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극장은 버텨낸다. 고로 존재한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_권철
글 입력 2023.11.06 16: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포스터.png

 

 

최근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되고 있다. 연고도 없고 추억도 없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이지만 사람의 뼛가루처럼 가루가 되어버린 극장을 보니 이게 결국 극장의 미래인가 싶은 마음에 탄식이 나왔다. 어쩌면 현 사회의 이치이자 건물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필요와 기대 수익을 머리를 쥐어짜며 계산하며 숫자에 맞게 공간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 하지만 세상은 수학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공간엔 추억이 있기 마련이고 역사가 있기 마련인데, 세상은 그런 과거 속에서 빛나는 찰나의 한순간으로도 힘을 얻어 돈다. 움직인다. 나아간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1935년에 개관한 ‘광주극장’과 8팀의 인디 뮤지션이 등장해 공간에 담긴 추억과 음악으로 버텨내는 모든 존재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되는 지금, 이 영화는 극장의 생존신고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살아있다고. 이렇게 멀쩡하다고.

 

언젠가 지하철에서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며 양보를 거절하셨지. 할아버지께서는 손잡이를 잡으시며 끝까지 버텨내셨다. 손등에 솟아오른 핏줄은 그 존재를 조용하게 드러냈다.

 

 

[크기변환]스틸컷5.png

 

 

인디 뮤지션들에게 제시되는 인터뷰 질문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극장에서 본 첫 영화가 무엇인지, 버텨내고 존재할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인지. 뮤지션들이 받는 질문을 통해 나도 극장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세상 이치로 지칠 때에

너의 발견은 불이었어 저 해 보다 뜨거운 불

너의 존재는 불의 발견

 

- 김일두, 뜨거운 불 中

 

 

‘광주극장’ 2층에서 불린 이 노래의 가사가 인상 깊었다. 세상이 이치가 아닌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굴러갈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극장에 담긴 모든 존재들의 추억이 맞물리며 이들이 뿜는 찰나의 빛이 지구의 자전에 힘을 가한다. 공간은 무수히 많은 존재들의 기억을 꽉 잡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버티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그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우리의 존재를 간직하고 있던 극장의 존재도 목격된다. 뮤지션들은 복도, 계단, 상영관, 입구, 사무실 등 ‘광주극장’의 모든 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인디 뮤지션들의 존재를 보는 동시에 ‘광주극장’의 존재를 본다. 극장이 “아직 살아있어!”라고 외쳤다면 나는 “살아있구나. 건재하구나.”라고 눈도장을 찍으며 답한다.

 

극장은 과거로부터의 발자국으로, 뮤지션들은 노래자국으로, 나는 눈자국으로 얘기한다.

 

 

[크기변환]스틸컷4.png

 

 

‘버틴다는’ 행동은 그 존재가 안정적이지 않고 위태롭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일 때 그 끝은 불확실하다. ‘존재’는 ‘버팀’의 미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영화는 이 두 행동을 전후로 두지 않고 같은 수평선 상에 놓는다. 버텨내고 존재하기. 버틸 때의 존재. 버티는 존재. 사실 모든 존재는 존재하지만 버티면서 존재하지 않는가. ‘뜨거운 불’의 가사처럼 나의 존재가 불이라면, 해보다 뜨거운 불이라면, 버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또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러니 이 영화는 버팀 끝에 비로소 보이는 존재가 아닌, 아직 그 버팀이 끝나지 않은 모든 존재들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버티고 있는 존재가 지닌 넓은 우주와 그 안에 떠도는 추억들, 꿈들, 한때의 영광들. 세상을 움직이는 찰나의 빛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극장들.

 

 

[크기변환]스틸컷3.png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처럼 생각이 그 존재를 증명할지 몰라도 극장에게는 버텨온 시간들이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많은 극장들이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있으며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실이 슬프지만 말이다.


‘광주극장’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아직 건재하고 목격될 수 있으니 잘 부탁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이서수’ 작가의 단편 소설 <젊은 근희의 행진>의 마지막 문장은 ‘나의 동생 많관부. 나의 동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이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감독도 영화를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리 극장 많관부.

우리 극장,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박성준-컬쳐리스트.jpg

 

 

[박성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