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과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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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는 책이었다. 정돈된 기승전결과 깔끔한 필력이 몰입감과 현장감을 증폭시켰다. 분량이 적지는 않았지만, 금방 읽었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영화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읽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적어보자.
조각(爪角)은 60대인 살인청부업자이다. 그녀는 40년 정도 ‘방역’-청부살인을 의미-을 임하며 빈틈없고 정확한 일 처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했던 그녀는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현재가 예전과 다름을 실감한다. 냉정했던 가슴에 따뜻한 균열이 생기며, 연민과 애정의 감정이 삶을 서서히 적시고 있다. 강 선생과 그의 가족. 지켜야 할 것이 생기는 그녀의 일상을 위협하는 킬러 투우에 맞서, 그녀는 마지막 방역을 실행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조금은 익숙한 이야기를, 작가는 수려한 문체와 효과적인 전환을 통해 이끌어간다. 해당 소설의 묘미는 대조되는 정체성과 시간의 낙차이다. 우선, 노인과 여성 그리고 킬러. 미묘한 정체성의 어울리지 않은 조합은 ‘대조성’이라는 소설의 큰 틀을 구성한다.
이러한 대조에서 비롯되는 시간과 감정의 낙차는 소설의 응집성을 더욱 조밀하고 일관되게 가져간다. 이성과 감정의 대립, 과거와 현재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비교로 주인공은 계속해서 고뇌와 위기를 거듭한다.
여러 층위에서 발생하는 충돌은 다양한 마찰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마찰을 통해 이어지는 스토리는 소설의 큰 틀 안에서 다양한 변용을 통해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소설이 가져가는 일관성과 그 안의 조밀한 세부성이 <파과>의 매력이다.
해당 소설의 결말 부분은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간단히 언급하지만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라는 대사로 갈무리하는 소설의 절정은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선사한다. ‘노화’가 순간이 아닌 과정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전술했던 낙차와 대조에서도 동시에 적용된다는 것이 증명되는 대사이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돌변한 것이 아닌, 과거부터 모순된 부분이 존재했다는 것을 환기한다.
"사라진다. 살이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이어지는 조각의 독백은 의연하게 모든 변화의 과정에 순응하겠다는 것을 역설한다. 상실은 불가피하며 그에 따른 육체적 혹은 정신적 변화 역시 운명적이다.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없어져 가는 것이 삶이고 그것에 수반되는 모든 것을 수용하자는 것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일관(一貫)이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주제를 집요하게 강조하는 도저한 노력을 좋아한다. 해당 소설의 일관된 주제와 소설의 스토리에 상당히 만족했다. 힘이 들어간 문체에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충분히 재밌는 소설일 것이다.
[김민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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