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마음속엔 각자가 그리는 장소가 있다. 영영 그리워할 환상의 나라, 폭풍에 매몰되어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모든 것을 뿌리치고 스스로 고립되길 택한 어느 무인도…. 그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어쩌면 평생에 가까울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그것이 어떤 모양인지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것이 담고 있는 어떠한 말소리와 향기, 표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각자의 하루하루가 치열하게 기록되어 만들어내는 어제이자 오늘.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자, 누군가에겐 돌아가고 싶을, 또 누군가에겐 돌이키고 싶지 않을 과거의 문. 나는 그 문을 용기 내 열어보기로 했다.
그 문을 처음 열었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따가울 듯 아리는 빛을 내는 외로운 태양이었다.
영원히 추억할 수 없을 그날의 백야
'나' 자신을 그저 그런 그림자로 정의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 16년. 낮과 밤이 반복되는 그 당연한 시간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내 곁의 많은 것들이 떠나간 뒤였다. 태양조차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영원한 빛에 갇혀 끊임없이 휘청인다. 태양 빛을 받아 빛나던 모든 존재들 사이 나는 검은 그림자였다.
누군가는 환상적인 하늘을 여행하는 아름다운 고래로 이 그림을 바라보겠지. 또 누군가는 나의 젊음을 부러워할까? 하루가 쌓일수록 희미해져 가는 나의 열들. 동시에 함께 나눈 얼룩까지 옅어져 간다.
'태양에 그을린 자리엔 거뭇한 자국이 남아. 절대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거야.'
*
'태양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어.'
태양이 비추는 방향을 따라 흘러가자, 부스스한 빛을 이기는 무한한 공허함이 몸을 파고든다. 이내 하늘이 갈라지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 방법은 바로, 내일로 나아가는 거야.'
그것이 나에겐 사막이었다.
내일을 찾아서
모든 생명이 메말라 가는 곳, 태양 아래에서 저물어버린 나의 조각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공간. 겨우 내가 되기 위해 나의 열들은 그렇게 아파야만 했을까? 그러나, 비로소 나는 진정한 오늘에 닿았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찬찬히 시들 수 있는 곳에.
'이제 나는 내일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어제를 한 움큼 집어 들고 뒤돌아선 순간,
그 어떠한 것도 들이지 않겠다는 듯 늘어선 가시들, 그 모든 칼끝들은 오로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 손에 쥐여 준 가시는 이제 도리어 나를 겨눈다.
그 누구도 나를 반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찾아야 한다. 빛을 잃고 지려 하는 찰나의 내일을.
*
평소 나의 글을 읽어주던 고마운 애독자가 해준 말.
"사하라 사막의 모래에는 무기질이 풍부해서, 모래가 닿아있는 아마존의 식물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해요. 당신의 사막도 다른 어떠한 것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믿어요."
나의 사막도 그럴까?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사막이라는 이름에 어제를 담아 잠가버린 채로, 그 황량함은 나의 오늘로 이어졌다. 여전히 헤매고 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냥 웃을 수 없을 나의 이야기, 앞으로도 들어줄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