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타임머신이자 순간이동 장치 [음악]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
글 입력 2023.09.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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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노래 가사를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여름에는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음악으로 시원하게, EDM 장르의 음악으로 신나게 보낸다. 연말에는 캐럴을 듣고 ‘벚꽃엔딩’의 차트 순위 상승을 보며 돌아온 봄을 체감한다. 이처럼 우리는 음악 속에서 시간을 찾는다. 음악은 일정 온도와 습도를 가진 채 특별한 기억을 건드린다. 그도 아니면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겪는 듯 생생하게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간접 경험의 매개체다. 특정 노래를 들으면 특별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음악은 타임머신이자 순간이동 장치다.

 

 

 

01.

Seattle Alone

볼빨간사춘기


 

안지영의 목소리는 많은 이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만큼 볼빨간사춘기의 음악은 매력적이고 선명하다. 그는 듣는 이를 단박에 몰입시키는 이야기꾼과도 같다. 가보지 않은 곳을 간 것처럼, 겪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한 것처럼 만든다. 시애틀의 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면서 시애틀의 밤을 거닐게 된다. 추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기분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길 잃은 그리움이 만든 외로움이 들린다. ‘Seattle Alone’으로 보고 온 세상을 이야기해주고자 한다.


그때 꿈만 같았던 그 도시에서 나 / 어쩌면 난 널 잊어버려야 할지도 몰라

기타 리프를 따라 뿌연 안개가 걷히고 시애틀의 밤에 도착한다. 비트와 안지영의 보컬이 등장하면서 마치 꿈을 꾸듯 몽환적인 세상이 펼쳐진다. 누군가를 잃은 듯 공허하고 어쩌면 잊어버려야 할지도 모를 만큼 그립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직 반짝이는 등불만이 곁을 지킨다.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너’는 없다.


아무도 없던 그 거리에서 노랠 부르고

너의 빈 자리를 우리의 모습이 채운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모습이 선연하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와 마주 잡았던 그 손은 사라졌다. 당장 너를 그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이 도시에 홀로 남았다.


사무치게 그리워한 ‘너’는 누구일까, 무엇일까. 나조차도 알 수 없다. ‘Seattle Alone’이 데려간 세상에서 나는 애달픈 그리움을 직면해야 했다. ‘너’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가 주어진 듯했다. 3분 35초간 시애틀의 밤을 헤매고 추억을 더듬으며 그리워한다. 기타 리프가 깔리는 반주를 들으며 짧지만 강렬한 세상에서 빠져나온다.


‘Seattle Alone’이 선사한 환상이다. 격한 감정의 요동을 느낀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딱딱하고 칙칙하게 죽어있던 삶이 활기를 되찾는 것이 느껴진다. 금세 가라앉고 마는 무거운 삶에 날개가 달린다. 공허하고 외로우며 그리운 감정을 느끼고 돌아왔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남을 때가 종종 있다. 한 인간이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Seattle Alone’이 선물한 시간이다.

 

 

 

02.

LETTER

유다빈밴드


 

유다빈밴드를 알게 된 계기였던 만큼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노래다. 유다빈의 파워풀한 보컬이 심금을 울리는 힘과 직결된다는 것이 드러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빛나는 날을 허락해달라는 말이, 시들지 않는 사랑을 달라는 말이 그저 노래하는 이로서의 염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노랫말 사이에서 언뜻 파도 소리가 들린다. 철저히 혼자임을 깨닫는 시간이 들려온다. 내가 본 ‘LETTER’의 세상이다.


빛나는 날을 허락해 주세요 / 시들지 않는 사랑을 주세요

/ 소리 없는 말을 해주세요 / 날 미친 사람이래도 좋아요

작은 숨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노래. 전주는 없다. 유다빈의 목소리와 기타 반주가 함께 흘러나오며 소리 없는 말을 해달라 청한다. 이내 모든 악기 소리와 함께 날 미친 사람이라 해도 좋다고 말한다. 마치 온 힘을 다해 내뱉는 진심과 같다.


