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다르게 살아야 해!"
라고 결심한 나는 작년과 다르지 않게 오늘도 늦잠을 잤다. 아마 내일도 해가 꽤 내려온 뒤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눈을 뜰 것이다. 매일 눈(만)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휴대폰을 켜 밤새 온 카톡 몇 개를 확인한 뒤 홀린 듯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주변 지인들의 스토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습관처럼 타인의 일상을 확인하며 바쁘고 알차게 굴러가는 그들의 삶과 꽤나 느리고 방탕하게 흘러가는 내 삶을 비교하는 것은 어느새 루틴이 되어있었다. 특히 이번 설 명절에 들었던 작은 아버지의 아들 자랑은 그 루틴에 기름을 부었고, 나는 나 자신과 나의 미래를 더욱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미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내려간 듯한 느낌이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던 그로기 상태에서 책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를 만났다. 저자를 ‘자존감 지킴이’라 표현하고 있는 책 표지를 보고, 내려갈 대로 내려간 나의 자존감이 떠올랐다. 동시에 서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타 에세이들과 다를 게 있을까 하는 선입견도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자존감을 끌어 올려 주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저자가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내놓는 가장 큰 해답은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대학이란 허울 좋은 감투를 벗고 나니 그제야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게 없는
나의 도망의 역사가 그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나를 믿어주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재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롤로그 : 나를 믿는 것도 재능이 될 수 있을까> 중
답이 없는 것 같은 문제, 끝이 없는 것 같은 고민과 마주했을 때 위로를 받는 것도 정말 큰 힘이 된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의 존재, 그리고 그 존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에겐 이 책이 후자에 해당했다.
저자는 다소 우울하게 보일 수 있는 본인의 이야기를 귀여운 그림체 속에 담담하게 담아낸다. ‘뭐야, 이게 끝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굳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는 대신, 저자는 본인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방법이나 잡생각들을 떨쳐냈던 경험을 들려준다.
걱정이란 녀석은 사실 코딱지만하다.
…
녀석을 제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하찮은 상태의 놈을 발견한 순간
가볍게 밟아 버리고 달리는 것뿐!
…
감정이란 어차피 마음이 하는 일.
답도 없는 무력감에 몸서리치기보단, 차라리 마음을 속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통에 몸부림치며 달리는 것일지언정, 아무렴 무슨 상관인가.
…
복잡한 핑계와 고민을 뒤로한 단순한 움직임.
달리기는 어지러운 삶에 단정한 반복이 주는 현답이기도 하다.
PART 1. <나도 내가 처음이야> - ‘슬플 때 러닝화를 신는 이유’ 중
첫 번째 파트에 속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위의 인용처럼 ‘내 몸,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속한 관계 속 내 감정을 내가 컨트롤함으로써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결국, 우리가 고장 나지 않으려면 내가 나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파트 <오해 말고 이해받고 싶어>와 마지막 파트인 <약한 게 아니고 나다운 거야>에서는 가족이 주는 따스한 사랑, 친구와의 관계, 삶의 의미 등을 이야기한다.
프롤로그와 각 파트 사이사이에 있는 짧은 에세이를 제외하면 모든 내용이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인스타툰'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그만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기 좋은 것 같다. 줄글보다 감상하기 편하지만, 줄글만큼 힘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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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 이 책은 자존감을 끌어 올려 주는 책도, 어떤 고민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책도 아니다. 작은 공감대가 켜켜이 쌓인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다독여주고 있다.
지금 당장 사사로운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결국 오늘을 사는 것은 나고, 나를 책임지는 것 역시 나고, 시간이 지나도 나는 내가 될 뿐(프롤로그 중)'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런 걱정들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