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항해의 시작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영화]

글 입력 2023.12.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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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 2016

 

감독 : 팀 버튼

배우 : 에바그린, 에이사 버터필드, 엘라 퍼넬, 사무엘 L.잭슨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고 단서를 쫓던 ‘제이크’는 시간의 문을 통과해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감춰왔던 놀라운 비밀과 마주한다.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미스 페레그린’의 보호 아래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특별한 능력의 아이들을 만난 제이크는 이 아이들을 사냥하는 바론과 할로게스트들이 할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그는 미스 페레그린, 특별한 아이들과 함께 그들에 맞서 싸움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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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왔다. 짧은 휴식을 마친 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익숙하고 헛헛한 공허가 밀려왔다. 가족톡방엔 조심히 올라가라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한 마디가 올라왔다. 그 인삿말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 집을 떠났던, 스무 살 그때가 떠올랐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집을 떠난다. <토이스토리3>의 앤디와 <보이후드>의 소년도 그러했다. 떠나야 하는 순간을 앞둔 아이들에게 집은 무슨 의미일까. 무엇으로 기억될까. 혹은, 그 아이들에게 집을 떠난다는 건 어떤 느낌이고, 무슨 의미일까.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이 유성의 잔영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한 편의 영화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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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도 출가(出家)는 중요한 테마다(영화의 제목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괜히 들어간 게 아니다). 영화에는 두 세계가 등장한다. 하나는 현실의 세계다. 이곳은 아이들에게 호의적인 세계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인 아이들을 배척하고, 그 속에 숨은 할로우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이들을 사냥하러 다닌다.


한편 반대편에는 미스 페레그린의 세계가 있다. 임브린으로서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완벽한 하루를 골라 루프를 만들고, 할로우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 그 세계 안에서 아이들은 안온하고, 안전하다. 허나 그 사실이 아이들을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는다. 


할로우들이 아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미스 페레그린을 비롯한 임브린들은 아이들에게 성장할 기회를 앗아간다. 그녀들의 폭력은 질서와 규율을 통해 이뤄진다(실제로 극중 미스 페레그린은 아이들의 일상을 초 단위로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격한 통제 속에서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아이들은 어른이 될 기회가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에 머무른다.


아이들은 미스 페레그린의 루프 속에선 권태롭고, 바론과 할로우들이 돌아다니는 루프 바깥에서는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 속 시간적 배경 중 하나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섬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바깥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전쟁 중에 국가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개인을 강력히 통제하고, 그 보호에서 벗어난 개인은 무분별한 폭력에 시달린다(물론 이러한 배경은 ‘특별한 아이들이 사냥 당하는 시대’라는 점에서 홀로코스트의 대체 역사를 노린 것도 있다).


그런 와중에 ‘제이크’라는 소년이 있다. 그는 평범하고 유약하다. 얼마나 미덥지 못하면 부모님이 시도 때도 없이 따라다닐 정도다(사실상 그의 부모님은 미스 페레그린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며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는다. 나아가 다른 이의 삶 또한 책임지려 든다. 그런 제이크를 만나 '이상한' 아이들은 '특별한' 아이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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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답은 ‘시간’에 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아이들은 항상 부모님으로부터 시간의 통제를 받는다. 밤 10시가 되면 잠을 자야 한다는 둥, 저녁 6시가 되면 저녁을 먹어야 하니 그전까지 집에 돌아와야 한다는 둥 어른들이 짜 맞춘 타임 테이블에 따라 아이들의 일상은 결정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장에 대학교만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와 내가 직접 시간표를 짠다. 통금 시간도 사라진다. 부모의 패턴에 맞출 필요가 없는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시간에 대한 온전한 소유권과 통제력을 찾았을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론이 미스 페레그린을 납치한 후, 할로우들이 쳐들어오면서 아이들을 보호하던 루프는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1943년 9월 3일은 오지 않는다. 그들의 일상을 관리 감독해 줄 페레그린도 없다. 그렇게 아이들은 시간의 바다에 던져졌다. 아이들은 혼란했지만, 제이크의 도움을 받아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의 지시 없이 자신의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했다. 그리고 그 노력을 말미암아 오랫동안 멈춰있던 배는 동력을 얻고, 드넓은 바다를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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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있던 ‘배’는 떠오르고 딱 두 번 출항한다.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키를 잡은 건 아이들이다. 방향을 정하는 것도 아이들의 몫이다. 극중 제이크의 중요한 선택 역시 배 위에서 펼쳐졌다. 배 위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존재는 배제되어 있다. 대신에 어른들은 그 뒤에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 지나간 뱃길을 묵묵히 동행한다.

 

어른에게 아이는 언제나 어리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언제 어른이 될까? 혹은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나. 그 질문에 팀 버튼은 이렇게 답한다. ‘이미 항해는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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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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