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정함은 전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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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사랑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다.
인생에서 다정함은 엄마를 통해 배웠다. 그녀는 늘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푼다. 가는 것이 있다면 오는 게 있다는 속담이 좌우명일 만큼, 받은 것을 잊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받은 것이 없어도 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그녀는 동네에서 또는 회사에서 다정함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최근 한 약국에 방문했다. 일면식도 없는 약사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뒤돌아서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나를 붙잡으셨다. 그리고 엄마의 딸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다.
당황한 나는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양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셨다.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반대 손에는 음료와 비타민이 담긴 봉투를 받았다. 그렇게 내 양손은 어느 것도 집을 수도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딸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다정함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때부터 알았다. 내가 다른 이에게 베푸는 선의는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기대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또 다른 타인에게 전이 될 것이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 것을 짐작한다.
주말 오후마다 아파트 앞 폐지를 정리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매일 검정 줄 이어폰을 꽂은 채,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늘 지나갈 때마다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등을 바라볼 때마다, 무언가 모를 뭉클함이 마음을 적셨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반년이 흘러갔다. 어느 날,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 내용물이 쏟아져서 혼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어김없이 박스를 정리하고 있던 그녀는 나에게 재빨리 다가와 도움을 줬다. 성급했던 나는 감사 메시지를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작은 음료 상자와 함께 그녀에게 다정함을 건넸다. 매일 뒷모습만 바라봤던 나는, 만면에 그득한 미소를 보았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환한 모습이 아닐까.
한때 답답했던 나는 엄마에게 여쭤봤다. 도대체 왜 이유 없는 선의를 남에게 베푸는지, 삶을 손해 보는 것 같지 않아 보이지 않냐는, 터무니없는 질문을 건넸다. 타인에게 다정함을 한도 끝도 없이 주는 외할머니를 보며 자란 탓에, 자연스레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답한다. 결국 그 행동이 현재 나에게 전이됐다.
사랑은 돌고 돈다. 나는 가끔 뜬금없는 다정함을 선물한다. 누군가 그 따뜻함으로 하루를 지탱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내가 닿지 못할 곳에 애정이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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