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이 주는 fomo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9.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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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어쩜 그렇게 한 분야를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는지 묻는다. 대학생 시절의 인턴부터 시작해, 갤러리스트로서의 다년간의 경력과 현재 하고 있는 일까지, 나의 커리어는 예술이라는 큰 줄기 안에서 방향과 형태를 달리하며 움직여왔다. 주말에는 전시를 보는 것이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가끔은 예술에 권태를 느낀다.

 

아주 드물게 미술이 정말 싫을 때가 있다. 새로운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고, 전시도 가기 귀찮다. 20대 때는 내가 왜 이럴까, 미술이 어쩌면 내 길이 아닌걸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장 좋아하고 평생 하고싶은 일은 예술쪽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내가 아주 가끔 미술이 꼴보기 싫어지는 건.

 

최근 그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주 최근인 9월 초에도 저 증상이 도졌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때는 프리즈 직전이었다. 국내 최고의 미술 축제 기간인 프리즈와 키아프를 앞두고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포털, 길거리의 현수막 등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프리즈 관련 홍보글이 올라왔다. 이것이 여러 일 누적되니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리즈에 갈텐데, 나도 갈껀데, 왜 자꾸 오라고 압박하는지. 마치 방청소를 막 할 참인데, 자꾸 방청소를 하라는 잔소리를 듣는 느낌이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하고 싶었던 환기마저 하기 싫어진다.

 

요즘엔 현대 미술을 즐기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된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즐기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유행이 으레 그렇듯, 대중을 잠시 휩쓸고 사라져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들이 다 갔으니 나도 이 열풍에 동참해 특정 전시를 보고, 인증샷을 남기고... 그러다 더이상 전시를 보는 것이 '힙한 것'이 아니게 되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건 미디어가 미술을 삶 속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소비하는 것'으로 보이도록 포장해 폭풍처럼 홍보를 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예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솔직히 나도 에드워드 호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카톡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네이버 포털 등에 올라온 광고, 뉴스, 포스팅에 떠밀려 '안가면 바보인가?'라는 생각에 다녀왔다. 미술관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며, 서핑을 하듯 인파에 쓸려 정신 없이 전시를 관람했다. 다 보고 나왔더니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온것 만큼이나 피곤했다. 여기서만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물론, 처음 시작은 이랬지만 개중에 몰랐던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 예술에 푹 빠지게 되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저곳에 전시에 대한 광고가 도배되고, 뉴스 기사들도 '예매율 1위' '블록버스터 전시' '에드워드 호퍼 열풍' '오바마가 사랑한 호퍼, 97억에 판매' '아직도 몰라?' 등 자극적인 키워드 위주로 보도가 되면 사람들은 조급함을 느끼고 떠밀리듯 전시를 보게 된다. 그리고 가뜩이나 잘 모르는 미술에 대해 더욱 '나와는 동떨어진 무언가'라는 거부감을 들게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럴 때 내게 가장 효과가 좋은 해결책은 미술 치료이다. 미술에 대한 싫증을 미술로 푸는 것. 사람이 많이 없는 한적한 미술관에 가서 조용히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나를 적신다. 어딘가에 직접 가기 여의치 않으면 평소 관심이 가던 한 작가에 대해 여러 매체를 뒤적거리며 공부한다. 그의 작품 철학과, 인생사에 대해 알게되면서 새로운 지식으로 세례를 받고, 내 안이 꽉 채워진 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여행과 비슷하다. 얼마나 많은 예술을 빠르게 눈으로 담고 다음 작품을 보는지보다, 한 작품을 보더라도 내 안의 울림에 귀기울이는 것이 훨씬 알차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예술을 빠르게 소비하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씹으며 음미했으면 한다. 안그래도 모든 것이 너무나 빨라 혹시 내가 뒤쳐질까 걱정하는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위로를 주기에 충분한 예술까지도 fomo의 원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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