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올모스트 메인

사랑은 풀려버리는 다리처럼.
글 입력 2024.03.27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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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봄이라기엔 쌀쌀하고 겨울이라기엔 묘했던 날에 오로라가 뜬다는 말을 듣고 대학로로 향했다.

 

2004년 초연으로 올해로 벌써 20주년을 맞은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총 8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연극이다. 이번엔 창작집단 현인에 의해 재탄생되었고, 올모스트 메인의 연출을 맡은 김동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기존의 올모스트 메인보다 좀 더 직관적인 표현으로 이 마법 같은 사랑을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극중 "FRIDAY NIGHT SPECIAL!(슬플 때 맥주 공짜~")라는 대사를 인용, ALMOST NIGHT SPECIAL(슬픈일이 없어도 공연을 봐주신 분들은 맥주 공짜)라는 내용으로 변경하여 화, 수, 목 관객들에게 협찬된 맥주를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공연 중에 캔을 딸 순 없고, 집가는 길에 벌컥벌컥 마셨다.


공연장은 명륜3가, 대학로 다이소가 있는 바로 근처로 찾기도 쉽고, 실내도 꽤나 넓었다. 평일의 딱 중간인 수요일 밤 공연이어서 관객도 많지 않았는데, 나 빼곤 거의 커플이었다.

 

 

시놉시스

 

사랑은 기적 같은 일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조그만 기적일 것이다 

모든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질 때 

눈이 내리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렇게 내린다.

 


극의 제목인 올모스트 메인은 아직 행정정리가 끝나지 않아 지명이 정리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다.

 

주인공인 여덟커플은 열정, 설렘, 슬픔, 우울, 낯섬 등 다양한 감정으로 입체적인 사랑을 정립해 나간다. 마치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한 옴니버스 형식이 주는 아기자기함은 무대와 소품과도 잘 맞아 떨어지며 유치하다기보단 따뜻한 감정을 전달해준다.

 

대사는 곱씹을수록 재밌는 것이 많았다. 가끔은 과하게 주절거리는 것이 명절에 모인 대가족끼리의 대화같다. 극을 들으며 하나하나 적어내려가고 싶었다. 영화로 치면 비포 시리즈의 느낌이다.

 

보기에 참 재미있었지만 연출자의 의도가 궁금했던 부분은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데이트에 실패한 두 남자가 누가 누가 더 불쌍한가 이야기하다가 가까워진 둘은 서로를 친구 이상으로 아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후 둘은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보통 게이를 상징하는 연출은 소극적으로는 여자처럼 머리를 넘기는 동작이라던지, 적극적으로는 장롱이나 문을 열고 나오는 연출, 단순하게는 둘이 침대로 다이빙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연극에선 다리가 풀린듯 계속 넘어진다. 보기에 걱정될 정도로 계속.


어찌보면 귀여운듯, 어찌보면 가학적으로 느껴지는 이 연출은 어쩌면 김동준 연출가가 전달한 직관적 표현과는 좀 멀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런 제스처들은 참 재밌었다. 비슷한 연출로,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옷을 벗는데 한 20겹을 벗는 연출은 내 웃음포인트 저격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주섬주섬 입는 것도.

 

올모스트 메인은 유치하게도 복잡한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이름을 문신한 남자, 고통을 몰랐던 남자에게 고통을 선사한 여자, 첫사랑을 찾아 163마일을 달려와 모르는 남자를 붙들고 하소연하는 여자, 오로라를 보기 위해 주소지도 정확치 않은 올로스트 메인 주 모르는 사람 마당에 텐트를 친 여인 등.


'거의'는 절박하다. 종착지를 눈 앞에 두고, 모든 감정이 과장되고 혼재된다.

 

연극은 주절거림으로 혼란을 토해내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만난 사람들을 보여준다. 드라마틱하지만 텅 빈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에서 정겹게 북적이는 이야기였다. 왜 20년간 제작되고, 공연되었는지 알 수 있었던 좋은 연극이었다.

 

지금 사랑을 시작하는 커플, 이젠 정으로 사는 부부, 바쁜 삶에서 조금 쉴 곳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 키스신이 많이 나오니 부모님과 함께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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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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