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커다란 잘못은 커다란 이야기 뒤에 숨을 수 없음을 – 밀정리스트 [공연]

그 어떤 상황도 이야기도 잘못을 가릴 순 없다.
글 입력 2023.10.03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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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믿지 마라! 의심하고, 경계하라!"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

독립운동의 이면 속 고통스러운 역사를 마주하다.

 

 

[밀정리스트]는 1929년 경성에서 일본 총독 암살 거사를 준비하는 의열단 단원들 이야기다. 일제의 탄압과 감시망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단원들은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 앞에 상해에서 건너온 김충옥이 나타나 권총 4정과 탄알 800발, 다량의 폭탄과 군자금 모금명부를 전달한다. 의열단 단원들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사이토 일본 총독을 암살할 거사를 치밀하게 준비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김충옥은 단원들 안에 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곁에 있는 동지들을 하나하나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 속으로 빠져든다. 과연 동료 중에 누가 밀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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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남몰래 사정을 살핌. 또는 그런 사람.’

 

누군가가 내 사정을 알 수 없도록 꼭꼭 감추고, 그 비밀을 평생 안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사람. 이 연극은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랄까.

 

이미 많은 미디어에서 독립운동가와 밀정 사이의 심리전을 다룬 콘텐츠가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밀정을 다루는 이야기들에 호기심을 갖는다. 겉으로는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그들의 이중적인 면모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

 

“만약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직하게 독립운동에 정진할 수 있었을까?”

 

“지킬 가족을 위해 밀정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 제안을 내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내가 밀정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공연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솔직하게 이 질문들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만약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조선 땅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밀정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고 하면, 무엇이 도덕적인 행위인가를 판단하기도 전에 나의 상황을 지키기 바쁠 것이다.

 

 

밀정리스트8.jpg


 

이 연극은 KBS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에서 말하길, 밀정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써오셨던 독립투사들과 함께 이 땅에 묻혀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연극의 메시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행동이든 올바르지 않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의도가 선하다고 하더라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나도 앞서 밀정의 책임을 쉽게 버릴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연극을 만들게 된 배경을 공부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다르게 보였다. 그동안 밀정의 상황을 더 안타깝게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점을 부각하여 그린 미디어 콘텐츠들 덕분에, 전체적인 결말이 아닌 개인적인 사정에 집중하여 ‘밀정’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잘못은 절대 지울 수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가장 좋은 점은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용인하든, 신이 용인하든 자신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진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잘못을 직시해야 한다. 밀정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 자세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생각을 내뱉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에서는 밀정을 가벼이 다루지 않아 좋았다. 그들의 사정을 부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밀정이라는 자들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향유할 수 있도록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었다. 관객들과 함께 밀정을 찾아내는 재미 또한 있었다. 밀정이 대체 누구일지 추측하는 재미 가운데, 진실을 마주하자 카타르시스 또한 느껴졌다.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고 추측하는 것은 항상 재미있는 문화인 것 같다.

 

밀정, 남몰래 자신의 이익을 취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 정당화될 수 없기에 우리는 생각해 본다. 그들이 남 몰래 반성을 하였더라면 더 좋겠다고 말이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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