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국립중앙박물관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파헤치기 Ep.1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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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포스터
지난 6월 2일부터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영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영국내셔널 갤러리에서 날아온 명화가 전시중이다. 10월 9일까지 열리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52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또한 20세기 이전 서양미술 작품을 소장한 컬렉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국내에서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개막 전부터 많은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서울의 중심에 광화문 광장이 있다면, 런던의 중심엔 트라팔가 광장이 있다.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트라팔가 광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웅장한 건물의 파사드가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대영박물관과 함께 영국 최대의 미술관 중 하나인 내셔널 갤러리이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출처: Diego Delso, Wikipedia Commons)
하지만 내셔널 갤러리의 시작은 지금처럼 웅장하지 않았다. 1824년에 설립된 내셔널 갤러리는 금융가 존 앵거스타인이 소장한 작품 38점을 정부가 구입하면서 그의 연립 주택을 그대로 미술관으로 사용하며 처음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1832년부터 1838년까지 트라팔가 광장 근처에 새롭게 지은 건물이 지금의 내셔널 갤러리가 되었다. 1991년에는 기존 건물의 부족한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인즈버리 윙을 증축해 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조토에서 세잔까지 이어지는 서양 회화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알차게 소장하고 있다. 2000점 이상의 소장품 중 이번 전시를 통해 라파엘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렘브란트, 터너, 마네, 고흐 등 거장들의 작품 58점이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전시는 크게 네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을 통해 종교와 신에 관심을 두던 미술에서 개인과 일상을 더 중시하는 미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편에서는 1, 2부의 테마와 주요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며 살펴보고, 다음 편에는 이어서 3, 4부 테마와 주요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자.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은 르네상스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15~16세기 전반에 걸쳐 발생한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며, 이 시기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사상, 예술, 문학을 본받고자 했다.
조반니 벨리니, <성모자>,1480-90, 영국 내셔널 갤러리
전시장 첫 번째 방에서는 성모자를 주제로 그린 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위의 그림은 베네치아 출신 화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가 그린 <성모자 The Virgin and Child>(1480-90)이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전경에 앉아 있고, 그 뒤로는 구름이 있는 하늘과 산이 보이는 풍경이 펼쳐져있다.
라파엘로, <성모자와 세례 요한>,1510-11, 영국 내셔널 갤러리
‘가바의 성모(The Garvagh Madonna)’로 불리는 라파엘로(Raphael, 1483-1520)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 The Madonna and Child with the Infant Baptist>(1510-11) 또한 벨리니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교외 풍경이 세 인물 뒤로 펼쳐진다. 하지만 라파엘로의 그림은 십자가를 오른손에 살며시 쥔 세례 요한이 추가로 등장하고, 벨리니의 그림보다 인물들의 동작 표현이 더 역동적이기 때문에 나란히 걸린 두 화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두 그림을 비교했을 때 흥미로운 포인트는 전경의 인물들을 나름의 장치를 통해 프레이밍하고 있다는 것이다. 벨리니의 그림은 이를 위해 녹색 천을 뒤에 배치해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레 인물로 유도한다. 그리고 녹색은 가톨릭에서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라파엘로의 작품은 주변 환경을 적절히 이용하는데, 성모의 머리 뒤를 보면 건물 두 기둥이 맞물리며 생겨난 면이 자연스럽게 인물을 프레이밍한다.
1부 작품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포인트는 바로 디세뇨(disegno)와 콜로레(colore)이다. 이탈리아어로 드로잉, 디자인을 뜻하는 디세뇨와 색채를 뜻하는 콜로레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을 정도로 뜨거운 이야깃거리였다. 그림을 보다 보면 전시장 안에서 디세뇨와 콜로레에 대한 설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설명을 읽은 후 그림이 디세뇨와 콜로레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했는지 추측해보면 작품 감상이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은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종교적 신앙심을 높이기 위해 기능했던 미술과 이와 반대로 사람과 일상에 더 관심을 가졌던 미술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흔히 바로크 시대로 부르는 17세기 이후 작품이 가득한 2부에서는 카라바조,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1594-5, 영국 내셔널 갤러리
그 중 단언컨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1594-5년작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Boy Bitten by a Lizard>이다.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를 당당히 장식한 이 그림은 2부에서 따로 마련된 공간에 홀로 걸려있다. 가로 49.5cm, 세로 66cm로 크진 않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귀에 꽃을 꽂은 곱슬머리 소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반쯤 벌린 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옷이 벗겨져 소년의 어깨가 반쯤 드러나 있다. 표정 만큼이나 손가락 포즈도 예사롭지 않은데, 세 번째 손가락 끝에 작은 도마뱀이 매달려 있는 걸 보니 소년이 찡그린 표정을 한 것도 이해가 간다. 이 그림은 소년이 과일을 집으려다 숨어있던 도마뱀에게 물린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헸다. 카라바조가 20대였을 때 그려져 젊은 화가의 패기와 당당함이 잘 드러나 있는데, 그 부분은 이번 전시 리뷰 이후 연재될 개별 작품 소개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요하임 베케라르, <4원소: 물>, 1569, 영국 내셔널 갤러리
요하임 베케라르, <4원소: 불>, 1570, 영국 내셔널 갤러리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복도를 쭉 지나면 오른편에 상당히 큰 사이즈의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온다. 플랑드르 화가 요하임 베케라르(Joachim Beuckelaer, 1533-1574)가 4원소를 주제로 그린 그림 네 점 중 물과 불을 주제로 한 두 작품이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금방이라도 캔버스 밖으로 튀어 나올 듯 생생하게 묘사된 생선과 육류가 눈에 띈다. 가로 2m가 넘는 큰 그림이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생동감은 배가 된다. 시간 차는 있지만 이 그림과 앞서 소개한 벨리니나 라파엘로의 그림을 비교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플랑드르, 네덜란드 지역을 아우르는 북부 미술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벨리니나 라파엘로의 그림에 비해 베케라르의 작품은 어딘가 어지럽고 난잡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스베틀라나 앨퍼스는 이러한 특징에 주목해 북부 미술을 "묘사의 미술(The Art of Describing)"이라 명명한다. 명확한 틀을 갖고 공간을 구성해 대상을 배치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는 달리, 공간 내 수 많은 사물들과 사건을 충실하게 묘사한 베케라르의 그림은 작은 사물들에 주목해 대상의 세부 표현에 관심을 갖고 관찰에 집중한 북부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에 소개한 작품 외에도 1,2부에서는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보티첼리, 틴토레토 등 다양한 대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여유있게 둘러본 이후 3부로 이동하면 본격적으로 18-19세기 작품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을 주제로 한 3부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을 주제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4부는 이어지는 다음 편을 통해 마저 소개할 예정이다.
[박준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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