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뒤엉킨 실타래를 풀다 - 제23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영영 평행선을 달리더라도
글 입력 2023.08.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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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KT&G 상상마당에서 개최된 제23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 22일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하 네마프2023)은 대안영화, 디지털영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등 기존 주류영상 문법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영상예술 작품들을 선보이는 축제의 장으로, 올해로 23주년을 맞아 40여 개국 82편이 상영되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올해의 주제에서 방점은 ‘확장’이 아닌 ‘안전한’에 찍혀 있다. 네마프2023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자유로운 신체의 확장과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향해 ‘과연 그것이 안전한가?’라는 통렬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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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네마프2023에서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알게 되었던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을 관람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생리를 중심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피의 연대기>에 이은 김보람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이 채영에게 찾아온 섭식장애의 기원을 조심스레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간을 통해 식이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깨고, ‘섭식장애’와 ‘모녀관계’라는 사뭇 다른 두 단어가 서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채영은 열다섯 살 때 극단적인 식사 거부로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체중이 수십 킬로가 빠지면서 입원 치료까지 받았으나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질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거식증, 폭식증과 같은 섭식장애는 많은 경우 사람들에 의해 평면적이고 단선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상적인 외모와 마른 몸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그 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를 통해 마주한 섭식장애는 생각보다 명확한 원인을 찾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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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김보람 감독이 집중한 것은 바로 딸 채영과 엄마 상옥 사이의 ‘관계’였다. 영화 속 인물들이 실존 인물이고 영화에는 미처 담지 못한 무수한 사연과 맥락이 있을 것이기에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로는 채영의 말투에는 조금의 원망이, 상옥의 말투에는 조금의 미안함이 항상 묻어있었다.

 

청년 시절 운동권으로 활동하다가 무주에 있는 대안학교의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기 시작했던 상옥은 그때 자신의 딸 채영의 생각을 일주일에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채영은 그로 인해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만인의 엄마가 된 상옥과 일대일의 모녀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 듯 보인다.

 

먹지 않는 것이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쥐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말하는 채영을 보면 그의 거식증은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된 독립과 분리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열다섯 나이의 어린아이에게는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 글이나 말처럼 정리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없는 가슴속의 응어리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그것을 알아달라고 외치는 일종의 시위였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벌써 어른이 된 채영은 여전히 상옥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쓴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해치는 방법이 아니라 외국에 나가 홀로 삶을 꾸려나가기도 하고, 식당 영업을 하기도 하면서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처럼 성숙한 독립을 준비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채영은 엄마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엄마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 또한 자신의 삶이라고 말한다. 거부하고 부정하는 마음 한가운데에는 애정이 있고, 아무리 싫어도 ‘엄마’라는 거대한 존재의 흔적을 자신의 삶 속에서 완전히 지워낼 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영의 모습에서는 어른스러운 편안함이 보였다.

 

상옥은 채영에게 무주에서 함께 살자고 권하고, 채영은 끝까지 상옥에게 무주가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과 지나온 시간들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가도 다시금 멀어져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두 사람을 마주할 때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것은 어쩌면 가족, 특히 부모와 자식이라면 겪게 되는 특별하고도 지극히 보편적인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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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섭식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하고 사람들의 인터뷰를 수집하던 중 운명처럼 나타난 모녀로 인해 영화가 원래 계획했던 것을 벗어나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에게는 힘든 여정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관객으로서는 그 변수가 오히려 이 작품의 깊이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인 질병이 정신적인 아픔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질병이 한 개인의 삶과 그가 맺고 있는 관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 준 뜻깊은 작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직은 누군가의 딸이라는 역할밖에 겪어보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상옥보다는 채영의 입장에 서서 영화를 관람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엄마의 눈으로 다시금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되면 상옥과 채영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엄마의 관계에서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속 채영이 그랬듯이 남몰래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엄마를 향한 나의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이 이해를 통하여 하나둘 지워져 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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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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