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절기를 살아가는 이 아무개 [사람]
글 입력 2023.09.0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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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는 점잖다가도 호들갑스럽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 쏟아졌으니 이제는 차분하게 내려앉는 가을 날씨가 오면 좋겠지만 또 더워질 것만 같다.그래도 모자 하나만 무심하게 걸쳐 쓰고서 길을 나서는 사람도, 우산이 꼭 있어야만 집 밖을 나서는 사람도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걷기 좋은 날씨 아닌가. 날이 맑았다가 흐렸다가 종잡을 수 없어도 바람은 언제나 선선하게 불어오기에.머리 위로 띄운 물음표, 제멋대로 불쑥 내렸다가 사라지는 소나기와 조금씩 서늘해지는 아침 공기가 공존하는 이상한 계절감. 그래서 어떤 이는 늦여름을, 또 다른 이는 초가을을 살아간다.저마다 살아가는 계절이 다르다 보니 사람들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른하게 누워 있다가 가을의 짙고 깊은 초록으로 숨 가쁘게 뛰어가는 일도 종종 생기는데, 나는 더운 공기를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뱉고 싶다.감색 셔츠를 꺼내입을 날씨가 되었을 때 그리운 사람들이 서 있는 계절로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이내 찾아올 계절을 눈에 담으러.*
이 글을 허겁지겁 쓰는 사람은 휴학생 이 아무개다.곧 재학생이 될 예정으로, 두 번의 휴학을 시도하며 시곗바늘을 돌리듯 현실의 계절과 제 삶을 포개놓았다. 크고 작은 생각에 짓눌리면서도 일을 벌였다가 수습하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튀는 공처럼 직접 부딪히는 시간을 보냈다.이 아무개, 그러니까 내가 바랐던 것은 대단하지 않은 글이었다. 그저 단락과 단락 사이를 오가며 타인의 삶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것. 대학 생활 3년 반을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가 조급함과 자존심을 덜어내고, 내면 밑바닥을 전부 헤집고 나서야 내가 글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휴학 도중에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끔찍했으니 더 이상 글쓰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내 몸을 이루던 모든 문장과 표현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불안이 나를 태워버리는 것이 싫었다.그래서 글을 쓰겠다고 달려든 걸지도 모르겠다. 소망에서 욕망 사이, 빨강만을 남긴 시점에 내 계절은 이미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매 순간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온전한 빨강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계절의 틈새에서 산란한 고민이 잠깐 모였다가 흩어진다.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는 환절기는 늘 소란한 정류장이다. 같은 시점을 살아가도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기에 가는 방향도 다르지 않나.오늘도 누군가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그의 친구 아무개는 여름에 오래도록 머물다 초가을로 향한다.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도,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도 예외는 없다.
[이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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