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무언가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4.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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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몸과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오락가락하며 뭐든 진득하게 하고 싶지 않은 달이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은 가볍게 거닐면서 지나가고 싶은 4월을 맞이하는데에 딱 알맞는 시작이었다.  그의 책은 내용이 어떻든 아무래도 좋았고 역시나 싱숭생숭한 날 마음껏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만난 경위와 기억하고 싶은 3편의 단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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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맑은 저녁에 100퍼센트의 책을 만난 날에 대하여 - 4월을 기다리던 3월 말 퇴근길이었다. 운동을 빼먹기로 마음먹고 혼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갔다. 마침 버스가 바로 와서 앉을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었다. 영화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sns를 보다가 우연히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을 읽었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사진 중 하나였지만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 거기까지만 읽어도 낭만 가득한 문장이 날 부르는 것 같았다. 100퍼센트의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만났을까. 만나서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나에게 이 책이 100퍼센트의 책인 것처럼 느껴졌다. 발길은 영화관 근처 중고서점으로 향해 딱 1권 남은 책을 손에 넣었다. 5600원에 구매한 '운명'으로 인해 영화 상영 시간이 빠듯했지만 책을 손에 들고 뛰는 와중에 나는 핫초코가 먹고 싶어졌다. 이렇게 행운이 가득한 날은 꼭 핫초코를 호호 불어 먹는 것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 날이 그랬다. 결국 매점에서 산 가나캔초코음료를 손에 쥐고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봤다. 생각한 것보다 더 봄내음 가득한 영화였고 우디 앨런식 개그로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마 내 기분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100퍼센트를 넘어섰을 것이다. 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영화 ost를 들으며 걸어갔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 나는 오늘 저녁을 안 먹은 것을 알아차렸다. 이따금씩 섭취한 행운과 낭만은 꽤 든든해서 그제서야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단편_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하라주쿠의 뒷길에 남여가 스쳐지나가는 찰나, 대략 1분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일어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공유한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몸매가 좋지 않아도 나에게만큼은 백퍼센트라는 운명을 느끼지만 그저 스쳐지나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녀를 불러 세워 할 말을 한가득 계획하지만 이미 그녀는 멀어진지 오래다. 그녀와 대화 한 마디 못 했기 때문에 지금껏 그는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작년 출간한 도시와 불확실한 벽의 주인공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단편_거울 - 게슈탈트 붕괴현상처럼 글자나 생활에서 오는 묘한 기시감이 나로 옮겨진 순간을 포착한 단편이다. 달라진 것 없는 일상에서 나를 바라볼 때 가끔 내가 아는 내가 맞는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귀신처럼 보여지기도 하고 너무 늙은 것 같기도 하다. 겉모습만 비치는 거울이지만 그 속에 있는 가짜 같은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은 귀신보다 무서운 순간일 것이다.

 

#단편_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 -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많지만 가난함 속에서 낭만을 만드는 사람은 잘 없다. 가난했던 집터를 치즈케이크에 비유하고 햇빛은 공짜라는 사람과는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낙관을 배워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을 낭만의 지점들을 찾아내고 싶어졌다. 우선 꽃구경은 공짜니까 점심시간 길가에 핀 꽃부터 살펴봐야겠다.


매주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읽고 싶었다. 힘들게 글을 쓰고 가벼운 글로 치유받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직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하루키의 단편은 유려했다. 힘을 뺀 글을 읽는 순간, 방긋 웃고 지나치게 만드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곱씹어 생각하지 않고 피식 웃고 넘겼더니 긴장이 풀려 졸려왔다. 꾸벅꾸벅 따뜻한 햇볕 아래 졸다가 다시 일어나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원했던 순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이 4월을 맞이하는 100퍼센트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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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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