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담백한 힐링의 맛 - 주말엔 숲으로 [만화]

뻔한 위로는 싫을 때
글 입력 2023.08.0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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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던 난 여전히 성격이 꽤 급하다. 엊그제 중고 서점에 도착한 것도 그런 빠른 발걸음으로 당도한 목적지였다. 서점 안 책들 사이에서 서성이다가 문득 읽고 싶던 만화책이 생각나서, 검색대에 책 제목을 입력했다.

 

큰 기대 없이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를 검색창에 입력했더니, 한 권의 재고가 있었다. 꼼꼼하게 투명 테이프로 포장된 새 책 같은 이 만화책을 두고 가기엔 분명 눈앞에 아른거릴 거여서 결국 가지고 서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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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처럼 이 책은 펼치자마자 끝까지 다 읽게 되는 재밌는 책이었다. 세 명의 친구가 등장하는데, 번역가 하야카와를 중심으로 출판사 경리부 마유미, 여행사에 다니는 세스코가 함께 한다.

 

숲에 사는 하야카와를 만나러, 두 친구는 거의 주말마다 그녀의 집을 들른다. 그런데 독자들은 제목에서부터 ‘숲’이라 해서 도시의 삶을 모두 버린 채 목가적으로 사는 것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야카와는 농사도 시작하지 않고, 배달을 적극적으로 애용한다.


어느 날 숲에서 마유미와 걷던 하야카와는 이렇게 묻는다.

 

 

하야카와 :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마유미    : 시간이 아깝잖아.

하야카와 : 하지만 ~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마유미    : 뭐야,

하야카와 :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마유미    : 여유롭게 사는 사람은 좋겠어.

 

-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이봄, 2012, p.12

 

 

마지막 마유미의 대답 속에서 약간의 빈정거림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실’을 근거로 맞받아치는 독자의 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은 마유미의 일상에서 상기되며 우울한 나날들을 이겨낼 큰 힘을 주고 있다. 퇴근 후 한숨을 쉬며 할 일을 생각하던 그녀는 꽃을 보며 잠시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만 걸어가는 건 아니라는 하야카와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잠깐 지나칠 수 있는 찰나에도 꿈을 품고, 여유를 가지는 습관은 작지만 어쩌면 아주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또 다른 친구, 세스코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세스코    : 저 나무, 이름이 뭐야?

하야카와 : 너도밤나무야.

세스코    : 흐음.

하야카와 : 이 주변은 겨울이 되면 눈이 꽤 많이 쌓이는데,

               너도밤나무는 추위에 강해서

               잘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대.

세스코    : 강한 나무라서?

하야카와 : 그게 말이지, 그 반대라서 그래.

               너도밤나무는 부드러운 나무야.

               부드러운 나무라서 건축재료로는 사용할 수 없대.

               그렇지만 너도밤나무는 추위에 무척 강해.

               부드러운 나무는 눈이 쌓여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 거지.

 

-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이봄, 2012, pp.29-30.

 


이런 대화는 세스코의 일상에도 든든한 힘이 된다. 세스코는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이 조금씩 싫어졌다고 한다. (p.35)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사에 취직했으나, 지금의 일이 맞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고객의 생각지 못한 칭찬이 하야카와의 대화와 함께 세스코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조금 더 해보고, 정말로 싫어지면

그때 그만두면 돼.

부러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이봄, 2012, p.39

 


이렇게 책은 주말에 숲에서 시간을 보내고, 어느 날의 세스코, 마유미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어 숲속의 이야기에만 치우쳐 있지 않아서 더욱 공감이 간다. 어느 주말, 하야카와는 마유미는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눈다.

 

 

마유미    : 하야카와~

               이 카약, 바다에서도 탈 수 있을까?

하야카와 :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긴 카약이 좋을거야.

               긴 게 똑바로 나가고 안정감이 있거든.

               큰 바다에서 목적지를 향할 때는 똑바로 나가는 것이 빠를 테고.

               강이나 호수에서는 작게 회전할 수 있는 것이 편리하고.

마유미    : 그렇군.

하야카와 : 똑바로 나갈 것인지,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나갈 것인지,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이봄, 2012, pp.86-87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서, 다음 편에서 마유미는 짜증이 잔뜩 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마유미는 생각한다. “앉아 있기만 하면서 월급은 많고. 얄미운 아저씨”라면서, 솔직하면서 분명하게 말이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짜증이 나는 일 속에서도 하야카와가 말한 위와 같은 말을 문득 떠올렸던 것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는다.

 

 

“회사는 커다란 바다가 아니다.

바다보다 좁고 작은 곳이다. 

게다가 바위도 있고 굴곡도 있다.

똑바로 나아갈 수 없는 곳을 직진용의 긴 배로 가려고 하면

언젠가 고장 날지도 모른다.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나갈까~”

 

-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이봄, 2012, p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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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책 속 인물들은 그저 자신의 기분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 아주 섬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친다. 독자들 역시 호흡이 짧은 문장들을 읽으며 감정선을 따라가고, 그 과정 자체에서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다. 굳이 부담스러운 위로나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는 것이 이 책의 큰 묘미일 것이다.


부드러우나 강해지는 것을, 때로는 작게 회전하는 법을, 어둡다고 발밑만 보고 걷지 말자는 이 책의 이야기들을 곱씹어 본다. 늦지 않아도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던 버릇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후 - 편안히 내쉬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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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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