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해 [영화]

있는 힘껏 살다(Life of Every Wholehearted Beat), 제7회 서울동물영화제
글 입력 2024.10.3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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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제7회 서울동물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있는 힘껏 살다(Life of Every Wholehearted Beat)’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며 총 55편의 영화가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영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동물권행동 카라가 매년 주최하는 서울동물영화제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동물의 삶에 집중한다. ‘동물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응답하고 관계 맺는 역량’에 대한 질문을 던진 올해, 동물영화제를 찾았다.

 

6편의 상영작을 관람하며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고립되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여태껏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 갇혀 동물의 삶을 바라보고 규정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곱씹고 또 곱씹었다. 비인간 존재들과 공생하는 방법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탄생된 작품들을 보며 ‘삶의 주체로서의 동물’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우리는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할까. 고민과 사유의 폭을 넓혀준 3편의 영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인간이 부재하는 세계에서 동물의 주체성과 자연의 존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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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감독의 영화 ‘플로우(FLOW)’는 대홍수를 마주한 동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플로우 속 세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는 인간이 살았지만 이제는 문명의 흔적과 동물들만이 남았다. 거대한 홍수가 덮쳐 살던 곳이 완전히 파괴되자 동물들은 큰 배 한 척을 거처로 삼아 살아남기 위한 항해를 시작한다. 검은 고양이는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뱀잡이수리를 만나 모험을 떠난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 묘사와 섬세한 감정 표현이 내내 황홀하다. 대사가 없음에도 동물들이 내는 소리를 통해 그들이 느끼는 기쁨, 슬픔, 연민,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행동 묘사 역시 영화에 사실감을 불어넣는다. 무리 짓기보다는 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고양이, 움직임이 크고 민첩한 여우원숭이 등 각 동물들의 특징에서 비롯된 습성을 세밀히 반영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로 다른 동물들이 만나 자연의 위력을 경험하고 우정을 배워가는 과정. 골자는 단순하지만 감상은 귀하다. 동물은 있는 그대로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그 개성과 독립성을 직면할 수 있다. 동물은 자연을 이해하고 느끼며 주체적으로 적응하는 존재이자, 거센 급류가 닥쳐도 삶을 위해 온 힘 쏟아 애쓰는 존재. 서로의 습성과 차이를 받아들이고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유대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부재하는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동물과 자연의 존엄을 온몸, 온 마음으로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모두가 온전히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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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칠롱의 방(Chilong’s Room)’은 알 수 없는 수신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취한다. 반달가슴곰 칠롱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발신인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으로 담는다. 내레이션과 함께 카메라는 강원도 화천 생추어리에서 지내는 칠롱의 하루를 따라간다.

 

우선 생추어리란,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있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역이다. 생추어리 활동가들은 공장식 축산 환경, 밀집 사육 환경 등에 처해있던 동물들을 구조한다. 이후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동물들이 남은 일생을 보다 안전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구축한다. 칠롱이 지내는 생추어리 역시 수의사와 활동가들이 만든 보호시설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학대와 방치로 인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육곰들. 활동가들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그들을 성심껏 돌본다. 고구마, 밤, 당근 등 선호하는 먹이를 챙기고, 야생동물의 습성을 지켜주기 위해 큰 공이나 천장에 매달린 구조물 속에 먹이를 숨겨놓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지내고 있는 공간 안에서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방사장을 구축한다. 칠롱은 방사장을 돌아다니며 흙냄새를 맡고 여기저기 숨은 간식을 찾아다닌다.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평화를 느낀다.

 

카메라는 때로는 철창 밖에서, 또 때로는 철창 안에서 칠롱을 비춘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칠롱의 얼굴과 움직임들을 조심스레 살핀다. 칠롱이 맡는 풀과 바위의 냄새는 어떨지, 좋아하는 밤을 먹을 때는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그리고 혹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카메라의 섬세한 시선과 발신인의 나긋한 목소리로 칠롱과 활동가들의 일상을 헤아리게 만든다.

 

칠롱의 삶과 생추어리를 비추는 시도가 특별한 이유는, 인간의 학대와 착취로 고통받아 온 동물을 직시하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사육동물과 축산동물의 생추어리가 어떻게 기능하고 확장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조명한다. 비인간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폭력을 견뎌야 했던 동물들에게 보호자이자 함께 사는 생명체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많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도록, 제대로 발을 딛고 살아가도록, 더 나은 삶을 마땅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보호의 필요성에 공감하도록 한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적나라한 반성을 딛고 올라서서 바라본 공생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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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의 나라에서(In Wolf Country)’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2010년대부터 동부 숲 지역을 중심으로 늑대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사라진 야생동물이었던 늑대의 귀환 이후, 독일 사람들은 늑대가 불러온 삶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쟁하기 시작한다.

 

개체 수의 회복을 환영하며 보호 정책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특히 목양업자들과 산간 지역의 주민들은 늑대를 적대적으로 대하며 사살을 주장한다. 실제로 수많은 양들이 늑대의 공격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늑대를 적으로 내모는 주민들의 입장은 물론 양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오로지 염려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업과 돈이다. 양을 사육해 수익을 내야 하는데 늑대의 위협이 달가울 리 없다.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늑대의 존재 가치를 논한다.

 

늑대로 인해 양이 죽었다면, 그래서 인간이 생업에 피해를 입었다면, 그 마을에 서식하는 모든 늑대가 절멸되어야 하는가? 답은 당연히 ‘아니’다. 인간은 생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늑대를 배척하고 혐오하고 이내 서식지에서 내쫓고자 한다. 야생동물의 생이 지닌 가치는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오만이자 인간이 당연히 그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착각이다. 영화 내내 이기적인 우리의 시선이 명명백백히 드러난다.

 

더해, 늑대는 인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유해동물이라며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이기심에 힘을 싣는다. 늑대를 먼저 공격하거나, 서식지를 파괴하거나,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인간을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견해도 통하지 않는다. 인간은 늑대의 먹잇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늑대는 발달된 후각으로 멀리서 인간의 냄새를 맡고 미리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정보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포악하고 매서운 존재, 그래서 마을에서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라며 늑대에게 유해동물의 프레임을 씌우고, 덧입히고, 쐐기를 박는다.

 

그렇게 늑대는 유해동물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에 의해 유해동물로 규정지어졌다. 인간의 관점으로 늑대의 생명 가치를 재단하고 인간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늑대를 내쫓는다. 영화의 초반부와 마지막 시퀀스는 인간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다. 터전을 잃고 차도로 나오게 된 늑대와 도로변에서 트럭에 치여 피 흘리며 죽어간 늑대. 이렇게 늑대는 살 곳을 잃었다.

 

‘늑대는 왜 차도로 내쫓겨야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조심스레 따라가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의 이기적인 시선에 갇혀 야생동물을 혐오하는 일방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반대로 인간은 야생동물에게 어떤 피해를 주고 있었는지 이성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의 삶을 고려하며 함께 살아갈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냐’는 영화의 물음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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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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