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겨울 바다, 그리고 눈꽃 [여행]

이 계절을 나는 법
글 입력 2024.03.0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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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이따금 생각난다. 수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볼 때면, 잔잔하다가도 일렁이는 파도가 이내 발밑까지 다가오는 것처럼 머릿속을 스쳐 간다. '아, 바다가 보고 싶다.'

 

익숙한 바다의 풍경을 스치는 공기는 거의 따뜻하거나, 후덥지근했다. 바다의 기억에서 대부분의 그 계절은 여름이었고, 다음으로 봄과 가을이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날씨는 어땠을까. 맑고 화창한 날씨, 다소 덥지만 활동하기 좋은 시기는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해가 길어서 더 많이 걷거나 구경할 수 있고, 힘들면 조금 쉬다가 다시 일정을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봄-여름-가을로 이어지는 그 계절에 여행 계획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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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언제쯤이었을까. 일정한 패턴을 그리던 여행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여전히 날씨와 계절은 여행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지만, 조금은 흐리고 비가 내려도 또한 조금은 변덕스러운 날씨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온전히 계획한 대로 흘러갈 수 없다면, 그리고 평소라면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겨울 바다〕를 만났다. 이제는 작년이 되어버린, 2023년 12월에는 서해와 동해를 향해서 여정을 떠났다. 서해는 밀물과 썰물, 물 때에 따라서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바닷길이 열리며, 걷거나 차를 타고 섬으로 이어진 길을 갈 수 있다. 바다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참 묘했는데, 바다를 향해 걸어갈수록 바람이 거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코끝에 스며드는 공기가 시원하다 못해, 상쾌했다. 겨울을 좋아할 이유가 여기서 하나 더 추가되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은, 알맞은 공기의 온도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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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에 택시를 타며 목적지까지 이동했던 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기사님에게서 '눈 오는 바다를 본 적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그 순간 왠지 계절을 나고 그 계절을 떠올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부터였다. '눈 내리는 바다'를 보는 것이 그 해의 다이어리에 빠지지 않고 적힐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는 뉴스를 봤다. 그래서 12월 말, 동해로의 여행이 결정되면서 '어쩌면 눈이 내리는 바다를 볼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작은 기대와는 무색하게 당일 여행지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본 이곳의 겨울은 사진에는 색감이 모두 담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예뻤다. 바다의 더 가까운 곳까지 닿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모래와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귀로 담으며 겨울 바다의 장면을 또 하나 저장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그날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눈 앞에 펼쳐졌다. 분명히 여행지에서는 눈을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끊임없이 '눈'이 가득했다. 산 넘어 지역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는 것을 깊이 떠올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풍경은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산이 〔눈꽃〕으로 뒤덮었는데, 흡사 눈꽃나무가 아니고, 눈꽃 숲이었다. '그렇지. 이게 여행이지.' 시시각각 변하는 장면은 갑작스럽고 잠시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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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을 지나면서 창밖의 사람들을 보았다. 이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설산을 찾아오고, 나무에 쌓인 눈꽃을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우리뿐이었을까. 지나오면서 썰매를 타거나 눈싸움하는 장면이 곳곳에 보였다. 이렇게 겨울을 나기 위해서, 이 계절을 오롯이 즐기기 위한 바람이 꽤 크다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다. 세상은 특별함의 연속이다. 나의 세계 너머에서는 항상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거 같다. 바로 이곳처럼 말이다.


한 해가 넘어가 2024년이 된 이번 겨울도, 아니 2월에는 유독 더 많은 '눈'을 보았다. 거리에 눈이 거의 녹았다 싶다가도 인근 도로를 둘러싼 산등성에는 여전히 눈으로 덮어있다. 가장 최근에 내린 눈도 꽤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했다. 높을 곳을 향해서 갈수록, 한참을 올라서 산에 다다를수록 더 실감하게 되었다.

 

비록 '눈 (雪, snow)' 오는 바다를 보지 못했지만, 겨울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또한 모두의 안녕과 함께 많은 분의 따뜻한 손길로 이런 장면들을 눈으로 가득 담고, 더욱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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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시작한 '이 계절을 나는 법' 중 하나로 계절을 떠올릴 수 있는 책을 읽고 있다. 독립서점 '한낮의 바다'에서 발견한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제목과 소개 글을 읽으며 단번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다시 방문한 서점에서 또다시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책을 찾았다는 것에 여행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증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여행을 기억하는 법'과도 맞닿은 '여행지에서 서점 및 도서관 방문하기'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다.

 

 

존재와 소멸을 동시에 보여주는 놀라운 물질. 코끝에 톡, 떨어지면 눈이 번쩍 떠진다. 매우 선명하게 닿고 녹아 없어지기에 (특히 첫눈을 맞으면) 영혼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든다. 자각할 땐 이미 물로 화해 있다. 분명 손바닥에 닿았는데 녹아버렸어. 이렇게 눈은 사라지면서 존재하기에 물질이라기보다는 '상태'에 가깝다. (···)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p.47 「눈」


 

한편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본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은 표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겨울에 봤던 무수한 나무를 떠오르게 했다. 원래 바다가 더 좋았는데, 이제는 산과 숲 그리고 나무가 그만큼이나 좋아졌다. 좋아하면서도 자주 볼 수 없었던 바다를 향한 마음만큼이나, 그것보다는 자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평안과 안정을 느끼게 되었다. 산과 숲 그리고 나무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겨울 숲은 금방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마침내 깜깜해졌을 때, 달빛에 드러난 숲의 허연 속내 위로 흩어져 있는 잔가지들을 모아 불을 붙이는 사람처럼 어딘가 따뜻해지는 구석도 있지만, 그것 역시 상상의 일이다. 이곳이 어딘지 내가 모르는 것처럼,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 겨울 숲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곳의 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끝. 거기다. 당신이다. (···)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p.79 「여전히 겨울 숲에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번 겨울의 '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에서 봤던 눈꽃, 가득 핀 꽃송이와 같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는 여행을 함께 떠나자던 약속을 함께 나눴다. '맞아. 아직 2024년 겨울은 남아있어.' 이 겨울은 아직 다 지나가지 않았으니, 좀 더 이 계절을 즐겨도 좋지 않을까?

 

 

[안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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