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바랐던 삶이 즐겁지 않을 때

글 입력 2023.11.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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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던 삶.jpg

 

 

요즘 나는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 그건 바로 퇴사자의 삶! 아침에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두어시간쯤 더 자고 일어나거나 아예 전날 알람을 꺼두기도 한다. 하루 종일 울리던 업무연락은 이제는 나와 먼 이야기가 되어 신경쓸 것이 없다.


나는 느즈막히 일어나 중요한 연락 없이 광고만 쌓여있는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고, 따뜻한 정오의 햇살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을 내린다. 간단한 간식을 챙겨서 소파에 누워 유튜브와 그 날 올라온 웹툰을 확인하다 배가 고파지면 배달어플에서 먹고싶은 음식을 하나 골라 시킨다.

 

배가 꺼지면 헬스장에 가지만 시간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 날 내 컨디션이 허락하는 만큼의 무게를 들고 땀을 흘리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집에 와서 샤워를 한다. 그러고나면 또 금방 저녁시간이 돌아와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거나 직접 요리를 해 끼니를 챙겨먹는다.


어둑해지며 해가 저편으로 넘어갈 때쯤에는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가 색이 변하는 하늘을 지켜본다. 걷고 나서 함께 먹어줄 사람이 있는 날에는 먹고싶은 디저트를 골라 직접 반죽해 오븐에 넣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스터디카페로 곧장 간다.


1층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신상을 구경하다 600원짜리 초코바를 하나 사먹고 한두시간 책을 읽다가 돌아온다. 답답한 마음이 들면 근처 공원을 가볍게 뛰며 이름모를 풀과 고인돌과 조명을 바라보고, 씻고나선 잠옷으로 갈아입고 위스키 한 잔에 영화를 곁들인다.


그렇게 나태하고 느슨하게 살아간다. 분명 내가 바랐던 삶이다. 오래오래 생각했던 삶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휴학 한 번 하지 않았고, 방학마다 알바나 장교후보생 신분으로 훈련을 받으러 다녔으니까. 게다가 졸업하자마자 임관해서 2년반을 묶여있었으니 이건 성인이 된 이후 나의 공식적인 첫 휴식기다.


근데 왜 이렇게 행복하지가 않지. 즐겁지가 않고 무기력하지. 이상한 일이다. 괜한 불안함에 갖고 싶었던 자격증을 여러개 따러 다녔지만 얼마 들어있지 않은 통장잔고만 비어가고 마음은 잘 채워지지 않는다. 자격증 몇 개가 결코 내 삶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최근에 고른 책은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이 세권이다. 의식하고 고른 것은 아닌데 제목들이 다 이런식이다. 책에는 지금 마음의 정답이 있을까.

 


당신이 무기력한 이유는 ‘남이 바라는 나’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질병을 권태,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풍요롭지만 아무 기쁨도 없는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느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느낌이라 부른다.


p.28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


의식하건 안 하건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p.83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자발적 활동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개인은 더 이상 고립된 원자가 아니다. 그와 세상은 질서정연한 전체의 부분이 되고, 그는 세상에서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얻게 되며, 그럼으로써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도 사라질 것이다.


p.84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요즘 나는 진짜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나는 서울에서 밴드 공연도 해봤고, 커피와 제과제빵 자격증도 땄고, 트레이너 자격증도 공부하고, 전공분야였던 기획-마케팅과 요즘 유망하다는 데이터분석 공부도 해봤으며 지인의 부탁으로 앨범 아트웍 작업도 해보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뭘까. 사실 전부 재밌고 즐겁지만 이게 취미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즐겁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공연하면서 만난 음악 전공생 친구들은 다양한 일을 하는 나를 보고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일찍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알고 시간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그 사람들이 훨씬 부럽고 좋아보였다.


내가 바라는 삶은 뭘까. 에리히 프롬은 책의 또 다른 장에서 우리가 ‘자발적’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떤 것이 사실은 사회와 현실에 의해 주입된 것일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부지런한 행동과 의도적 노력은 그저 싶은 무력감에 빠진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우산에 불과하다”(156페이지)고 적기도 했다.


어떤 노력은 자신의 자발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것,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고 그에 대한 부지런함은 그러한 사실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별 생각없이 쉬기도 하고 바쁘게 이것저것 하기도 하지만 정작 이게 내가 정말 원했던 삶인가 의심이 드는.

 

그럼 책에서는 이런 진단에 어떤 결론을 내릴까. 에리히 프롬은 다름 아닌 ‘용기’에 대해서 말한다. “인간은 안전을 의미하는 과거 상태의 포기를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힘을 더 자유롭게, 더 완전히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상태에 도달하고자 한다. 모든 탄생의 행위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높아버릴 용기, 자궁을 포기하고 엄마의 가슴과 품을 떠나며 엄마의 손을 놓고 마침내 모든 안전을 버리고 단 하나. 즉 사물을 실제로 인식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자신의 힘만을 믿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202페이지)


사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각자에게 답이 있을 것이다. 누가 정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거니까. 바랐던 삶이 즐겁지 않게 느껴질 때, 내가 원하는건 사실 이게 아니었다고 느껴질 때 다시 질문할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인가 하고. 용기를 내다보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찾을수도 있을까. 잘모르지만 나는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가 본다. 내가 바라는 삶을 찾아서.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p.48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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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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