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평범한 기념품

노트를 본 순간 써지는 이야기
글 입력 2023.11.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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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얼마 전에 산 노트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작성된 글입니다.]


기념품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되어준다.


여행하다 우연히 들어간 상점에서 산 엽서 한 장, 그날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사게 된 향수, 지역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키링 등... 기념품의 한도는 끝도 없다.


너도나도 사는 유명한 기념품이 아닌, 그때의 내가 함께 녹아있는 기념품은 신기하게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어, 이거는 ~에서 산 건데? 맞아 그때 ~랑 같이 갔었지. ~도 먹고 ~도 구경했었다. 그날 너무 더워서 ~에서만 계속 있었는데.’


분명 물건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순간 나의 뇌는 기념품을 산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 재생이 되곤 한다.


그런데 그동안 나에게 기념품이란 좀 거창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 멀리 여행 갔을 때에만 기념으로 사는 물건이랄까? 집 근처나 가까운 지역에서는 기념할 것도 없고 괜히 돈 아깝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산 노트를 통해, 기념품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달았다. 우선 그 노트를 둘러싼 이야기부터 전해보고자 한다.


며칠 전, 서울에서 친구를 만났다. 대부분 친구와의 약속 하루 구성이 그렇듯, [카페-밥-사진] 코스를 따랐다. 하지만 평범한 코스와는 달리 행운과 재미가 연속으로 이루어진 신비한 날이었다.


평소 사람이 넘쳐나던 강남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인기 많은 식당에도 웨이팅이 없었으며, 가고 싶었던 팝업스토어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한 소품샵을 발견하여 들어갔다. 스티커부터 생활용품까지 귀여운 캐릭터로 둘러싸여 있는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와 귀엽다~” 하고 구경만 했을 텐데, 친구가 콕 집어서 보여준 노트에 무언가 이끌렸다. 1+1으로 포장되어 있는 이 노트를 사서 하나씩 나누어 갖자는 친구의 말에, 고민도 없이 “그러자” 답했다.


노트를 들고 우리가 미리 찾은 식당으로 가던 중, 블루리본이 가득한 곳이 있었다. 블루리본을 처음 본 나는 친구에게 설명을 듣고, 리뷰를 찾아보았다. 어쩜 이렇게도 후기 사진과 리뷰가 훌륭할까! 우리 계획에 있던 식당은 과감히 삭제하고 이곳으로 직진했다.


리뷰를 남긴 고객들의 입맛은 정확했다. 추운 날에 먹는 뜨끈한 국물요리, 그리고 즉석에서 바로 구워주는 꼬치 요리까지. 감히 지금까지 가 본 가게 중에 TOP5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문내고 싶지만, 각자만의 맛집이 있듯 우리에게도 그러하기에 비밀로 묻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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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당에서 찍은, 친구와 나눠가진 1+1 공책이다. 두 개의 디자인이 달라, 친구가 섞어놓은 공책을 내가 눈 감고 고른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거의 핸드폰만한 작은 크기의 노트이지만, 이 노트를 보고 있으면 그날 거쳐 간 장소들, 음식 등이 스르륵 떠오른다. 행운과 재미가 넘쳐났던 친구와의 하루를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해외, 국내 여행으로 멀리 갈 때 기념품을 장만하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해서 그런가, 가끔은 마음이 아닌 의무가 담긴 물품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울수록 그저 기념 용도로만 사는 물품은 일회성이 너무나도 강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가끔은 지역과 거리 다 따지지 말고 누군가와의 하루를 기억하는 용도, 누군가와 같은 물품을 공유하는 용도로 기념품을 사는 것도 꽤 괜찮은 쓰임일 것 같았다. 똑같은 노트일지라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써서 새로 산 노트와, 친구와의 행복했던 하루를 간직하고 있는 노트에는 깊이가 전혀 다른 스토리텔링이 담겨있으니까.


대신 무조건 비싸고 그럴듯한 기념품만 사면 안 된다. 식물을 보다가 새싹을 구매할 수도 있고, 독특한 영수증을 기념으로 보관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도 그날의 기념품이 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이번에 산 노트에다가는 특별한 하루, 그리고 그 하루를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기록해놔야겠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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