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 그냥 하기. [사람]

글 입력 2024.03.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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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평소처럼 인터넷 세상을 여행하다가 이런 문장을 보았다.


“그냥 하는 사람”


이 별것도 아닌 짧은 문장이 왜 그리 뇌리에 박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마주한 글에서는 ‘좋으나 싫으나 묵묵히 할 일을 하자’ 정도의 의미였지만, 왜인지 그 이상의 울림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냥 하는 사람은 어떤 이일까. 고뇌와 망설임의 파도가 휩쓰는 순간에도 그냥 하는 사람은 참 의지가 굳어 보인다. 그 의지는 자칫하면 고집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인지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이라는 단어 자체를 낯간지럽게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삶에서 낭만은 철없는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미성숙의 지표처럼 여겨지곤 한다. 낭만은 청춘과 어울리지, 무르익은 노년의 지혜와는 함께 하기 힘들어 보인다.


세월 앞에서 우리들은 철이 든다 여기지만, 실은 그저 겁이 많아질 뿐인 게 아닐까. 시작도 하기 전 떠오르는 수많은 난관은 행동하려는 이의 발목을 잡는다. 거액의 돈을 쓴다거나 ‘꿈’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야 할 것 같은 거창함을 말하는 건 아니다. 삶이 흐를 수록 일상 속 작은 일들을 잃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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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유속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날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던 와인바는 분위기에 완벽히 어울리는 날 가겠다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문을 닫았다. 밖에서 햇볕을 쬐며 책을 읽어볼까 세웠던 계획은 날씨가 별로라, 오늘은 왠지 피곤해서, 하며 미루다 결국 겨울이 오길 몇 년째 반복 중이고, 나의 지도에는 가본 곳보다 가고 싶다 저장해 놓은 장소가 더 많고, 영화 목록엔 본 영화보다 보고 싶다 묵혀놓은 영화가 더 많다. 하물며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자 매번 다짐하는 마음은 이런저런 핑계로 기억에서 씻겨져 사라진다.


아끼는 이에게 사랑을 전하고 사소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 글로만 적어도 참 낭만적이다. 이를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건 머릿속의 생각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소한 일들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는 아껴서 더욱 중요한 일에 써야 하고, 막상 중요한 일들을 쳐내고 나면 그다음 일들이 기다린다. 


특히 나는 완벽한 타이밍을 찾아서 완벽하게 들어맞는 상황과 기분에서 무언가를 진행하고 싶어 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일도 자꾸 더 내키는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미루곤 했다. 이 버릇을 고치고자 꽤 노력하여 이제는 ‘일’에 있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상의 일들에 관해서는 나쁜 버릇이 계속 나왔다. 


우연히 “그냥 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본 순간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가고 싶던 카페를 가고, 보고 싶던 영화를 보고, 하고 싶던 일을 하는데 ‘그냥’ 하면 되지 왜 그리 많은 조건이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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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 좋은 기분, 더 좋은 날, 더 내키는 상황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든 일들은 더욱 소중하고 아까워져서 이전보다 나은 조건 아래에서만 실행할 수 있었다. 결국 진작에 가능했던 많은 일들은 여전히 실행되지 못한 채 나의 버킷리스트에 잠자는 결과만 남을 뿐이었다. 


이후로 난 오늘이 완벽한 날이 아닌 것 같아도 ‘그냥 하는’ 습관을 조금씩 들이고 있다. 완벽히 내키지 않는 상태에서 한 일들은 이전의 걱정처럼 완전히 끔찍하거나 망하지 않았다. 꽤 괜찮았다. 결정적으로, 이전보다 소소한 일상을 좀 더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낭만이 일상에서 탈출하여 거창한 일을 행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많은 제약과 무의식 속 거부감을 지나쳐 작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나를 볼 때면 꽤나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대로 가지 않고 작은 돌부리를 만들어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사람. 꽤 낭만적이지 않을까?


끊임없이 우리들의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현실에서 ‘그냥 하는 사람’은 늘 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조금 앞서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현명해졌기에 피해 왔다고 생각한 모든 일들은 실은 그저 삶의 낭만을 잃고 빛을 희미하게 꺼트리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낭만을 잃지 않는 법은 역시 ‘그냥 하는 것’ 일 것이다. 실패하는 날도 상관없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잃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Was man nicht aufgibt, hat man nie verloren - Friedrich Schiller

포기하지 않는 것은 절대 잃지도 않는다 - 프리드리히 실러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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