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오직 포르투갈어 만이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그리움을 번역할 순 없지’
글 입력 2023.09.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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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을 외면으로만 보아 그 달콤한 과육은 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어떠한 것을 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에서는 다채로운 브라질 문화를 다룹니다. 삼바와 축구, 자유와 열정… 그 속에 있는 이야기에 한 입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왜 브라질이냐고요? 이유는 없습니다. 수박, 맛있잖아요.

 

 

'예쁘장한 Savage'들과 카디비의 조합은 말 그대로 기분 좋은 세계관 충돌의 한 예시입니다.

 

 

‘케이팝이 어디까지 왔나’를 판단하는 척도가 여러 가지 있다면, 그리고 그중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해외 유명 가수와 한국 가수의 협력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하는 것 같은 해외 가수들과 어릴 때부터 봐온 익숙한 모습을 한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같이 노래하는 걸 보는 것. 그것이 일종의 기분 좋은 세계관 충돌을 일으킨다고 할까요.

 

이런 '콜라보' 작업은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해외 유명 가수의 작업에 한국 가수가 피처링하거나, 한국 가수의 노래에 해외 가수가 피처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함께 작업을 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전 세계 리스너들이 들을 노래의 가사를 한국어로 쓴다면? 이미 한국의 리스너들을 기절하게 만드는 데 충분합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가사를 ‘우리’만 이해한다는 짜릿함이랄까요.

 

그런데 카디비가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AI 커버 버전이 아니라 '진짜'로요. 외국인이 자신의 모국어로 노래하게 한 브라질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루이자 송자(Luisa Sonza)이죠. 오늘은 이 가수를 알아보려 합니다.

 

 

'Chico'는 루이자의 현 연인에 바치는 곡입니다.

 

 

 

루이자, 귀엽고 노래 잘하는 카우걸


 

이전에 소개한 아니타라는 가수는 ‘브라질의 디바’라는 단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반면 루이자에게는 단 몇 가지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는 그가 대중에게 항상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죠. 아니타가 일관되게 자신의 출신지인 파벨라를 세계적 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 잡게 시도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루이자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2017년도 첫 싱글 앨범을 발표하면서이지만, 고향에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게 7세 때부터였습니다. 그 무대에서 한 달에 20회가 넘는 공연을 꾸준히 하며, 10년 동안 기본기를 탄탄히 다졌죠. 나이가 올해로 25세가 되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아직 5~6년이 지나지 않은 걸 고려하면, 그는 생각보다 빠르게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는 컨츄리 음악도 곧잘 부르고, 호쾌한 모습도 보이며 브라질 국민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감성적인 발라드를 부르는 한편 신나는 리듬과 비트,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대중성을 갖추기까지 한 멀티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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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scâncalo íntimo’는 '사적인 스캔들'을 의미합니다.

 

 

 

‘사적인 스캔들’


 

그런 그가 지난 8월 화려하게 컴백했습니다! 브라질 대중은 새 앨범의 제목이 ‘Escâncalo íntimo’임을 알고 멈칫했을지도 모릅니다. 영어로는 ‘Intimate Scandal’, 즉 사적인 스캔들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이 제목은 지난 2020년도에 루이자에게 있었던 큰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2020년 루이자는 4년간의 인연을 끝으로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연인을 만납니다. 루이자의 이혼은 그의 바람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루이자와 연인은 SNS에서는 물론 거리에서까지 온갖 협박과 인신공격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전남편이 새로 만난 연인의 아이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자 이상하게도 화살은 다시 루이자에게 돌아갔고, 그는 혐오를 넘어선 분풀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루이자는 당시 준비하고 있던 앨범 발표를 무기한으로 미루고, 온라인 활동과 커리어를 잠정 중단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모든 공격은 루이자와 새 연인의 사이가 바람으로 인해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전 남편의 해명이 있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졌죠. 이 모든 사건이 그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하게 했고, 그 미친 과정을 겪고 난 뒤 2023년도에 나온 앨범의 제목이 바로 ‘사적인 스캔들’인 것입니다.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브라질 대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댓글이 있습니다.

 

 

 

'욕하지 않았음에 해방감을 느낀다'


 

이번 앨범의 메인 트랙 중 하나인 ‘Principalmente Me Sinto Arrasada(난 대체로 무너진 것 같아)’는 루이자가 SNS에서 밝힌 이번 앨범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면서, 그가 겪은 고뇌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곡 중 하나입니다.

