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사랑한 재즈, 우리가 살아갈 미래 -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
글 입력 2023.12.1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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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뭘까, 재즈란 뭘까. 크고 작은 일상의 소리 속에 묻혀 살아가고 있다가도 문득 새삼스러운 기분이 든다. 단조롭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음들이 모이고 흩어진 어떤 배열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라니. 그렇게 오늘도 색다른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좋아하는 음악에 편안함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이태원의 레코드 바에 방문했다. 평일에는 30분, 주말에는 20분 동안 자유롭게 듣고 싶은 LP판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운이 좋게도 사람이 없는 평일 저녁에 방문했던 그 곳에서 친구는 맘마미아의 LP판을, 나는 찰리 푸스의 LP판을 집어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LP판을 바라보며 판이 살짝 긁히는 소리마저 낭만으로 느껴졌던 그 순간. 언제나 음악이란, 소리란 실체가 없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는데 그 곳에서의 음악이란 생생하게 실체로 존재하는 무언가 – LP판 – 였다. 내 손에 생생하게 잡히는 LP판을 바라보며 어쩐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그 순간을 정말 소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때론 음질이 좋다는 디지털보다 다소 거추장스러운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낭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재즈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내게 재즈라는 장르는 공연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다소 낯선 장르이다. 정제된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공연에 비해 다소 흥겹고 즐겁게 어우러지는 ‘낭만’의 이미지가 강한 장르라고나 할까. 화려한 색소폰의 연주와 즉흥적으로 이어지는 멜로디라인, 그리고 공연장을 꽉 채우는 관객들의 흥겨운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재즈 공연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라는 다소 낯선 부제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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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 공연은 소월아트홀에서 열렸다.


빅밴드란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앙상블 재즈 밴드로, 거대한 규모 덕에 재즈 오케스트라라고도 불린다. 김영후 빅밴드는 베이시스트이자 작/편곡가인 김영후가 이끄는 17인조 재즈 밴드이다. 베이스, 드럼, 피아노로 구성된 리듬 섹션이 무대 왼편에, 금관 악기(트럼펜, 트럼본)와 목관 악기(색소폰, 플롯)가 무대 오른편에 자리하며 무대를 꽉 채웠다.


공연은 작곡가이자 편곡가인 김영후 베이시스트의 곡 소개와 함께 이어졌다. 김영후 작곡가는 책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그리고 <총균쇠>를 통해 인류가 위기 상황을 극복해내는 원동력이 ‘선한 의지의 순환’이라는 영감을 얻었고 이번 공연의 곡들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흥적이고 흥겨운 재즈로 표현해내기에 다소 낯설고 신선하기까지 인문학 책들이다.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삶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흔히 들어온 재즈와는 먼 것 같은 주제이기도 하다. 과연 이러한 소재들을 어떻게 재즈로 표현할지, 호기심과 기대감을 안은 채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순서>


1. Dancing on the Floor

2. Cognitive Revolution (인지 혁명)

3. Network Song

4.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AI와 초연결)

5. Florescence (개화기)

6. New Discoveries

7.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 

 


새롭고도 신선한 음들의 조화, 생각보다 즉흥적이고 다양한 악기들의 합주를 통해 곡을 완성해내는 빅밴드의 재즈는 풍부하고 입체적인 표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려하고 매끄러운 색소폰, 은은하게 깔리는 베이스와 드럼, 단아한 플롯과 웅장한 트럼펫까지 공연장을 꽉 채우는 음악은 흥겨웠다. 곡이 시작하는 중간중간 이어지는 곡 소개를 통해 공연을 더욱 짜임새 있고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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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연주곡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AI와 초연결)’이 기억에 남는다. 음악이 시작함과 동시에 작곡가가 오늘날의 AI 기술에서 느꼈을 수많은 데이터들의 웅장함과 치밀함, 거대함과 속도감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동시에 청중에게도 고스란히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게 한 표현력에 감탄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AI와 데이터 직무에 종사하며 직접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나이기에 더욱 와닿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방대하게 쌓인 데이터들은 소위 ‘돈’이 되며, 활용에 따라 막대한 가치를 지닌 유형의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매 순간 무한하게 쌓이는 데이터들, 비약적으로 발전한 IT 기술로 이어진 초연결 시대의 오늘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곡이라 신선했다.


5번째 연주곡 Florescence (개화기)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진보적인 느낌을 주며 낯선 느낌을 주다가 점점 음계가 안정화되면서 분위기도 안착하는 흐름을 가진 곡이었다. 새로운 무언가와의 첫 조우는 언제나 낯설고 혼란스러운 법이다.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큰 통증과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시간은 흐르고 영원한 건 없으며, 고인 물은 잔잔할테지만 결국엔 썩어버리고 말테니. 삶이란 결국 새로운 흐름 속에서도 계속 흘러가야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개화기란 새롭고 역동적인 시간이었던 동시에 퍽 아프고 상처 많은 시기로 남아있다. 더 넓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강제로, 때론 강압적으로 문을 열어야만 했던 그 시기의 비애를 쓸쓸한 첫 멜로디에서 어쩐지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은 마지막 곡인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과학적으로 딱 떨어지는 다른 제목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서정적인 제목이었는데, 원래 제목 또한 ‘DNA’와 관련된 제목을 풀어 쓴 것이라고 한다. 신선하고 새로웠던 연주들을 지나 다시 어쩐지 익숙하고 정겨운 멜로디로 제대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느낌이라 좋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란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인류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DNA, 발명과 발견과 같은 온갖 수치적이고 통계적인 유산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측정하고 통계내릴 수 없는 것들, 가령 사랑과 희망,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어떤 이야기들, 들을 때마다 흥겨움을 느끼게 하는 음악들, 여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어느 날의 노을들까지. 그러한 모든 것들 또한 변하지 않고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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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신선하고 즐거운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재즈 특유의 즉흥적이고 리듬감 가득한 연주가 매력적이었다. 다양한 악기들이 무대를 꽉 채우는 풍부한 느낌에 ‘재즈’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다. 마지막 앵콜로 연주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 ost인 ‘pure Imagination’ 곡도 낭만적이고 즐거웠다.

 

김영후 작곡가가 인용했던 '마법을 믿지 않는 사람에겐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말처럼, 마치 마법처럼 낭만적이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김영후 밴드의 공연이 기대된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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