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향긋한 인생

글 입력 2023.11.02 00: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31076172_aQFSfMhU_abstract-1838153_1280.jpg

 

 

지나치게 고전적이라 촌스럽게 느껴지는 철학의 질문들, 그런데 고전적인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계속해서 부메랑처럼 날아드는데, 아름다움의 장소가 사물인지 관찰자인지 혹은 그 둘 사이 어디인지 같은 케케묵은 질문은 그냥 아무 일 없는 오후, 창밖을 바라보다 참새처럼 가볍게 왔다 날아가며.

 

생각들은 길가에, 산책에, 차창 너머 보이는 터전의 파노라마에, 해가 비치는 책상을 보는 흘깃거림에 잠깐 머문다.

 

질문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아, 양달과 응달의 신비로움. 신은 질긴 거죽, 굳은 살을 아프지 않게 도려내어 준다. 두꺼운 머리칼들을 몽땅 잘라낸 어린 날처럼 가볍다. 속살로 세상을 감촉한다는 것은 작은 것에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무너지는 것은 한자락의 바람에 매료되며 목선의 은은한 정교함에 숨이 탁 막히는 그런 것, 세상의 가르침들은 이 순전한 향긋함 뒤로 사라지고, 연인의 기능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기능주의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알랭 드 보통의 가장 큰 유산이고, 그래서 어제는 죄책감 없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기능을 생각했지.

 

책을 펼치고 단어를 외우고 말을 했는데도 테두리가 투명해지고 무게가 가셔 이 행성 바깥으로 튕겨나갈 거라고, 난 그래서 연인의 손을 잡길 원했고, 피부와 피부가 맞닿으면 당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도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멀리 있는 당신에게는 화면 앞으로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와달라고, 그 시선이 피부에 맞닿도록.

 

그러나 펑키한 사랑, 연인을 자신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알랭의 지혜로운 자조, 해소되지 않는 가벼움을 눌러주는 하중을 찾지 못해 밤을 뒤척거리다가 잠에 들었고. 아침의 시야는 이슬처럼 깨끗했다.

 

내 무게에 대한 감각은 일순간 찾을 수 없고 세계는 보이고, 담아지고, 받아들여지고, 나는 물 웅덩이에 비치는 풍경처럼 거기에 있다고.

 

 

[남영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