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에 관한 단상 [사람]

알쏭달쏭 디지털 세상에서의 기록
글 입력 2024.03.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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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기다리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의 나를 돌이켜보며 부족했던 점, 아쉬웠던 점, 그리고 과했던 점을 떠올려보다가 나는 '기록'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기록은 다이어리부터 시작해 블로그로, 인스타그램으로, 유튜브로 뻗어간다. 세대와 유행의 흐름에 따라 기록의 방법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넓어졌는데, 특이하게도 나는 기록의 공간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더 추가해왔다. '기록에 미친' 인간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과 함께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또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이 행위를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 글은 나의 기록 역사를 훑으며 온라인 상 기록의 딜레마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나의 유구한 기록 역사


 

어릴적 내게 없는 능력은 꾸준함이었다. 꾸준함을 체득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꾸준한 운동, 꾸준한 물 마시기는 늘 실패한다. 한 가지 성공한 것이 바로 꾸준한 기록이다. 유일하게 성공했기 때문에 많은 품을 들이게 된 것인지, 혹은 흥미가 있기에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지난 기억을 쉽게 휘발하는 나에게 기록은 추억을 지켜주는 중요한 행위이자 필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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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딜레마 - 인스타그램


 

나에겐 기록의 방법 중 하나일 뿐이나, 온라인 상에 게시되는 기록은 보다 많은 의미가 추가된다. 막 스물이 된 나는 내가 경험한 신선한 모든 것들을 원하는 만큼 인스타그램 상에 업로드했다. 그런 나를 '헤비 인스타그래머'라고 부르는 선배가 있었다. 그게 사실 적시인지 무례인지 구분도 못할 미숙한 나이었지만 이유 모를 기분 나쁨에 다시는 그런 말을 듣지 않길 바랐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상의 기록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그 선배가 말하고 싶던 '관종'이 맞았나 보다. 굳이 온라인 상에서 나만 볼 수 있는 비공개 기록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기록이 좋을 뿐이라는 처음의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과 기록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는 새로운 감정이 공존하게 되면서 혼란을 느꼈다. 그러다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고, 간헐적으로 업로드하던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록의 딜레마 - 유튜브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자극과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 나는, 몇 개월 후면 이 사소한 행복과 특별한 에피소드를 잊어버릴 거란 걸 확신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개씩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상을 돌려보며 그때를 추억하곤 한다. 유튜브라는 매체의 순기능을 체감한 나는 이후로도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또 한 번 제동을 거는 사건을 마주했다.

 

이번엔 수익을 얻는 것도 아닌데 뭘 위해서 그렇게 꾸준히 영상을 올리냐는 질문이었다. 유튜브는 영상으로 순간을 기록하고 언제든 쉽게 꺼내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플랫폼이다. 글과 사진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담기에 선택한 또 하나의 기록 방법일 뿐인데, 나 대신 수익과 유명세를 기대하는 말에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그때부터 괜히 성장하지 않는 유튜브 채널을 붙잡고 있는 미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런 생각에 쉽게 사로잡혀 멈칫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온라인 상의 기록


 

사실상 온라인 매체를 활용한 기록은 이미 우리 생활에 녹아있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온라인 상의 기록이 더 익숙한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뭔가를 포스팅할 때마다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그럼에도 기록을 '업로드'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온라인 상의 기록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하루에도 수백, 수억 가지의 정보가 새로 등장한다. 그래서 내가 게시하는 글은 사막의 모래알 정도일 뿐이지만, 이 모래알을 다시 찾아 삭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내 인스타그램 상에서 사진을 지우더라도, 그걸 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캡쳐본 또는 재업로드된 조각은 존재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를 태워버리면 영영 존재하지 않을 오프라인 기록과는 달리, 온라인 기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품고 있다.

 

두 번째는 수익성이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으로 맛집을 찾고, 블로그로 어려운 일처리의 꿀팁을 얻고, 유튜브로 가 본 적 없는 나라의 실제 모습을 시청한다. 인터넷 상의 정보는 상업 가치를 갖게 되었고, 온라인 플랫폼 상에 게시되는 모든 기록은 상품이 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성행으로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했고, 온라인 플랫폼은 기록과 정보 공유의 장을 넘어 수익 창출의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하기 때문에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내 모습이 자칫 돈과 명예 혹은 그 외의 것을 좇는 것처럼 보일까 경계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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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이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나는 잠시나마 모든 SNS를 멈췄다. 대신 나만이 볼 수 있는 다이어리에 오랜만에 일상, 고민, 잡다한 것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미 굳어버린 습관을 바꾸는 것과 온라인 기록의 수많은 장점을 포기하는 것은 한심한 억지라는 생각이 들어 금세 온라인 세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기록의 면면에 대해 확실히 정리하지는 못했다. 그저 인간이 역사를 기록해왔듯, 나도 지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에 따라 기록에 충실할 뿐이라 여기며 오늘도 글을 포스팅한다.

 

누군가에겐 너무도 사사롭고 별 볼 일 없을 나의 고민을 가능한 한 가볍게 치부하고자 '단상'이란 말로 감춰보지만 이 글을 쓰는 내내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지난 연말 다이어리의 넓은 칸에 아무렇게나 써내렸던 생각을 정돈하며 나와 같은 고민을 가져 본 사람이 있기를, 그래서 일기마냥 솔직한 나의 글도 가볍지만 진심으로 보듬어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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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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