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점잖다가도 호들갑스럽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 쏟아졌으니 이제는 차분하게 내려앉는 가을 날씨가 오면 좋겠지만 또 더워질 것만 같다.
그래도 모자 하나만 무심하게 걸쳐 쓰고서 길을 나서는 사람도, 우산이 꼭 있어야만 집 밖을 나서는 사람도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걷기 좋은 날씨 아닌가. 날이 맑았다가 흐렸다가 종잡을 수 없어도 바람은 언제나 선선하게 불어오기에.
머리 위로 띄운 물음표, 제멋대로 불쑥 내렸다가 사라지는 소나기와 조금씩 서늘해지는 아침 공기가 공존하는 이상한 계절감. 그래서 어떤 이는 늦여름을, 또 다른 이는 초가을을 살아간다.
저마다 살아가는 계절이 다르다 보니 사람들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른하게 누워 있다가 가을의 짙고 깊은 초록으로 숨 가쁘게 뛰어가는 일도 종종 생기는데, 나는 더운 공기를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뱉고 싶다.
감색 셔츠를 꺼내입을 날씨가 되었을 때 그리운 사람들이 서 있는 계절로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이내 찾아올 계절을 눈에 담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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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허겁지겁 쓰는 사람은 휴학생 이 아무개다.
곧 재학생이 될 예정으로, 두 번의 휴학을 시도하며 시곗바늘을 돌리듯 현실의 계절과 제 삶을 포개놓았다. 크고 작은 생각에 짓눌리면서도 일을 벌였다가 수습하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튀는 공처럼 직접 부딪히는 시간을 보냈다.
이 아무개, 그러니까 내가 바랐던 것은 대단하지 않은 글이었다. 그저 단락과 단락 사이를 오가며 타인의 삶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것. 대학 생활 3년 반을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가 조급함과 자존심을 덜어내고, 내면 밑바닥을 전부 헤집고 나서야 내가 글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휴학 도중에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끔찍했으니 더 이상 글쓰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내 몸을 이루던 모든 문장과 표현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불안이 나를 태워버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글을 쓰겠다고 달려든 걸지도 모르겠다. 소망에서 욕망 사이, 빨강만을 남긴 시점에 내 계절은 이미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매 순간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온전한 빨강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계절의 틈새에서 산란한 고민이 잠깐 모였다가 흩어진다.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는 환절기는 늘 소란한 정류장이다. 같은 시점을 살아가도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기에 가는 방향도 다르지 않나.
오늘도 누군가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그의 친구 아무개는 여름에 오래도록 머물다 초가을로 향한다.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도,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도 예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