 

 


  

Eu tô cansada

나 피곤해

Faz tanto tempo que eu tô cansada

이렇게 피곤한지 꽤 된 것 같아

Faz tempo que eu atento contra o tempo e não consigo nada

시간을 두고 노력해 보지만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뮤직비디오의 댓글을 보다 보면 이런 문장이 많이 보입니다.


 

A sensação de nunca ter julgado essa mulher é libertadora!

(이 여자를 단 한 번도 비난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해방감이란!)

 

 

조금 더 노골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여자를 한 번도 욕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째진다!!’ 정도가 되겠네요. 그가 모든 사람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던 2020년도와 2021년도에 자신만은 그를 욕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자신은 떳떳하고,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그 당시의 일들은 심각한 혐오였다는 거죠.

 

이 댓글과 수많은 좋아요를 보고 있으면, 조금 의문이 듭니다. 당시의 사건에서 한 발짝 멀어져 있었음은 사실상 방관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스타에 대한 대중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태도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루이자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 공개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여전히 루이자와 새 연인이 위태로운 관계에 있는 것 같다는 추측성 게시글을 만들어 냅니다.

 

 

Observada, eles contam os meus passos

날 지켜보고 있어, 다들 내 걸음걸음마다 일일이 세고 있어

Seguem a boiada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어

Tomar no cu quem acha graça

이게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엿 먹으라고 해

 

 


그리움은 번역할 수 없어


 

루이자의 이번 앨범 중 많은 주목을 받았던 트랙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Penhasco2(절벽 2)' 입니다. 2가 있다는 것은 그 전에 1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1에서 루이자는 사랑했던 연인이 자신을 높은 절벽에서 떠밀어 뛰어내리게 된 사람의 심정으로 노래했고, 2에서는 모든 것이 끝난 상황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그립니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작업에 미국의 가수 데미 로바토가 포르투갈어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Saudade não tem tradução 

그리움은 번역할 수 없어

 


데미 로바토가 부르는 ‘Penhasco2’의 한 구절입니다. 이 문장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먼저 ‘Saudade’라는 단어 자체가 번역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우다지(Saudade)는 간단하게는 '그리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만,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될 수도, 한 사람에 대한 열망과 동경, 그것에 한데 합쳐져 생기는 진득한 감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저 오랜만에 본 사람 혹은 보게 될 사람, 어쩌면 영원히 보지 못할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말이 될 수도 있죠.

 

또는 ‘Saudade’라는 감정 자체가 다른 말과 표현으로 번역될 수 없어, 온전히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장을 외국인인 데미 로바토에게 분배한 것에서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집니다. 만약 이 문장의 화자가 브라질 사람인 루이자였다면 이 문장이 이만큼의 울림을 만들진 못했을 것입니다. 

 

 

 

Gringo를 나의 문화로 끌어들이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용되는 단어 중 '그링고(Gringo)'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주로 라틴 아메리카 사람의 입장에서 외국인을 칭하는 말입니다. 주로 ‘아메리카’라는 단어를 이야기했을 때 북미의 문화가 대표적으로 호명되고, 남미는 삭제되는 문화적 현상을 비꼬는 의미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호명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링가(Gringa)‘인 데미 로바토가 노래한 이 가사가 특히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무엇보다도 외국인이 포르투갈어로 노래를 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에게 포르투갈어를 시키게 하는 루이자 송자의 글로벌한 능력을 유머 섞인 농담 식으로 칭찬하는 반응이 많았죠.


루이자의 최신 앨범, Escâncalo íntimo는 그가 드디어 아티스트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그가 말로 채 표현할 수 없는 역경과 공포, 자기혐오를 딛고 자신의 이야기를 적당히 거리를 두며, 그러면서도 너무 간략하지 않게 표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이렇게 망가진 데에 대한 책임이 대중에게 있음을 꼬집기 위해 대중과 예술로 직접 마주하기도 합니다.

 

루이자가 겪은 일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비슷한 일들이 한국에서도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는 많은 목숨을 잃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루이자와 같이 자신만의 언어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류나윤_컬쳐리스트.jpg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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