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신 울어주는 목소리 [음악]

하현상의 대신 울어주는 목소리는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입력 2024.01.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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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2월 그리고 24년 1월.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길고 두꺼운 겉옷에 몸을 말고 회사 혹은 집을 향해 작은 보폭으로 발을 서두르는 와중에도 귀에는 항상 노랫소리가 들렸다. 내가 지치지 않고 또 다른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해준 가사들을 곱씹어 본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달리는 이곳

그중 어떤 날은 하루가 좀 서글퍼지는

그만둬버릴까 어리광은 마음속으로

바람이 이뤄질까 더는 믿지 않을 나이니까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은 필수적이다. 일을 좋아하고, 일을 통해 형성된 자아와 그 밖의 자아를 아직은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의 성취는 곧 나의 성취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집과 일터를 반복하는 생활은 왜인지 모르게 공허함을 불러온다. 사람을 만나거나 즐거운 일을 한다고 해소되는 감정이 아니다.


아마도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나 뿐이라는 감정에서 오는 허무함일 거다. 잠시 쉬고 싶지만 정말로 그만둘 수는 없고,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을 알기에 서글픈 감정을 토로하기는 더욱 어렵다.


달리다 보면 어딘가 여긴 그래도 전보단 나을 테니까

가는 길에 나를 잃어버렸나 영영 다신 돌아올 수 없대도

멀리 달리다 보면 어딘가 여긴 그래도 전보단 나을 테니까


열심히 앞을 보고 달리는 일은 어쩌면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나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거다. 그래도 계속 달리는 이유는 아무것도 시작해 보지 않고서는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의 기쁨과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한 배움이 쌓이다 보면 저 먼 길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 바래지지 않은 하늘이 거긴 어떤지

가끔 길을 걷다 문득 생각해 나 어디로 가는지


사람은 누구든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무언가를 지나”온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Time and Trace’ 앨범 제작기에 따르면 하현상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게 되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재수 준비를 하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은 시간이 그 “때”였다. 아직 바래지지 않았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모든 일을 겪고 난 지금의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떠나갔나요 기억들 속을 아직도 헤매며 아파했었나요

지나가버린 시간이라도 흘러간 대로 견뎌 내야겠죠

지나간 대로 여기 두고서 돌아오는 계절을 기다려볼게요


그때의 아픔과 기억이 완전히 떠나갔느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그 시간에 갇혀 있지도 않다. 나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했을 때, 비로소 내 시간은 흐르기 시작했다. 주저앉아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조금씩 걷다 보니 시간과 계절이 가고 있었다.


손 닿을 수 없는 흔적이라도

지나간 대로 견뎌 내야겠죠

나 이제 나아져볼게요


나아진다는 말은 참 어렵다. 사람들은 어떤 병 혹은 기억이 완전히 나를 떠나야 나아졌다 혹은 극복했다고 이야기한다. 그 어떤 기억도 나를 완전히 떠나갈 수는 없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나를 스치고 갔다면 흔적이 남는다. 내게 이미 영향을 남긴 무언가가 있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나간 대로 버티는 수밖에는 없겠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곡 소개에 따르면 ‘Pain’은 “매일 자기 자신에게 잡아먹히는 이를 위로하는 경험담”을 담은 노래다. 더하여 이달 13, 14일에 걸쳐 진행한 ‘With All My Heart’ 콘서트에서 자신의 음악이 “대신 울어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하현상의 초반 음반이 깊은 우울을 담고 있었던 것, 그 이후에도 깊은 감정을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을 떠올려 보면 자기 자신과 청자들을 위로했던 경험담이 담긴 게 아닐까 싶었다.


너는 몰랐지 사랑한 만큼

아픔은 늘 비례한다는걸 외면하게 돼

너도 그랬지 잠에 드는 게

깨어있는 현실이 너무 싫어서란 걸 기억하게 돼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람이 느끼는 아픔은 마치 나의 아픔처럼 다가온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때의 상대는 내가 그만큼 아파한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아마 나도 상대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서로가 깨어있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떠나지 않을게 다치지 않게

떠나지 않을게 나도 그래

떠나지 않을게 지치지 않게

I feel your pain


서로 다른 이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할 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곁에 있어 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더 크게 다치지 않게, 지치지 않게 옆에 있는 것. 당신의 고통을 나도 느끼고 있다고 공감하고 같이 울어주는 것.


이 가사는 다르게 읽으면 하현상이 청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내 음악을 듣는 당신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그 아픔을 알기에 떠나지 않고 노래하고, 대신 울어주겠다고.


삶을 살아가는데 응원이 되는 목소리들이 있다. 그중 하현상의 대신 울어주는 목소리는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예지.jpeg

 

 

[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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