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유냐 존재냐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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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험을 보는 학문에 관해서는 공부하고 때로는 강의를 수강한다. 또, 오답이 있으면 여러 번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 사랑, 꿈과 같은 인생에 관해서는 대체로 깊게 공부하지 않는다. 물론, 경험하고 고민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반추하고 탐구하는 사람은 적다. 연애하는 사람은 많지만, 과연 사랑 자체에 관해 공부하거나 깊은 성찰을 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인생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책은 좋은 역할을 한다. 본질에 관한 석학들의 깊은 성찰은 삶의 방향성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철학책을 찾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학문적인 공부를 떠난 본질적 탐구와 사색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소유냐 존재냐>는 앞과 같은 이유에서 아주 적합한 책이었다. 단편적으로 접한 에리히 프롬의 지식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입문서로 적절하다는 서평을 보고 책을 구매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워 적잖이 당황했다.
저자는 많은 철학자를 인용하는데, 그 철학자들의 시대적 배경도 넓고 수도 상당했다. 소피스트부터 17~18세기 철학자까지. 더불어, 프로이트, 마르크스나 불교의 사성제도 등장한다. 단편적인 지식만 있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철학사나 각각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다면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에리히 프롬이 주창하는 ‘존재적 양식’과 그가 비판하는 ‘소유적 실존양식’에 대한 사유가 담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현대 문명의 잘못된 사고체계이고 존재적 실존양식은 소외되지 않은 충만하고 생동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산업 체계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사상을 지니게 된다. 극단적 쾌락주의, 무제한적 이기주의는 경제를 주도하고 인간은 소비와 소유를 구분하지 못하며 자신의 존재를 소유로 설명하려 한다. “사람들은 경제체계의 성장에 유리한 것은 인간의 행복도 촉진시키는 것이라는 명제를 내세워서 그 첨예한 모순을 얼버무리려고 했다.”라는 책의 구절은, 작금의 수동적 삶과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긋난 인간성과 상통한다.
이와 대조적인 ‘존재적 실존양식’은 독자성, 자유, 비판적 이성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소유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존재에 의해서 규정된 인간은 참 자아에 이르게 되며 (…) 다른 내면의 능동성을 전개한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적 실존양식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대략 소개했지만, 책에서는 훨씬 자세하고 심층적으로 두 가지의 실존양식에 관해 서술한다. 이러한 실존 양식이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다양한 예시와 인용을 통해 설명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태도와 인류가 진보해야 할 세계에 관한 사유도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많은 부분에서 소유적 실존양식으로 살고 있었다. 해당 책을 읽는 과정에서, ‘소유’와 ‘존재’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고 인생의 철학에 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체험이 표면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내면에서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체험이란 일단 사상과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체험을 명확히 언어로 적는 과정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술했던 인생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소유냐 존재냐>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확신할 수 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나, 인간성에 관한 고찰의 기저를 마련하고 싶으면 해당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김민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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