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위험에 배팅하시겠습니까? - 빅 쇼트 [영화]

건조하고 서늘하게 사실을 마주하기
글 입력 2023.09.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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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는 순간 큰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사실을 기회로 삼아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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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 쇼트'는 월스트리트의 붕괴로 시작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미리' 알았던 몇 명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튼튼하고 견고하다는 주택시장이 거품임을 알아보고, 그 시장이 하락할 것이라는 데 배팅(쇼트)한다. 사상 가장 큰 쇼트, 정말 빅 쇼트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제4의 벽(관객과 배우 사이 가상의 벽)을 깨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생소하고 어려운 경제 용어를 갑자기 등장한 유명 카메오의 입으로 직접 설명해 준다거나, 극중 인물이 갑자기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 기법을 통해 어렵고 복잡하기만 할 수 있는 경제적 개념들은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그리고 관객들에게 녹아든다.


관객들이 가장 장벽으로 느끼기 쉬운 경제 용어라는 허들을 재기발랄하게 넘어간 이 영화의 이면은 사뭇 서늘하다. 사실을 가감 없이 얘기하지만, 그것은 자극적이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건조한 시선이어서, 그 사실에 대해 분노보다도 허탈함이 몰려온다. 이랬다고? 이렇게 어이없게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방조했다고? 


그렇게 허탈함이 느껴진 뒤에는, 아직 붉어지지 않은 맑은 눈으로 냉정하게 그 사실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경제위기로부터 고작 8년이 지났을 뿐인, 채 10년도 되지 않아 나타난 2016년의 영화라기에는 다소 놀라우리만큼 객관적으로, 자극적인 신 없이 그 시기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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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이처럼 객관적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등장인물에 '이입'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는 부분이 있어서다. 주요 등장인물인 '버리' 박사, '마크 바움', '자레드', '제이미'와 '찰리'는 모두 이 시스템의 잘못된 부분을 알아채고 그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차지하게 된 사람들이다.


특히 '마크 바움'과 '제이미', '찰리'는 형편없는 시스템에 분노하고, 온통 사기꾼들뿐인 세상에 욕을 퍼붓는다. 하지만 '제이미'와 '찰리'는 이 시스템의 모순이 생각보다 깊게 뿌리내려 있으며, 이걸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오는 길에 춤을 추듯이 기뻐한다. 그걸 본 그들의 조력자 '벤'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옳으면 사람들은 집을 잃고, 직장도 잃고, 은퇴 자금도 잃어. 연금도 잃는다고. 난 은행권이 사람을 숫자로만 봐서 혐오해. 실업률이 1% 증가하면 4만 명이 죽는다는 거 알아? 춤은 집어치우라고." 


그 모습을 보며 관객은 잠깐 '멈춘다'. 자연스럽게 주연 등장인물에 이입하던 관객들은 그들이 돈을 벌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이들이 돈을 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위기가 닥쳐온다는 뜻이다. 단순히 거래소에서 찍히는 숫자로만 환산될 수 있는 부분은 절대로 아니다.  


또 다른 주연인 '마크 바움'이 이렇게 엉망인 주택시장에서도 관련 금융상품에 대해 계속해서 높은 등급을 주는 신용평가사를 비난할 때, 신용평가사의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여러분은 뭘 바라고 이러는 거죠? 등급을 조정하는 게 여러분에게 득이 되나요? 신용부도스와프를 얼마나 매입하셨죠?" 

"내 말 안 틀렸어요. (It doesn't make me wrong)"

"그렇죠. 하지만 위선자가 되죠."


등장인물들을 당연하게 '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선에 또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들의 분노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른 이들의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번다. 그렇다면 이들의 분노하는 모습 자체가 위선은 아닌가? 


'마크 바움'은 마지막까지 주저한다. 이렇게 돈을 벌면, 나도 내가 분노하고 비난한 대상과 똑같아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Yes'였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질문을 남기는데, 이 영화가 남긴 질문은 이것이었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기회를 잡아 돈을 번 이들은 정말로 수많은 방조자와 똑같은 사람인가?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을 꼽아보자면 fraud(사기)와 crook(사기꾼)이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수많은 위험 요소를 방조한 정부, 은행, 금융업계들이 '사기꾼'이라고 비난당한다. 그리고 '사기'의 사전상 의미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이다. 


그렇다면 '마크 바움'은, '제이미'와 '찰리'는 똑같이 '사기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의 행위가 정말로 남을 속인 것인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답은 'No'지만, 왜 나는 이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만약 그게 나였다면, 그 기회를 놓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No, 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내 찜찜한 기분의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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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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