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스고파라갈, 기울어진 세계 속 우리가 해야 할 일 [공연]

글 입력 2023.08.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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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갈라파고스..스고파라갈?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버린 세계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알고 있던 사실이 사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자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았어도 존재해 왔던 것을 인지하게 되며 그것 또한 사실은 사라져 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사고는 전복되어 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없애고 생태계에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상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연극 <스고파라갈>은 이렇듯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인간의 잰 체를 ‘스고파라갈’의 형태로 뒤집어 은유한다. 하지만 직역해주지 않는 형식이기에, 원인과 결과가 정해진 듯 딱 떨어지는 결말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알아채기 어려운 메시지를 던지며 연극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얼핏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총소리, ‘그러고 보니’ 혹은 ‘알고 보니’ 등 반복되는 어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반대로 말하는 행위로 이루어진 연극. 시를 읽듯이 음미하고, 마음껏 나를 덧대어 상상하고, 해석해 보아야 한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항상 어디에서나 교훈을 쓰고 얻으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의 과오와 그로 인해 예측되는 미래를 막아내기 위해 교훈을 사용하는 것이다. <스고파라갈>은 이런 의미에서, 정석 같은 정답을 쓰고 알려주진 않지만 의문을 던진다. 의문을 곱씹다 보면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교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스고파라갈 식의 재치이다.

 

 

[국립극단]스고파라갈_홍보사진 07.jpg

 

 

 

기후 위기에 대비할 시간


 

극에서 던지는 핵심 주제는 '기후 위기'이다. 기후 위기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애써 보이지 않는 척한다. 그래, 실제로 ‘기후 위기’ 자체가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다. 해수면이 상승한다. 빙하가 녹고 수많은 동물이 지구에서 사라진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많은 난민이 생겨났고, 의식주에 심각한 악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폭풍, 해일, 지진, 폭염, 가뭄 등 재해는 빈번해진다.

 

우리는 누군가가 공포감을 억지로 심어주지 않아도 두려워해야 한다. 혹시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땅거북 다음이 인류가 되진 않을까? 땅거북은 '알고 보니' 앨버트로스였고, 용암갈매기, 용암 도마뱀, 치와와, 반달가슴곰... 이었다. 그러니 사실 그들은 사람일 수도 있다. ‘언젠가 사라질 존재’라는 선상에서 우리는 모두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보고도 못 본 척, 눈 가리고 아웅 하다 보면 턱 끝까지 차오른 위협에 대비할 틈도 없이 무언가에 덮쳐지고 말 것이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7.jpg

 

 

 

허물어진 경계


 

이렇게 모든 종들 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어제까지는 다 가졌던, 다 알았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인류 또한 오늘날 오직 생존만을 위해 노력해가는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같은 버둥거림으로 보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스고파라갈의 배우들은 연극의 순간, 사람 같기도 땅거북 같기도 하다. 느릿느릿 걸어오는 모습, 바닥에 웅크리는 모습, 바다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땅거북을 보면서도 스고파라갈을 떠나지 못하는 배우들은 그들조차도 자신이 땅거북이 아닐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장면마다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오직 총성으로 구분되는 매 장면은 결국 어떤 종이든 동일선상에서, 생존의 경쟁 한복판에 놓여 있는 우리를 매 순간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장면마다의 경계, 물체들의 경계가 허물어진 만큼 관객과의 거리도 좁히고자 하였다. 스고파라갈의 공연장은 관객들이 무대를 동그랗게 돌아서 앉는 형태로, 기존의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 간의 느낌을 최대한 배제했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21.jpg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좁혀진 공간에서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연상되기도 하는 아레나 무대는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를 접목하기도 한다. 느리게 걸어들어온 공연의 시작만큼이나 명확하지 않았던 공연의 후반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에게 전적으로 결말을 맡긴다. 우리는 기후 위기 해결의 주체여야만 하기에, 공연의 막바지에서 아직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관객을 위해서 이 공연에 좋은 평가를 해주면 기후 위기와 관련된 작품들이 늘어날 것이라 첨언하기도 한다.

 

한편 직접적인 자본주의의 단상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관객들에게 선물을 줄 테니 좋은 평가를 써달라고 하는가 하면 한 줄 평으로 관객들을 경쟁시켜 5만 원을 건네주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한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요구와 직접적인 증정에 놀라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자본주의란 원래 이런 것이었지 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반비례 곡선을 그리는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두 요소의 발전 양상이 적어도 평행 상태에서, 함께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날까지 우리는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국립극단]스고파라갈_홍보사진 01.jpg

 

 

 

창작에서의 에코 프렌들리


 

스고파라갈의 무대 디자이너 조경훈은 무대 바닥으로 49장의 목재 바닥이 소비된다고 말했다. 기후 위기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대는 가장 많은 쓰레기를 남기기에 그는 어떤 방식으로 재생산이 가능한 무대를 만들까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이 모든 것이 관객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면 알 수 있는 일종의 굿즈를 제작했다.

 

전체 프로덕션 단위의 노력으로는, 비건 음식과 식당을 추천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비건식 식사를 했으며, 엘리베이터 사용보다는 계단으로, 개인 차량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등 크고 작은 노력을 기울였다. 홍보할 때도 공연장에서 항상 입구에 비치된 리플렛의 경우 이번 공연에서는 환경을 위해 50부만 제작하여 두었으며 이 또한 친환경 재생 용지를 이용하였다고 홍보 사진 촬영 시 배우 개인 의상을 활용하고, 보유했던 배경지를 재사용하는 등 섬세하고도 풍성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출했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10.jpg

 

 

 

그래도 결말은 우리의 몫


 

우리는 수많은 종에게 위해를 가하며 살아남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지난 수백 년간 보호보다는 착취했으며, 잡아들이고 먹어 치워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자연 선택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멸종과 생이 아니라, 인간의 개입이 분명히 들어가 지구 상의 여러 활동과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에게는 갈라파고스가 상상 속의 유토피아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이자 자신이 태어나고 발붙여 살아갈 땅이었을 수 있다. 도대체 인간은 왜 땅거북이 바다로 향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가? 땅거북은 바다에서 물로 목을 축이고 알을 낳기 위해 물가로 간다. '바다고 가야 한다'는 땅거북을 인지하고, 그의 말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작은 무대에서조차 땅거북을 자신만의 편견 안에 가두고 바다로 가기 위한 여정을 돕지 않는다. 끊임없이 오해하고, 욕망하고, 추측할 뿐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습성으로 인해 조그마한 무대 안에서도 땅거북은 금을 내놓지 못하면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을 때가 왔다. '스고파라갈'의 세계에서, 우리가 하던 것을 거꾸로 하다 보면 어쩌면 그 세상의 결말은 멸종이 줄어드는, 많은 종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노아의 방주를 타고 다른 행성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는 새로운 종류의 유토피아가 될지도 모르겠다. '스고파라갈'을 보고, 느끼고, 감상한 후, 결말은 앞으로의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한다.

 

 

 

컬쳐리스트 김하영 태그.jpg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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