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적인 선택,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 밀정리스트

글 입력 2023.10.04 08: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밀정리스트 poster김동현.jpg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테스트 중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특정 시대를 집어 어떤 부류의 삶을 살고 있을지 유추해 보는 테스트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위인들로 유형을 구분해 놓은 테스트들을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분류한다. 앞에서 만세를 외치며 행동할지, 아니면 말없이 뒤에서 지원하며 움직일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용기도 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창피해한다든지,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지.


집단 속의 개인은 패러다임이 변화에 대해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기 어려우며, 설사 인지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어려울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용기 있는 사람들은 소리 내어 문제를 이야기한다. 식민 지배를 받던 상황에 자주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침략자들에게 총을 겨누고, 침략자들 사이에 숨어 근간을 캐내고, 뒤에서 말없이 그들을 지혈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연극 <밀정리스트>는 그중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일대기 중 한 토막을, 아마도 가장 장렬했을 순간을 보여준다.

 

연극 <밀정리스트>는 나라를 위해 총을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총구의 방향이 동지들과는 다른 사람들도 있다. 누구의 총구가 홀로 다른 곳을 겨냥하고 있는지 추론하며 보는 것은 일종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어떠한 생각으로 총구의 방향을 바꿨는지, 총을 잡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선택이었을진대 그 방향을 또 바꾼 데에는 도대체 어떠한 사유가 있어서 바꾸었을지 헤아리며 보는 것도 서사를 잘 따라가는 방법의 하나다.

 

 

밀정리스트6 단체.jpg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시간은 약 36년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보기엔 긴 역사의 한 단면이지만, 당시의 숱한 인물들에게는 삶의 대부분이 피식민지인으로서의 삶이라, 암흑기와 다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독립이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의 기약 없는 기다림과 다름없었을 것이기에.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삶이 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총을 잡지 않았다고 한들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만의 삶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을 두고 타인이 어떻게 힐난하겠는가.

 

하지만 ‘밀정’이 시간이 흐른 뒤 지금까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고 연극에서도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차라리 창씨개명을 하지, 왜 배신을 해.“

 

그 누구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고, 혹은 왜 흘러가는 대로만 사냐고 욕하지는 않을 테다. 다만, 앞에서 집단을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하나 뒤에서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경우는 다를 뿐이다. 부작위보다 행동하는 사람을 더욱 질 나쁘게 보는 것과 같이.

 

연극에서도 사리사욕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인물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 민족에게 등을 돌린 인물이 등장한다. 전자는 그저 파렴치한일 뿐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저 그의 삶을 위해 행동하고 그의 사랑, 그의 가족을 위해 행동했을 뿐인데.

 

과연 우리는 저 시대로 돌아간다면 가족이 위험에 빠져도 쉬이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아마 거의 모두가 모르는 척할 수 없을 테고, 우리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훗날 이름을 내세울 수도 없는 밀정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선택이지만 이를 평범한 선택이라 여길 수 없게 만드는 시대상은 자명하게 타의에 의한 것이라 그저 한스러울 뿐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독립’이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생을 내던진 수많은 사람 사이에 악질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과 일반적이나 결코 도덕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 약 900명이 숨어있다. 이념의 옳고 그름, 시대의 행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 한때는 중요히 여겼더라도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쳐버린 사람들.

 

보는 내내 결코 총구의 방향이 바뀐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선택들이기에. 그와 동시에 씻을 수 없는 잘못임은 명확하므로 필히 구체적인 조사와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극이 끝난 뒤 무대인사에서 차마 웃지 못하는 배우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연하는 동안 버거운 감정을 감당하는 배우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주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