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의미 부여를 줄이고 여유롭게 살아가기로 했다.

글 입력 2024.01.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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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시작이다. 앞으로 2024년을 쓸 날이 많아질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2023년이라고 적으며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다시 3을 4로 고쳐쓸 것이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만해도 2020년대가 온다는 것이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꼭 미래 세계인 것 같아 2019년에서 2020년도를 넘어갔을 때는 년도를 적는 일이 무척 어색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랬던 시간들도 지나가고 어느덧 2020년대도 중반을 넘어간다.


한 해를 시작할 때면, '나'라는 사람의 본래는 굉장히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편이었다. 마치, 연례행사인 것 마냥 루틴아닌 루틴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무엇인가 적는 글씨와 생각마저도 이 시간만이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날의 흔적들을 끄적이며 남겼다. 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하며, 12월 31일 11시 59분이 되면 재빨리 휴대폰을 켜서 시간 사진을 캡쳐한다든가 TV를 켜서 보신각 종을 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꼭 세 가지를 빈다거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거나 인사를 하곤 했다.


그리고, 한 해를 시작하는 날에는 새해를 꼭 보곤 했다. 안 보면 한 해의 시작이 아쉬워 미리 그 전 날 해돋이 시간을 확인했고 다음 날에는 꼭 일어나기 위해서 무수한 알람들을 맞춰놓았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많은 알람들을 하나씩 끄고 나서 부리나케 해가 뜨기 전까지 해맞이 장소에 도착했고 그렇게 첫 해를 보았다. 특히, 해맞이 장소도 매번 달랐으면 하는 욕심(!)도 있어서 (가만 보면, 현대 과학의 기술로 우리가 살 수 있는 평균 나이를 100살로 가정했을 때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도 겨우 100번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해보면 무언가 매번 다를 수 밖에 없다지 않은가.) 때로는 가족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찾거나 소개하며 졸라 맞이해본 적도 있었다.


나이가 점차 무던해진 탓일까. 아니면, 성숙해진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웬일인지 이번 해에는 루틴처럼 해왔던 일들에서 벗어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좀 더 이런저런 루틴 없이 단순해졌다. 이를테면, 마지막 날을 못 떠나보낼 듯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시간 사진을 캡쳐하려 했다면 그런 행동 없이도 올해를 잘 떠나보냈고 다가오는 한 해 또한 온전히 기쁘게 맞이했다. 어떠한 일말의 아쉬움도 없어 참 오랜만에 겪는 기분이다 싶었다.


왜 이러한 마음이 들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여유로움이 생겨 그랬다. 예전에는 의미를 크게 부여하니 별 사소한 일에서도 괜한 긴장을 갖던 때가 많았다. 마치, 내 안의 CCTV가 있는 것 마냥 행동 하나에도 정제하며 살곤 했었다. 이렇게 살아갔던 세월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장점이라면 말 그대로 올곧은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올바르기에 누군가에게 거스릴 것이 없이 그래도 순탄하게 잘 살았지만 여유로움은 떨어졌다. 그 균형을 잘 맞추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조절이 쉽지 않았던 터였기에 애를 먹으며 살았다. (억지스럽게 하는 일들도 많았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니 기대와 걱정을 하는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그만큼 융통성도 생겼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오히려 몸의 긴장감과 불안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앞으로 잘 나아가기 위한 마음이라 기분 좋은 스트레스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했던 나로서는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쏟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세상은 계획되로 되지 않은 일들도 투성이고 실제로도 많은가. 그런데, 의미 부여한 일들의 계획이 틀어지거나 미뤄져버린 날일 때면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허탈함에 휩싸여 꿀꿀한 하루를 보냈던 때가 꽤 있었다.


요즘에는 어떤가 하면 나의 마음을 기준으로 두고 살고 있다. 굳이, 애를 써서 '의미를 부여한 날'에 계획한 것을 모두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곤 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자책이나 부끄럽기도 했던 마음에서 좀 더 나 자신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별 탈 없고, 또 괜찮다는 것을 자주 인식한다. 그래서 일까. 요즘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날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간혹 있더라도 애써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냥 하는 거지'라고 말했던 김연아의 명언처럼 그냥 시도하는 것과 과한 의미 부여로 생각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시간을 줄여보려한다. 좀 더 심플하고 단순하게!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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