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토록 우악스러운 젊음! - 서울세계무용축제 ‘코리얼리티’ [공연]

방황하는 젊음과 몰아치는 시퀀스
글 입력 2023.09.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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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cne2023 포스터.jpg

 

 

9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서울 일대에서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 2023)이 개최된다. 서울에서 세계무용축제가 열린다는 것도, 주최 기관이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라는 것도 모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놀라웠다. 서울에서 산 지도 어느덧 수년인데, 아직도 내가 처음 만나는 행사가 있다니! 서울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더 넓고, 내가 알지 못하는 축제와 문화 행사들은 더 많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생동감 넘치는 도시. 매 순간 ‘약동(躍動)’하는 이곳이야말로 세계무용축제의 완벽한 개최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감독 와키 요시코의 안무에 한국인 무용수들이 출연한 독일무용단 ‘바디토크’의 [코리얼리티(Koreality)]는 서울과 참 잘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노래 선정과 안무에서 K-pop의 영향이 짙게 드러났고, 특정 시퀀스에서는 한국의 좀비 영화를 주목했다는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전 잠시 등장한 무용수들의 아리랑과 호응 유도가 흥을 돋워 나를 설레게 했다.

 

이 공연이 무엇보다 서울 같았던 것은, 감상 내내 서울의, 한국의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창작하고, 생산하고, 파괴하고, 몰락하는 젊음이 극 안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이토록 젊은 우악스러움이라니! 분명 굉장히 젊은 감독의 작품일 것이라 짐작하고 찾아본 감독의 나이는 59세였다. 무려 1965년생인 감독의 손에서 이렇게나 생생한 젊음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발할라와 전통문화



공연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속 한 곡으로 시작한다.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열창하던 무용수가 목이 잠긴 듯 캑캑거린다. 이내 반주자가 ‘워터!’라고 외치자 다른 무용수가 등장해 물을 건네는 듯하다가… 가창자를 사냥한다. 순식간에 여러 무용수에게 둘러싸인 가창자는 이리저리 저항하지만, 이내 돼지 가면을 쓴 채로 수레에 담기고 만다. 사냥의 성공에 기뻐하며, 무용수들은 돼지 가면의 목을 자른다.

 

무언가의 시작에 돼지머리를 잡는 것은 한국에서 굉장히 흔한 일이다. 영화 촬영의 첫날, 건물의 시공 첫날 등등 우리는 주로 큰일의 시작 직전에 돼지머리를 올린 제사상을 차린다. 감독이 이것을 알고 연출한 것일까? 알고 한 것이든 모르고 한 것이든, 이 공연이 굉장히 한국적인 공연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한순간에 자라난 기대감은 직후, 분위기가 바뀌고 빅뱅의 ‘뱅뱅뱅’이 나올 때 곧바로 충족됐다. 마치 노래방에 온 것처럼,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익숙하고도 흥겨웠다. ‘너와 나 이곳은 발할라’라는 가사가 나올 때는 앞선 ‘니벨룽겐의 반지’가 생각나 웃음을 참기 어렵기도 했다. ‘발할라’라는 단어로 연결되는 특성 때문에 일부러 두 곡을 고른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남긴 채로 남은 공연을 즐겼다.

 

 

돼지가면.JPG

 

 

공연이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두 노래의 선정이 게르만 신화와 한국 문화를 연결 지은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그너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는 독일이 ‘민족국가’를 표방하며 민족성 고취와 단결을 위해 등한시해온 게르만 문화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주입하던 때다. 당시 독일의 모든 교육은 게르만 신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국민이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히틀러 또한 게르만 신화 속 ‘오딘’과 자신을 등치 하는 식으로 통치를 이어왔다는 해석이 존재하니, 문화를 이용한 민족성 고취가 상당히 큰 효과의 정책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민족국가’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한국의 전통문화에 생각이 닿았다. 한국의 경우 독일의 옛 신화 발굴과는 달리 판소리, 탈춤 등의 조선 후기 문화와 사물놀이, 부채춤처럼 창작되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전통예술을 위주로 문화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또한 강력한 단결 효과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짧은 기간의 문화를 대상으로 진행한 탓에 우리가 ‘전통문화’를 너무 얕은 범위로만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쉽기도 하다.

