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라스 폰 트리에의 집 [영화]

Lars von Trier,(2018), <The House That Jack Built>
글 입력 2024.05.22 14: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도그빌>을 사랑하는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안티 크라이스트>를 재생했었다. 날 것의 카메라 무빙과 라스 폰 트리에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여성과 남성 간의 성욕과 집착이 신선했다. 그러나 내가 무교라서 그럴까. 영화의 제목인 <안티 크라이스트> 답게 부유하는 수많은 성경 내용을 잡아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영화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대차게 실패했달까. 여러 작품을, 특히 서구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경 내용을 공부할 것을 또다시 다짐하며.. 라스 폰 트리에에 대한 심적 친밀감이 다소 떨어질 때쯤. <살인마 잭의 집>을 보게 되었다.

 

 

editor_upload_20190308090950_6726.png.jpg

 

 

잭은 스스로를 일명 '교양 살인마'라고 칭한다. 영화는 지옥 안내자 버지와 잭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12년간 죽인 수많은 사람들 중 5개의 살인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연쇄 살인마가 시체로 집을 짓는 영화. 라고만 알고 재생했던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영화는 아님을 느낀다. 라스 폰 트리에 본인 자체를 담아낸 영화랄까. 잭을 내세워서 자신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영화는 그 평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호불호가 매우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그러나 일단 나는 좋았다. 수많은 좋았다 중에서도 '재미'있었달까. 혹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살인마 잭의 집>은 잔인함의 수위가 높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의 '재미'는 내가 <버닝>에서 느끼는 재미가 아닌, <행오버>에서 느끼는 재미에 가깝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 얄미운 라스폰트리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라는 기분이 든달까. 확실한 건 변호나 호소의 감정이 묻어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자아의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editor_upload_20190308091107_2374.png.jpg

 

 

살인마와 건축가 그리고 강박증의 조합이 재밌다. 부패의 예술을 위하여 살인은 저질러야겠고, 그럼에도 생성의 미를 표방하고 있는 건축은 계속해야겠고, 또 그러면서 모든 과정에서의 청결과 완벽함을 고집해야 하는 잭. 상상만 해도 우습지 않은가. 그놈의 강박증 때문에 계속해서 범죄 현장에 다시 돌아오고, 찍은 사진의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시체 두 구를 업어들고 현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피식할 수밖에 없다.

 

잭은 극악무도한 혹은 냉철하고 철저한 그런 전형적인 싸이코패스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인간적이고, 허술하고 서툴다. 잭을 이해하기는 역부족이었는데, 당연도 할 것이 애초에 라스 폰 트리에는 잭을 어떤 일관성 있는 인물로 그려내지 않았다. 그의 살인 행적을 미화시키지도 않았으며, 그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일관성이란 그저 모순성의 일관성인 듯하다. 처음에는 대체 왜 이러나 싶은, 그래도 그만의 어떤 단단한 철학과 논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들여다보게 만들지만, 나중에는 그저 이 모든 것이 결국 잭이구나 깨달으며 어처구니없는 웃음만이 나온다.

 

잭은 아름다운 건축물은 그 자재의 자유의지가 발현된 건축물이라고 이야기하며, 사물이 지닌 고유성에 대해 말한다. 처음으로 죽인 여자에 대해서도, 자신이 아닌 잭(공구)이 고유한 의지를 지니고 해낸 짓이라 말한다. (이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둘 다 '잭'이지 않은가) 포도주의 발효 과정을 가져와 부패, 즉 죽음이 지닌 성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파괴와 해체가 지닌 예술성을 숭배하는 잭을 보다보면. 나도 함께 그 어떤 생명력의 소멸이 지니고 있는 미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자신만의 자재, 즉 시체를 찾고 마침내 집을 지은 것에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만든달까. 물론 대량 학살에까지 이르는 잭의 사고에 화들짝 놀라 뛰쳐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R1280x0.jpg

 

 

천국과 지옥은 하나이며, 영혼은 천국의 것 그리고 육체는 지옥의 것이라고 말하는 잭은. 낫으로 풀을 베는 소리를 사랑한다. 아마도 풀이 죽어가는 소리에 오히려 그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버지와 함께 향한 곳에는 천국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풀을 베고 있었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지옥은 더욱 그러했다. 용암이 흐르고, 뜨겁고 타버릴 것만 같은 검붉은 이미지. 흔히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 그 자체로 묘사된 점이 의외였다.

 

그러나 더 의외였던 건, 잭이 천국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지난 자신의 살인 행적을 떠올렸다는 것. 그리고 천국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하나라면서 그는 천국으로 왜 가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전형적으로 이분법적인 사후세계를 묘사해 두었으면서, 해체와 죽음의 이미지를 잔뜩 품은(품었다고 흔히들 생각되는) 지옥을 숭배하진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그리고 영혼이 이미 없는 육체만을 가지고 집을 지은 잭이. 영혼의 집인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건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연히 지옥으로 떨어질 그 순간만을 숨 참고 기다린다.

 

잭이 좋아하는 빛 속의 어둠으로 떨어지는 모습. 그러고서 강하게 날 때리는 Hit the road Jack 을 들으면 아! 당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잭은 지옥으로 떨어졌지만, 그리고 그게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주는 형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잭한테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진 않다. 아무리 우리가 잭을 쫓아가서 지옥으로 떨어뜨려도, '그래 나 지옥 갈게 그래도 할게' 하는 느낌이랄까.

 

릴 나스 엑스의 < MONTERO >, 아이유의 <스물셋>이 생각나기도 했다. 동성애자는 지옥에 떨어지라는 비난에 대하여 당당히 폴 댄스하며 지옥으로 가 악마와 성교하는 릴 나스. 그리고 곰인 척하는 여우라는 비난에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수수께끼 자체의 자신을 내보인 아이유. 그들은 모두 대중들에게 날 것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회유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솔직한 자아를 내보이는 것이다.

 

 

movie_image4D81ZIFD.jpg

 

 

<살인마 잭의 집>을 보고, 예술이란 대체 무엇이며 살인은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지, 죽음이 지닌 성스러움은 무엇인지. 혹은 정말로 해체와 부패의 미학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 윤리적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지, 표현의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지 등. 다양한 부분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저 '라스 폰 트리에' 그 자체를 목격한다. 엉터리 논리를 내세워 얻고자 한 살인에 대한 정당성과 예술성.... 어딘가 모순으로 뒤덮여 있는 그러나 확신 가득한 잭은, 라스 폰 트리에 그 자체이다. 정말 재미있었던 영화. 아무래도 <라스 폰 트리에의 집>으로 제목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정아.jpg


 

[한정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6.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