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것 역시 지도 -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미술/전시]

새로운 형식의 지도 그리기
글 입력 2023.10.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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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란 무엇인가


 

오늘날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국제적 미술 행사로 자리매김한 비엔날레의 기원은 1895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비엔날레는 “움베르토 왕과 마르게리타 왕비의 은혼식을 기념하는 행사로 시작되었으며, ‘베네치아시 국제 미술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최되었다. 지역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행사의 이면에는 통일된 이탈리아를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방안이라는 목적이 존재했다.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는 황금사자상을 수여함으로써 국제적 미술 행사의 위상을 제고하였고, 초기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비엔날레는 추후 일본, 중국, 한국 등 다양한 지역으로 뻗어나가 현재는 다양한 동시대 미술작품과 작가를 조명함과 동시에, 국제적인 예술적 담론을 이루는 전시로서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경우, 1990년대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서울지역의 도시 경쟁력 강화와 정체성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도시를 주제로 한 <도시와 미술>, <도시와 영상>에서 이어져 제1회 <도시: 0과 1사이(2000년)> 이름으로 처음 개최되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불신이라는 양가적 태도가 보였던 초기 미디어시티와 달리, 다년간의 비엔날레 개최를 거쳐 미디어를 매개로 한 예술전시라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로 제12회를 맞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는 서구 국가가 형성한 지도의 명확성과 합리성, 영토적 구분을 벗어나는 시도를 이루고, 지도의 경계 ‘사이’ 혹은 ‘밖’에 존재하는 전쟁과 난민, 이주, 식민지, 선진 국가로 지칭되는 서구 국가들의 이면 등 사회현상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낸다. 그렇기에, 비엔날레의 작품 흐름을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흐름에 대한 성찰과 질문을 통해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 이루어지는가’에 확인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이것 역시 지도>의 큐레이토리얼과 지난 기억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식민지 역사와 이루어지지 못한 공존, 지도 경계선 ‘사이’에 존재하는 정체성을 언어체계와 미디어의 시각적 요소로 살펴보며, 비영토적 지도 그리기를 통한 예술적 담론의 형성과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차학경의 <입에서 입으로(1975)>를 통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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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경의 <입에서 입으로>, 언어를 통한 경계 탐구


 

차학경(1952년 – 1982년)은 생전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 나타나는 미술작품, 필름과 비디오, 퍼포먼스와 문학작품 <딕테(1982)>를 남겼다. 1982년 <딕테> 출간 3일 후 비극적인 사건으로 31살의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만주로 이주한 조부모, 해당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아래에서 자라 한국전쟁으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한 "떠남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내 작품의 중요 부분은 언어와 관련이 있다. 나의 비디오, 영화, 퍼포먼스, 작품은 글로 쓰였거나 말로 된 자료, 사진, 영화 이미지들 속에 내재된 언어 구조 – 이런 형태들의 동시성 내에 존재하는 새로운 관계와 의미들의 창조에 대한 탐구이다.’ 그녀의 서적 <관객의 꿈>에서 나타나듯, 이주의 경험과 언어구조의 해체, 매체의 혼합은 그녀의 예술 세계에서 중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체계의 분리와 해체 등의 예술적 시도는 이전의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등의 예술작품 외에도 <딕테(1982년)>에서 크게 나타난다. 언어를 발음하는 것의 필수적인 신체 기관의 구조 이미지와 유관순,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첨부하거나, 영어와 불어가 혼합된 본문, 혼잣말하는 듯한 문체 등 기존 문학의 구조와 글쓰기 규율에 반대되는 특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읽는 글과 언어’가 아닌 ‘보는 글과 언어’로서 자신의 작품과 글을 행위화하는 탈구조적, 전복적 텍스트 형식으로 표현했음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입에서 입으로(1975)>에서는 다른 관점의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다. TV 화면 속 한국어의 모음을 말하는 입과 문자들을 비추며 언어체계를 시각적 요소로 이미지, 영상화한다. 해당 작품에서 한국어의 모음자들을 발음하고 있는 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어의 모음자인지 한국어의 모음자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은 모호한 이미지와 소리로 불완전하고, 불명확한 말하기를 행하며 미국으로의 이주와 자신의 고향인 한국의 ‘사이’에 존재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언어체계의 특성으로 연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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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경, <입에서 입으로(1975)> 미국, 1975년, 7분40초, 흑백, 사운드 Mouth to Mouth, USA, 1975, 7min40sec, B&W, Sound.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EAI), New York

 

 

이주 국가와 자국 ‘사이’에서의 ‘언어’는 어떠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 언어란 하나의 집단, 국가의 관습과 문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는 체계로서 자아의 주체를 정립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관계로 존재한다. 즉, ‘언어’는 어떠한 집단 간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요소로 존재하거나 지배 국가의 헤게모니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문화 안에서 한 집단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차학경 작가의 <입에서 입으로>에서 나타나는 언어 체계와 미디어를 통한 일방적 시각 요소의 제시에서 더 나아가, 지도의 영토적 구분 뒤에 존재하는 현상들을 언어 체계를 통해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언어’가 가진 다중적 의미와 중요성, ‘경계 사이’에 존재하는 정체성에 대한 의미를 반추할 수 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기억의 흐름에 대한 고찰


 

앞서 비엔날레의 역사와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특성, <이것 역시 지도>에 나타나는 비영토적 지도 그리기에 대한 탐구를 차학경 <입에서 입으로(1975)>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한국어 모음자의 불명확한 말하기 방식을 통해 언어 체계의 다중적 의미와 이주 국가와 자국의 경계 ‘사이’에 존재하는 작가의 정체성을 통해 ‘떠남의 기억’을 반추할 수 있다.


‘비영토적 지도 그리기’를 통해 서구 지도의 명확성에서 탈피한 새로운 경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물리.문화적 변위와 재정착의 과정, 시스템과 정체성의 문제는 동시대에 현존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억의 흐름’으로서 존재한다. 더 나아가, 미디어의 특성과 예술을 결부시켜 지구촌에 나타나는 ‘기억의 흐름’에 대한 성찰과 문제를 제시한다. 해당 전시를 관람하며 생성된 예술적 담론을 기반으로 질문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기억의 흐름’에 존재하는 새로운 맥락은 무엇인가요?”

 

 

참고문헌

서희주. "비엔날레의 문화정치학과 예술 담론의 중요성." 哲學論叢 108.2 (2022): 53-68.

배수희. "제1회-제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나타난 과학기술 수용의 양가성에 대한 연구." 美學·藝術 學硏究 67.- (2022): 82-107.

콘스탄스 M. : (1951-1982), (르발렌 외 『 』 관객의 꿈 : 차학경 김현주 역 서울: , 2003) 눈빛 , p. 73

김화선(Hwa-Seon Kim). "언어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문학적 글쓰기 ― 차학경의『딕테 (DICTEE)』를 중심으로." 어문연구 49.- (2005): 307-328.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안내 책자. 2023. 차학경 <입에서 입으로(1975)>

 

 

[윤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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