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집이 담고 있는 것 [사람]

글 입력 2023.09.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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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사를 가보지 않았다.

 

다들 이사를 가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 놀라곤 하는데 사실 더 놀라운 건 아빠도 이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은 아빠가 쓰시던 방이었고, 지금 아빠가 쓰고 계시는 방은 고모의 방이었다고 한다. 아빠의 나이로만 대충 계산해 보아도 50년도 더 된 것이다.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인데 마당에 있는 집에 산다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잔디가 있는 넓은 집을 생각하는데 그런 집은 아니다. 부지런하신 할머니 덕분에 봄, 여름이면 꽃이 피기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어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을 열쇠로 열어야 하는 오래된 집일뿐이다.


어렸을 때 나는 우리 집을 좋아했다. 마당이 있는 것도, 넓지는 않지만 아늑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리고 아래층이 없어 집을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 집을 놀러 다니다 보니 오래된 우리 집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주로 빌라나 아파트에 살았는데 친구들이 열쇠 대신에 공동 현관부터 집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띡띡띡띡-'누르는 모습을 동경하고 있었고,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베이지색 문, 욕조가 있는 화장실, 문지방 없이 매끄럽게 이어져 있는 바닥 등 모든 것이 더 멋있어 보였다. 아파트 단지마다 놀이터가 있는 것도, 단지 내에 편의점, 슈퍼, 학원들이 모여있는 것도 부러웠다. 단지 앞 놀이터 벤치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오면 고민도 전부 해결될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때 짝꿍이 "너 무슨 아파트 살아?"라고 물었다. "나는 단독주택 살아."라고 답했다. 짝꿍이 놀라면서 "단독주택? 너희 집 진짜 부자구나. 어느 동네 사는데?" "나 **동에 살아." 짝꿍의 표정이 변했다. 나는 대화 전까지 집이 가지는 계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이후로는 버스를 탈 때마다 높고, 빛나는 아파트를 한참 구경했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이 질서를 지켜 나란히 서 있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특별해 보였다. 똑같은 집일뿐인데 그들의 집에는 브랜드가 있고, 우리집에는 브랜드가 없었다. 

 

최근에 우리 동네도 재개발을 시작했다. 단독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골목에는 어느새 단독 주택을 허물고 빌라가 다섯 채나 들어섰다. 골목 밖 옹기종기 모여있던 단독 주택들은 벌써 허물어졌고, 단지형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분명 빽빽하게 모여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는데 이름 지었던 집들이 없어지는 것을 보니 허우룩한 마음이 든다.

 

몇 개월이 지나면 곧 우리 집 앞에도 단지형 아파트가 생길 것이다. 버스로 지나가던 동네에도 OO 아파트 101동 1101호가, 이제 우리 동네에도 OO 아파트 101동 1101호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다가왔다. 

 

우리 집은 브랜드와 호수 대신에 이웃집들을 감나무 집, 큰 대문집, 파란 대문 집으로 부르곤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나오는 것들로 집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하나의 이름과 단순한 숫자에 편입되지 않는 집이어서 좋았다.

 

나는 더 이상 아파트에 사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점점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것들 속에서 꿋꿋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가고 있는 우리 집을 사랑한다.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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