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게임사회 [미술/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7.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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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하였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게임은 폭력성, 사행성과 같은 단어로 대변되었다.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에게 소홀하게끔 만드는,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정용 PC나 노트북,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한 기존의 게임 향유 공간으로부터 탈피와 건전한 게임 문화를 위한 국가적 수준의 노력, 그리고 일종의 문화로서 게임을 바라보기 시작한 대중의 인식 변화는 게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출현하는 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서 게임 내에서의 발달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더 높은 사양의 전자기기를 통해 짜임새 있는 서사에 영화와 같은 연출로 몰입력을 더한 게임을 만날 수 있으며, VR을 이용하여 새로운 가상 세계로 진입하기도 한다.

 

과거 등한시되었던 게임 문법과 미학은 하나의 예술세계로서 인정받는 위치에 다다랐으며, 이는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으로서 게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전시로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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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 《게임사회》는 예술의 시각에서 바라본 게임의 미학적 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유와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2010년 초반부터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소니언 미술관이 수집한 비디오 게임 소장품과 국내 작품을 포함한 9점의 게임과, 비디오 게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전시 주제가 게임인 만큼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인터랙티브 작품 중심 전시의 경우 작품당 참여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대기 줄이 길어지거나 몇몇 관객은 참여를 아예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게임사회》에선 벽면에 작은 거울을 배치하여 대기자를 배려하도록 하였다.

 

평소에도 게임을 즐기는 게임 애호가이자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예술 애호가로서 《게임사회》는 다양한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전시를 통해 느낀 감각과 생각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자유, 혹은 자유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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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그 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는 체험을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유사하지만, 세계를 눈앞에 직접 보여주고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인 감각 경험을 제공한다.

 

제노바 첸의 〈플라워〉에서 플레이어는 바람이 되어 목가적인 풍경을 자유롭게 비행하며 곳곳에 배치된 꽃망울들을 터뜨린다. 읽고 해석해야 할 다른 기호는 없다. 잠시 나에게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며 아름다운 공간을 유영하면 된다.

 

〈플라워〉가 현실에서 벗어난 자유의 미학을 지향했다면, 하룬 파로키의 〈평행〉 시리즈는 오히려 게임 속 경험의 제약적인 면을 드러낸다.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서 구축되는 게임 속 가상공간은 마치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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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는 게임이 제시하는 특정 공간 안에서만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으며, 행동 자체도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몇몇 동작으로 제한된다. 주인공이 주어진 서사를 밟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현실에서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위 타이쿤이라 불리는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게임 심시티. 플레이어는 마치 창조주가 된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땅을 바라보며 도시를 조금씩 건설해나간다. 우리가 흔히 '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는, 물리쳐야 할 적대 관계나 궁극적으로 완수해야 할 목표가 없다. 그러나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영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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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세계의 도시와 주민들의 요구 사항이 게임 내에서도 존재한다. 상하수도나 전력과 같은 기초시설부터 공원이나 도서관과 같은 삶의 윤택함을 향상시키는 요소까지 플레이어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가득하다.

 

이제 플레이어는 선택할 수 있다. 시민들의 온갖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지, 아니면 그들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하게 재미를 위한 플레이를 계속할지. 위와 같은 선택지에서 전자를 택한다면(대다수가 전자를 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한 선택은 자신의 현재 삶이 투영되어 행복한 도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밑바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행복도를 수치로 환산하거나 붉은 경고등을 띄움으로써 게임이 플레이어를 은연중에 한가지 길로 유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완전하게 독립적인 개인의 선택이 존재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자유도와 관련하여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 중 하나는 마인크래프트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마인크래프트는 모든 것이 큐브 형태로 이루어진 방대한 공간 속에서 주어진 재료를 이용해 자유로운 놀이가 가능한 게임이다.

 

현실 세계의 블록 놀이를 무한한 가상세계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게임은 창조하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다. 정해진 어떤 대상을 생산해내거나 특정 과제를 제시하기보다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로부터 기인하는 순수한 즐거움, 곧 예술의 유희적 측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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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가상공간은 무엇이든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의 ‘나’와 다른 가상의 ‘나’가 되어 겪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할 수 있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게임의 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이 된 세계라는 점에서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는 정해진 공간 혹은 선적인 시간 아래 놓여있다. 그럼에도 게임은 또 다른 삶으로서 경험을 제공하고 유희적인 창조 행위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닮아있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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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가능함
    • 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끼리
      무슨 짓을 하든, 명명하든, 판매하든,
      예술로 치부되고 팔리고 기록될 것입니다.
      그게 수명이 길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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