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G는 파랑 - 음악은 사적인 경험이다 [도서]

글 입력 2023.11.0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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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예술은 개인적인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은 가사나 내용, 심지어 제목조차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에서 특히 개인적인 해석의 영역이 크다. 그만큼 열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더 어려워하는 듯하다. 작곡가와 시대 배경, 작곡 배경 등을 공부하고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G는 파랑의 저자이자 피아니스트 김지희는 곡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음악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음악을 청각적인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시각, 촉각, 후각도 상상하며 들어보기를 권한다.

 

“G는 파랑”이라는 제목에서 안내하듯, 절대 음감을 가진 사람들은 성조에서 특정 색깔을 느낀다고 한다. 나로서는 사실 알기 어려운 세계다. 클래식 음악 듣기를 아주 좋아하긴 하지만 실황 경험이 아닌 이상 청각이나 시각을 제외하고 나머지 감각으로 느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음악을 청각 이상의 감각으로 감상하는 것은 상상의 영역이라서 더욱 개인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G는 파랑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소개하는 책이다. 곡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음악을 들으며 떠올리는 풍경이나 색감, 촉감, 냄새를 사적으로, 또 시적으로 묘사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사려 깊고 따뜻한 저자의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나도 음악을 따라 듣고 싶어진다. 어떤 음악은 저자가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게 다가오기도, 어떤 음악은 내가 가진 인상과 사뭇 다르기도 하다. 음악은 이다지도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예술이다.

 

같은 곡에서 저자가 마주한 풍경과 내가 느낀 점들이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은지 몇 개의 곡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 파랑


 

G장조로 쓰인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G는 파랑’을 떠올리는 저자에게 파랑으로 물든 작품이라고 한다. 저자는 1악장에서 파도, 2악장에서 파랗지 않은 것들을 파랗게 기억하는 것들, 그리고 3악장에서 파란색 페인트 사탕을 연상한다.

 

특정 성조와 색깔을 연상하지 못하는 내게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어떤 색이라기 보단 생동하는 자연의 풍경을 닮았다. 묵직한 맥박 위에서 고동치는 자연처럼 변덕스러우면서도 파워풀한 1악장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몰아치는 파도 혹은 물이 범람하는 계곡을 연상하게 한다. 꿈 꾸듯 희미하게 아름답고 서글픈 2악장은 잔잔한 강 위에 빛나는 윤슬이 떠오른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1악장과 비슷한 느낌의 변덕과 맥박이 재등장한다. 다시금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고 주위의 푸르른 자연이 풍성하게 빛난다.

 

감각으로 상상해보자면 풀내움 가득한 향기가 떠오르고, 계곡물의 시원한 촉감이 느껴지는 곡이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 바람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몰아치는 피아노의 강렬하면서도 밝은 불협화음들이 시원시원하게 뻗어져나오는 매력적인 음악이다. 저자는 이 곡의 도입부에서 바람이 폭발하고 공기가 펀치를 날리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이 곡의 도입부는 마치 거대한 성문이 열리면서 빛나는 신세계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와 탄성, 찬양이 느껴진다. 경쾌발랄한 도입부를 지나면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기이하고 음산한 기운이 도사리는 부분이 나온다.

 

빛나기만 했던 신세계에 입성하고 마주하게 되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불안함이 한껏 고조된다. 그리고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좌충우돌을 묘사하듯 다소 변덕스럽게 전개되는 재미난 곡이다.

 

 

 

슈만 트로이메라이 - 아이와 어른의 노래


 

저자는 ‘어린이 정경’의 수록곡 중 하나인 ‘트로이메라이(꿈)’에는 아이와 어른의 노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단 점 때문에 연주가 무척 까다롭다고 말한다. ‘어린이 정경’은 어른이 회고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이의 천진한 꿈과 어른의 애틋한 꿈이 모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트로이메라이는 올해 피아노를 취미로 다시 시작하고 처음 완곡한 곡인 만큼 내게 각별한 곡이다. 다양한 피아니스트 버전으로 들어본 것은 물론이고 직접 곡을 쳐봤기 때문에 단순히 감상자를 넘어서 연주자로서 곡을 분석해보기도 했다.

  

실제로 이 곡은 테크닉적으로는 전혀 어렵지는 않지만 제대로 연주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반복되는 구간도 많기 때문에 매번 어떻게 다르게 노래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피아니스트들이 각자 어떻게 ‘꿈’을 해석하고 연주했는지 대략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호로비츠의 귀국 연주회에서의 ‘트로이메라이’는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그가 겪었던 회한과 슬픔의 감정과 더불어 고국에 대한 그의 애틋하면서도 초연한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

 

시중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교양서가 많지만, 대체로 작곡가의 삶이나 음악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G는 파랑은 음악 이론이나 역사를 모른 상태에서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서의 음악은 어떤 느낌인지 소개해 준다는 면에서 여타 음악 서적들과 사뭇 다른 결의 책이다.

 

각 챕터마다 내용이 길지 않은데, 개인적인 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고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아서 사적인 일기장을 읽는다는 느낌도 있다. 깊은 음악 감상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가벼운 책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음악 감상이 꼭 사색적이고 분석적일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음악이 그저 감상만으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지 색다른 방식으로 설득시킨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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