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은 우습게도 사랑과 연민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서 드라마 '트렁크'가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깊고 따듯합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정상성을 잃은 시대에서 세계의 폭력에 담백한 사랑으로 대항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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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 '노인지'(서현진)는 결혼정보업체 회사의 비밀 자회사인 NM에서 배우자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6년 차 차장이에요. 늘어난 수명과 높아진 자유에 대한 인식으로 결혼에 대한 관념이 파괴되었고, 이 회사는 사람들에게 더욱 행복한 결혼생활을 목적으로 기간제 배우자라는 선택지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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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가 범상치 않은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경위는 바로 파혼 때문이었습니다. 5년 전, 인지는 남자 친구였던 '서도하'(이기우)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그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이 세상에 폭로되며 결혼은 엎어졌고 도하 또한 그녀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서도하에 대한 그리움은 그녀를 시들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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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지를 목격한 NM의 대표 '이선'(엄지원)은 그녀에게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이후 인지는 시한부이지만 사랑을 하고 싶었던 사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자 결혼이 필요했던 사람 등과 네 번의 결혼을 마치고 새로운 남성 '한정원'(공유)과의 다섯 번째 결혼을 앞두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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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점은 본인의 의지로 결혼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정원은 전처인 '이서연'(정윤하)에 의해 계약하게 되었는데요. 이서연은 한정원이 1년간 계약결혼을 잘 유지한다면, 다시 그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했죠. 어렸을 적 가정폭력에 방치되어 사랑에 결핍된 한정원은 이서연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했고 그녀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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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정원과 노인지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되었습니다. 느닷없이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인지는 색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상처를 담담하게 보듬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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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5년 동안 노인지를 스토킹한 '엄태성'이 정신병원에서 나오며 그녀 주변을 다시 맴돌기 시작했죠. 한정원과 노인지는 이러한 위험들로부터 서로를 지켜주고 같이 아파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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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근 호수에서는 피 묻은 트렁크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요, 이 사건을 수색하며 경찰은 노인지와 한정원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트렁크' 속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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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상징성을 갖습니다. 먼저, '노인지'는 연민과 사랑을, '한정원'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서도하'는 세상으로부터 숨어야 했던 사회적 소수자를, '엄태성'은 세상에 만연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이선'은 기존의 사회규범을 개척해 나가는 자유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한정원이 노인지로 인해 부모님과의 불행한 기억으로 가득찬 집을 부수고 나오는 것은 결국 사랑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을, 노인지가 이선의 회사에서 일했던 것은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자유를 이어 나간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보여줍니다.

 

또한, 서도하는 엄태성에 의해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지만 결국 엄태성에 정면으로 대응해 이겨냈다는 점에서 세상의 폭력은 결국 사회적 소수자들을 억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선의 지시에 엄태성이 결국 살해당하는 것은 자유는 항상 폭력 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죠.

 

 

 

'트렁크'를 봐야 하는 이유


 

드라마 '트렁크'는 공유와 서현진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과 동명의 원작 김려령의 소설 '트렁크'의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큰 기대를 모았는데요.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작품이 공개된 후, 원작과 달리 한정원의 역할이 대폭 증가하며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매끄럽지 못해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을 건드리는 담담하게 따스한 대사들과, 노인지와 한정원의 관계를 통해 서로 보듬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봐야 할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폭력 속에서 피어난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다면 여러분도 이 트렁크를 한번 열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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