 

작품에서도 이러한 얕은 문화 홍보를 느낄 수 있었다. 작중 등장한 ‘전통문화’들은 민요, 부채춤, 탈춤 등등 대부분 조선 후기 혹은 근현대의 문화였다. [코리얼리티]가 어디까지나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퍽 아쉬운 깊이가 아닐 수 없다.

 

 

부채춤.JPG

 

 

 

화려하게 스러지는 젊음



‘강자의 압박과 약자의 저항에 대한 줄거리에 맞춰 춤으로 재해석했다.’라는 공연 소개글이 있었지만, 그다지 잘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느낀 것은 ‘반항기 가득하지만 몸부림칠 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청춘’이었다. 요 몇 년 사이의 한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인상이어서일까? 소개 글과 내 감상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지인과 감상을 나눌 때 뭉뚱그려 ‘클럽 장면’으로 불렀던 장면이 있다.

 

점멸하는 조명 아래에서 무용수들이 자기 몸을 사정없이 꺾는다.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좇듯 하늘을 향해 손짓하다가도 픽 쓰러진다. 쓰러진 이에게 다가가 억지로 CPR을 한다. 크고 무겁게 울리던 음악은 마침내 모든 무용수가 쓰러지는 순간 조명과 함께 사라진다. 이내 문이 열리며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알람이 울린다. 아침이다.

 

앞서 묘사한 ‘뱅뱅뱅’부터 서술하지 않은 ‘백만 송이 장미’에 이어 등장한 ‘클럽 장면’은 한국의 대중문화와 유흥 문화를 여러 시대, 각도로 보여주는 듯했다. 무언가를 해소하려, 억누르는 무언가에 저항하려 몸부림치지만, 이들은 결국 쓰러진다. 계속해서 일어나도, 이내 곧 쓰러진다. 꽉 막힌 감정을 힘껏 배설하려는 듯한 동작의 연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우리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감상 이전에 창작자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분명 나의 세대에 속한 한국인이 [코리얼리티]의 창작자일 것으로 생각한 채 감탄하며 공연장을 나섰을 것이다. 그 정도로 작품은 지금 한국 사회, 특히 청년층 사이에 퍼진 절망과 과시성 향락을, 어딘가 포악해진 우리의 사회를 날카롭게 집어냈다.

 

 

하늘 손 뻗기.jpg

 

 

 

억척과 우악의 사이


 

공연을 보는 내내 ‘우악스럽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 시간이라는 공연 시간 안에 수 개의 장면들을 욱여넣어 매 순서에서 폭발하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우악스러움이 굉장히 한국적이었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억척에서 우악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태도가 투박하더라도 끈덕지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이전의 한국과는 달리, 지금은 포악한 태도만이 남고 무지가 끈기의 빈자리를 채운 느낌이다. 더 이상 한국은 악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선을 바보 취급한다. 모두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기 바쁜 사회 속에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으로 어딘가로 걸어가고만 있다.

 

그래서 [코리얼리티]가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무용수들의 행동에는 방향이 없거나 너무 많다. 한데 모였다가도 금세 흩어지고,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같다가도 제각기 알아서 길을 나선다. 산발적으로 움직이는 사회. 모두가 동시에 다른 곳을 향하는, 우악이 약동하는 나라. 독일무용단 바디토크는 ‘바로 지금의 한국’을 보여주고 있었다.

 

 

만인을 향한 전투.JPG

    

    

한국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코리얼리티]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한국보다는 서울, 서울보다는 서울의 청년층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했다고 느꼈지만, 주체할 줄 모르고 억척스레 움직였던 시기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모두가 흥겹게 즐길 공연이라고 믿는다. 나는 ‘코리얼리티’를 통해 방향을 모른 채 달리는 우리나라의 일면을 보았다. 여러분이 ‘코리얼리티’에서 발견할 한국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공연이 끝나고 한 시간은 내리 감상을 말하게 될 것이다.

 

 


[컬쳐리스트] 박주은.jpg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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