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짐승들의 이야기일까? - 연극 ‘이숲우화 : 짐승의 세계’

짐승의 언어로 인간을 이야기하다
글 입력 2023.08.23 15: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숲우화10_포스터.jpg

 

 

이 연극은 짐승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성공한 작가 이숲의 팬미팅에 초대된 관객들은 그가 이야기하는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에 대해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인간이 어떻게 한 낱 짐승과 같겠어’와 같은 생각을 은연 중에 감춰 둔 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네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짐승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짐승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하다.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각각 갈등을 지니고 있던 짐승들이 결말에 가서는 화해하거나, 혹은 나쁜 쪽이 벌을 받는 다는 식으로 전개되고는, ‘친구와 싸우지 않고 사이 좋게 지내야 하며 거짓말 같은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일종의 교훈을 아이들에게 깨우치곤 했던 그런 이야기였다. 


어딘가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암시한다. 의지할 이 하나 없는 숲 속에서 만나 서로가 너무나 특별했지만 선천적인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서히 앙숙 관계가 되어가는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 주말 시청역 한복판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이들의 갈등이 우리네 인간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자 모인 사람들, 한 편에서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또다른 한 켠에서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그들을 비난한다. 한 편에서는 ‘다른 모습’을 인정받고자 하는 축제가 열리고 또 다른 한 켠에서는 그것이 분란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목소리를 펼친다. 이토록 각각의 주장을 펼치는 목소리들이 혼재하는 빌딩 숲이 여우와 두루미의 숲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이야기는 곧바로 개미와 배짱이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개미와 배짱이 둘 간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노동을 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는 현실이 통하지 않는 ‘세상과 개인’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운동도 설렁설렁 하면서 배달음식까지 시켜 먹으려는 배짱이와 열심히 운동해서 ‘멋진 몸’을 만들고자 하는 개미, 어릴적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노력에 뒤따르는 결실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자칭 ‘미의 여신’이라는 이가 등장하며 이 이야기는 ‘이솝우화’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그녀는 배짱이에게 제안을 하는데, 그것은 마치 조그만 확률에 매달려 일확천금을 바라는 일종의 도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을 무시하거나 웃어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에는 개미가 들여온 노력을 옆에서 보아왔던 배짱이에게 그 고통의 과정 없이도 개미보다 나은 결과를 바랄 수 있다는 달콤한 기대를 심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일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씁쓸한 사실을 깨달은 직장인들이 주말마다 ‘로또 1등 배출’ 슬로건을 내건 편의점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나. 


다음으로 만나볼 이야기는 ‘토끼와 자라’다. 이들은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애증의 관계를 넘어 결혼까지 성공했지만 과거의 뜨거운 열정은 더 이상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소파에 누워 방귀나 뀌어 대며 토끼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 자라와 온갖 집안일과 육아를 혼자 떠안고 지친 토끼는 서로 말만 꺼내지 않았다 뿐이지 하루 하루 전쟁을 치루고 있다. 말그대로 ‘냉전’인 것이다. 보는 이들이 답답할 만큼 속안에 가지고 있는 불만의 그 무엇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둘. 이들은 관객에게 대고 하소연을 할 뿐 서로에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결국은 갈라서게 된다. 


그러나 답답한 이들의 사연 또한 마냥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더 이상 어린 시절 친구와의 싸움에서처럼 서로의 잘잘못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다짐에 대해 공유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까?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며 싸운 것에 대해 굳이 파헤치기 보다 장난을 치거나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묻어두게 되었고, 그렇게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에 취약해진 우리는 더 이상 갈등에 진솔한 이야기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크기변환]richard-sagredo-3PrppTwF2E4-unsplash.jpg

 

 

이토록 인간을 닮은 짐승들의 이야기에 불쾌한 골짜기를 마주한 것처럼 착잡한 심정이 되어갈 때쯤, ‘달에 간 까마귀’라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실로 인간과 짐승의 차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간’이지만 앞선 이야기 속 그 어떤 짐승보다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갈등을 보여준다. 


심오하고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고집과 철학을 담은 대본을 밀어붙이는 작가 겸 연출, 그의 디렉션과 대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후배 배우와 이 둘의 갈등을 중재하며 지쳐가는 선배 배우, 이 셋은 분명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소통보다 불통에 가까웠다.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 보려는 시도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피력과 의견을 앞세우는 대화는 결국 분열로 이어지고 연극은 중단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갈등을 봉합한 것은 다름 아닌 짐승의 언어였다. 그토록 싸우던 원인인 대본 속 짐승의 대사 ‘까악 깍, 깍깍깍’은 모든 갈등과 불통을 지난 후 한 발작씩 양보하여 시작된 마지막 연습에서 감동의 언어가 되어 세명의 ‘인간’을 묶어주었고, 그렇게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웃을 수 없는 찝찝함을 남겼다. 


그들의 갈등은 해결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어떠한 인간적인 대화나 명확한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서 보았던 인간과 닮은 짐승들의 갈등을 지켜보며 커지던 의구심은 연극이 막이 내리고 더더욱 해결되지 않은 채 내 안에 남게 되었다. 연극은 그저 짐승과 인간을 구분할 수 없게 하는 갈등 속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기만 할 뿐 어떠한 결론이나 해설을 내놓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에게는 떫은 여운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보았던 ‘이숲우화’의 짐승들의 숲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늘진 빌딩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이 세계를 살아 내야 할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