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으로 시작해 인간으로 끝난다 (2) [미술/전시]

미알못도 만족하는 국중박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후기 (2)
글 입력 2023.08.0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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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관심이 투영된 초상화


17세기 후반부터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이성의 힘이 세지고 18세기 절대왕정이 쇠락함에 따라 교회의 힘은 서서히 약해졌다. 종교의 영향력이 사그라들자,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개인의 자유 추구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미술이 그동안 종교와 사상을 담는 매체였다면,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의 경험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화가의 시선도 개인의 삶으로 향했다.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경제 발전을 겪으며 예술을 보다 다양한 사람이 향유할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초상화가 유행했다고 한다.
 
전시회에서도 다양한 초상화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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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토머스 로렌스의 ‘찰리 윌리엄 렌튼’이라는 그림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일명 ‘레드보이’라고도 불리는 빨간 벨벳 옷을 입은 소년이 주인공이다. 이 그림은 영국 우표에 실린 최초의 그림이기도 하다.

땡글땡글한 눈과 새초롬하면서도 어딘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 벨벳 질감의 붉은 옷. 소년의 존재감이 강렬해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가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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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게 집중하느라 배경은 얼핏 보고 실내인 줄 알았으나 뒤로는 달빛이 강물에 반사된 자연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알고 보니 소파가 아닌 나무나 돌로 추정되는 자연물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주변에 꽃이 작게 펴있는데 배경이 두루뭉술하고 초상화의 주인공에 확 집중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채


19세기 중엽 사진의 발명으로 더 이상 그림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에 19세기 후반부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채를 그리는 ‘인상주의’가 등장했다.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간 미술의 세계가 또다시 변화를 거듭해 객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화가의 내면을 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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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빛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존 싱어 사전트의 ‘와인잔’ 그림을 꼽을 수 있다. 한 눈에 사진과 같은 느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만, 테이블보에 부분적으로 닿는 빛이나 그림자 표현은 매우 실제 같다.

오늘날 야외 카페에서도 쉽게 마주하는 풍경이 좋은 이유는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주변 풀들의 색이 빛이 닿는 부위마다 조금씩 다르고 바닥의 색도 빛과 색의 반사를 보여줘 이질적이지 않은 빛의 반응이 편안하다. 엽서로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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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작품을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이 있다.
 
마네는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는 걸 좋아해 근대적인 삶의 모습을 주제로 택했다. 그림 속 종업원의 안정적인 맥주잔 컨트롤 능력에 감탄해 모델이 되어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림 하나로 약 140년 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 엿볼 수 있는 점이 명화전의 큰 장점 같다. 종업원 기준 뒷무대에서는 한 무용수가 발레를 추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서빙하고, 턴 동작을 준비하고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은 시간이 오래 흘러도 여전히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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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친절하고 그림이 맛있어요



이로써 이번 전시회의 모든 부스를 가볍게 살펴봤다. ‘기법 같은 전문적인 내용들로 가득해 전시를 제대로 못 보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가이드 음성과 설명 모두 어린아이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했다. 화가의 짧은 생애를 소개하기도 하고 그림 속 요소의 상징을 알려주기도 하고 내용도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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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작품 설명 카드 옆에 당시 논쟁이나 그림의 뒷이야기 카드가 함께 있었는데 개인 가이드를 대동한 미술 투어 같아 좋았다.

 

한 예로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 그림의 설명 카드 옆에는 X선 촬영 분석 후 그림 아래에 남성 초상화가 있었다는 신기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그림뿐 아니라 액자 복원 과정을 담은 영상과 전시회에 없는 연작 그림 소개 영상은 전시회의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너무 좋은 점만 이야기한 것 같아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명화전 소개에도 가장 앞에 소개되는 화가들의 작품은 마지막 부스에 몰려 있었다. 2시간이라는 긴 관람으로 지쳐 집중력이 가장 떨어진 마지막에 가장 기대했던 작품들이 있어 슬펐다.

 

관람 예정이라면, 체력 분배를 잘하는 게 팁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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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인간이 향유하는 예술



3부와 4부 사이 내셔널갤러리 역사를 짧게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이 있었다. 화면 가운데에 액자 틀이 있어 장면에 따라 수장고 문이 되기도 하고 명화 액자가 되기도 한다. 작은 포인트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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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갤러리는 19세기 왕실과 귀족만이 아니라 영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지어진 공공미술관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유물들을 모두 수장고로 대피시켰지만, 힘든 상황 속 위로와 희망을 건네기 위해 전시 상황에도 ‘한 점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내 의견이 정답이 아닐 수 있지만, 2시간 동안 천천히 전시회를 끝까지 본 결과 미술은 ‘느끼는 예술’ 같다. 사전 배경 같은 전문적인 지식은 알면 더 좋지만, 필수 조건이 아니다. 그냥 직접 보는 순간 또한 작품에 대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 감정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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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또한 관객이 그림을 보며 저마다 고유한 감정을 느끼길 누구보다 바라지 않을까. 신의 세계만을 담던 화가가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인상주의를 거치며 인간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 것처럼.

 

감정이야말로 인간적이라는 뜻이니까.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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