해변을 거닐면 이따금 생각에 잠긴다. 떠밀려 오는 생각에 속절없이 고요해진다. 나의 불가항력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모래에 두 발 묻고 선 그 자리는 고독하고 고요하다. 말소리는 멀어지고 찰박이는 파도 소리만이 남는다. 빈자리는 걱정과 불안이 꿰찬다. 세상에 혼자 남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멀거니 바다만 바라볼 뿐이다. ‘LETTER’의 선율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빛과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LETTER’가 나의 마음을 대변한다. 홀로 남기 싫은 마음에 사무치기 전에 무너질 용기를 준다. 강렬한 일렉 기타 소리가 드럼과 함께 타고 흘러와 심장을 때린다. 그들이 전하는 ‘의지’가 나의 용기가 된다. 걱정과 불안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는다.


난 멈출 수 없이 노래해요 / 바보 같은 사람이래도 좋아요

‘LETTER’는 이러한 노래다. 노래를 재생하는 순간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으로 데려다 놓아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바다에 모든 걸 털어놓고 돌아설 수 있는 위로를 건넨다. 멈출 수 없이 노래하는 유다빈밴드처럼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으니 좋아하는 것을 이어 가보겠다.


 

 

03.

시간과 흔적

하현상


 

4월에 발매된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따뜻함을 지닌 하현상의 보컬에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앨범 표지의 영향인지 겨울에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여름밤에 어울리는 곡이라고 주장했다. 봄에 발매된 노래를 여름과 겨울 사이에서 줄다리기했다. 겨울 노래라는 의견에 힘을 보탬과 함께 겨울로 데려가 주었던 ‘시간과 흔적’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타 소리로 시작한 노래는 강한 드럼으로 본격적인 이야기의 서막을 알린다. 선율이 전체적으로 차갑다. 입김이 나는 시린 겨울이 된다.


아직 바래지지 않은 하늘이 거긴 어떤지 / 가끔 길을 걷다 문득 생각해 / 나 어디로 가는지

삶은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흘러가는데 / 여기 주저앉은 나의 모습을 왜 그대로인지

스미는 추위를 막아보겠다고 목도리까지 하며 꽁꽁 싸맨 어느 겨울날의 하늘을 바라본다. 길거리에 우뚝 선 모습이 이상해 보일 걸 알지만 움직일 수 없다. 모두가 변하는 삶에서 홀로 변하지 않는 것은 버겁다. 시간만 흐를 뿐 과거의 흔적은 여전히 나를 붙잡는다. 지나온 과거가 좋아서, 아파서, 저마다의 이유로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흔적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간 대로 여기 두고서 / 돌아오는 계절을 기다려볼게요

시린 선율과 아픈 가사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절정에 달한다. 잘 꿰매어 정리해두었다고 생각한 흔적에 하나둘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손 닿을 수 없는 흔적이라도 / 지나간 대로 견뎌 내야겠죠

강하게 등장하는 드럼 소리가 금이 간 흔적을 깨부순다. 마음의 방벽이 무너지고 틈 사이로 ‘시간과 흔적’이 흘러든다. 하현상의 따뜻함이 스민다. 얼어버린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뜨겁다.


나 이제 나아져볼게요 / 지나간 대로 견뎌내볼게요

‘시간과 흔적’이 겨울에 잘 어울리는 노래인 이유다. 곧 추위가 누그러들 시간만 남은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지난 상처를 정리한다. 그리고 돌아올 시간을 기다린다. 곧이어 맞이할 따뜻함을 위해 추운 겨울을 지나가고자 한다. ‘시간과 흔적’이 데려다준 겨울에서 따뜻함을 받았다. 얼어붙은 손을 녹이는 하얀 입김처럼 새하얀 따뜻함을 전해준다. 나는 이제 나아질 것이다.


*


삶의 활기를 되찾게 하는, 쓸쓸함을 털어내도록 하는, 따뜻함을 전해주는 것이 음악이다. 시공간을 쉽게 바꾸면서 청자를 위로한다. 유용한 타임머신이자 순간이동 장치다. 초월적인 기계를 사용한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기계는 매 순간 빈손으로 돌아오게 두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여행 이야기도 듣고 싶다. 어떤 노래를 듣고 어디를 어떻게 여행하고 돌아왔는가. 그 노래가 어떤 시간을 선물했는지, 그 시간이 무엇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음악이 데려다주는 세상을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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