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가 바뀔 때마다 마음이 요동친다. 이번 연도엔 더욱 그랬다. 작년과는 다르게 추석까지 무더위가 계속된데다 에어컨이 말썽이었다. 여름인데도 내 몸은 더위와 추위를 번갈아가며 변덕을 부렸다. 한동안 에어컨을 켜고 끄고를 반복한 탓일까. 언젠가부터 가스가 빠져 더운 바람만 새어 나왔다. 추석 이후 서비스센터에 수리 예약을 했지만 일정이 시월초로 밀렸다.
일주일 전, 방에서 글을 쓰다 본능적으로 내 몸이 집 밖으로 나왔다. 이 정도면 밖이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은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 있거나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운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주말 동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더 습해서 더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선선한 가을 공기가 얼굴과 몸 전체를 훑었다. 온몸에 열꽃이 피듯 습하고 더웠는데 찬 기운이 도니 생기가 돌았다. 하늘을 보며 크게 호흡을 내쉬며 ‘살 것 같다’고 되뇌었다. 이번 더위는 더 길고 힘들었기에 날씨가 주는 청량감이 배로 느껴졌다.
계절이 바뀌니 산책하는 사람도 늘었다. 공원 한 편에 앉아 돗자리를 깔고 경치를 즐기는 이, 맥주에 음식을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이 저 멀리 보였다. 다들 달라진 밤공기에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달력을 넘기며 이쯤 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나뉘는 것도 옛말이다. 여름이 길었기에 가을은 상대적으로 짧을 것이다.
나는 이 시원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카메라 앵글 속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사이에 동화되어 걸다가 하늘 너머 구름을 사진에 담는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다. 바뀐 건 날씨와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쉬고 있는 내 모습이다.
일 년 전 스트레스받고 힘든 일들이 많았다. 슬픔을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삭힌 탓인지 올해엔 몇 차례 큰 수술도 했다. 아픔을 이겨내는 동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슬픔, 원망, 후회 여러 가지 단어 중 선택을 하라면 원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신이 있다면 굳이 왜 이런 일들을 내게 주셨을까? 왜 나여야만 했을까? 하나가 끝나면 하나가 찾아올까? 불행 끝에 행복이란 놈이 오기는 할까? 사사로운 일들을 글로 적지 못하지만, 남들이 겪지 못하는 시련과 마주하다 보니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어쩌면 눈물샘이 사라졌는지도.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쩌면 내 마음에도 몸도 성치 않았겠구나. 사실은 아무렇지 않게 수술대에 오르지만 살고 싶은가 보구나. 이제는 무얼 위해 살아야 되나. 그래 누굴 위해 살아간다 생각하지 말자, 나만 생각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발전이 없는 건 아니니까. 조금만 쉬어가자. 이번 연도는 그렇게 보내자.
엄마를 보내고 세 번째 계절, 반려견 딸기를 보내고 첫 번째 가을이 내게 찾아왔다. 엄마는 가을을 좋아했다. 적당히 쌀쌀하고 선선한 날씨에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복잡한 세상에 생각을 잊는 자연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가 선물했던 단풍잎 코팅 이파리가 내 지갑 속에 끼워져 있었다. 이번 가을은 퇴근시간 북적이는 사람들 보다 산책길을 더 많이 마주할 것 같다. 멍 때리는 시간도 많아지겠지.
아무렴 괜찮다. 적당한 계절, 시원한 날씨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거닐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